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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멋대로 그림읽기] 이근화 작 '흐름2' 캔버스 위에 아크릴, 130x162cm, 2021년 / 매일신문 / 2021-11-03
아트코리아 | 조회 399

대구 화가 몇몇과 미술평론가, 큐레이터와 가진 저녁식사 자리였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미술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그때 김옥렬 씨(대구 아트스페이스 펄 대표)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감상했던 경험을 밝혔다. 로스코는 주지하다시피 러시아 유대인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주로 커다란 캔버스에 모호한 색면과 불분명한 경계선을 표현한 화가이다.

김 씨는 평소 로스코가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려면 최소 1m이내에서 보라는 말을 기억하고 실제 그의 작품에 다가가서 캔버스의 프레임이 보이지 않을 만큼 가까이서 한참을 봤다고 했다. 그랬더니 로스코 특유의 색이 내뿜는 강렬한 에너지가 온몸을 휘감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평면회화를 감상할 때 벽에 걸린 작품을 보는 이의 눈높이에서만 바라볼 뿐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미술작품을 감상자의 의식의 공간 안으로 끌어들여 가깝게 혹은 멀게, 또는 아래나 위에서 다양한 각도로 감상해볼 것을 제의하고자 한다.

이근화 작 '흐름2'도 그냥 벽에 걸린 대로 볼 게 아니라 일단 작품을 바닥에 내려놓고 시선은 공중에 두고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마치 드론이 상공에서 지표면을 촬영하듯이 말이다.

그럼 무엇이 보일까. 일단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어도 필자에게는 광활한 초원이 연상된다. 녹색 계열의 색은 키 낮은 풀의 군집이며 흰색의 조형언어는 그 속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 같은데 화면 전체에서 풍기는 생명의 에너지는 완연하다.

드러나지 않는 모습을 표현하는 걸 작업이라고 여기는 이근화는 생명의 공간에 일정한 간격의 붓질, 원의 무수한 반복을 통해 화폭에 정신과 감정을 담고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우주 속 생명은 그와 함께하며 그의 안에 있는 것이기에 자신이 곧 모든 것을 이어주는 근원이자 현실이다.

"예술 세계는 인간의 내면에서 자연의 깊이를 가늠하는 역할을 한다"는 그의 화론은 순환과 반복을 의미하는 원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화가의 예술적 담론을 형성하는 자극이 되었다. 이근화의 원은 이른바 정신성을 잘 드러내는 도형으로 인식되면서 모든 기운이 만나는 집합이자 정점이 된다.

그렇다면 '흐름2'에서 보이는 흰색의 원들은 모두 이제 꽃이 아니라 상징화된 조형 요소로서 흩뿌려진 색의 조합으로 표현된 '뭉침'과 '분출'을 드러내 보이는 '기(氣)의 향연'이다. 결론적으로 이근화는 이 작품을 통해 생명 에너지가 삶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며 색채들의 흔적을 모아 생명의 힘찬 약동을 이미지화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작업에는 반복된 원에서 고요함과 활동이 서로 활발히 전개되는 내적 긴장감이 있다. 서로 상충한 강한 에너지가 작품에서 드러나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한다. 살아 움직이는 충만한 내적 기운을 형상화한 원의 세계는 한마디로 기운의 합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근화의 '흐름2'는 눈높이에서 볼 때보다 오히려 작품을 바닥에 놓고 내려다 봤을 때 확실히 그가 의도한 화법을 이해하는 데 훨씬 편하다. 그의 작품 속 하얀 원들이 마치 봄날 동산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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