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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김수영의 그림편지] 김윤종 作 ‘하늘보기’ 김수영기자 2017-04-28 영남일보
아트코리아 | 조회 716
40여년 前 한 소년의 가슴을 물들였던

그 하늘…산과 들판, 바다와 어우러져 어린 시절로 데려가다.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못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의 소중함, 아름다움을 잊고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하늘’을 꼽고 싶습니다. 울창한 빌딩 숲 속에 사는 도시인들에게 하늘이라는 것은 거의 잊힌 존재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나무보다 더 우람한 빌딩 속에서 그저 앞과 밑만 보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장마철 비가 쏟아지려할 때나 한번씩 비가 언제 올지 궁금해하며 구름이 가득한 어두운 하늘은 쳐다보곤 하지요. 그리곤 다시 하늘 아래 살면서도 하늘이란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 일상들을 보냅니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에서 “우리의 주된 결점,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는 원인 중 하나는 우리 주위에 늘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있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것의 가치를 보지 못해 고생하고, 매혹적인 것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종종 엉뚱한 갈망을 품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상황에 익숙해지는 인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같은 하늘을 내게 다시 돌려준 이가 바로 김윤종 작가입니다. 그의 하늘그림은 마치 가을철 드높은 하늘을 담은 듯합니다.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이 맑고 푸른 하늘과 그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흰구름은 일상에서의 답답함과 피로감을 일순간 확 날려버리게 합니다. 이만이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하늘을 나는 기구를 탄 것처럼 두둥실 하늘을 날며 거기서 지상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합니다. 내가 하늘이 되고, 하늘이 내가 되는 물아일체라고 하면 좀 과한 표현일까요.

김 작가는 오랫동안 풍경화를 그려왔습니다. 영양 산골짜기에서 자란 그가 풍경화를 그린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풍경화를 그리다보니 전국으로 스케치여행을 자주 다녔던 그는 2000년대 중반 전라도 군산에 있는 선유도를 갔다오다가 고속도로에서 장맛비를 만났습니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와락 퍼붓던 비가 그치자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서서히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구름이 걷히는 하늘의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 듯 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산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산이나 들판에서 놀다가 잠시 쉬기 위해 앉거나 누워서 봤던 그 추억 속의 하늘이 아주 오랜만에 다시 그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40여년전 순진했던 한 소년의 가슴을 물들였던 그 하늘이 말입니다.

그는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 스케치여행을 다니면서 전통마을, 태곳적 자연환경 등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그래서 풍경화의 정체성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 그 즈음 선유도 여행에서 만났던 하늘이 영원히 변치 않는 태곳적 자연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하늘의 조형성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늘의 매력으로 파란하늘이 품고 있는 색채의 아름다움은 물론 삼라만상의 풍경을 간직한 구름도 꼽았습니다. 구름이 간직한 풍경의 다채로움은 그 이름에서도 잘 알 수 있지요. 사람들은 구름마다 예쁜 이름을 붙였습니다. 새털구름, 비늘구름, 위턱구름, 밑턱구름, 양떼구름 등 다양한 이름이 있지요. 아마 김 작가는 이런 구름이 가진 다양성 속에서 사람들의 삶과 삶의 이치를 본 듯합니다.

그의 작품 ‘하늘보기’ 시리즈는 캔버스에 하늘과 들판, 바다 등을 잘 매치시켜 더욱 매력적입니다. 이 시리즈를 내놓던 초창기에는 자신의 고향을 모티브로 산, 들판을 하늘 아래 두었으나 최근에는 바다와 하늘의 조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과의 대비를 통해 하늘을 좀더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읽힙니다. 존재감이나 스케일은 비교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이는 모든 존재는 관계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도 됩니다. 작가는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만약 그의 그림에 하늘만 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멋진 하늘 그림은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보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그의 하늘은 산과 들판, 바다와 어우러져 동심을 자극하고 현재의 자신을 잠시 묻어둔 채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합니다. 작가 스스로도 어린 시절 산과 들판을 뛰놀며 보던 하늘을 그리면서 바쁜 일상에서 힐링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문득 박두진 시인의 시 ‘하늘’이 생각납니다.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 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별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맑은 하늘의 기운을 계속 마시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이 익어감으로써 좀더 느긋해지고 평화로워지지 않을까요. 이 지점에서 알랭 드 보통이 “예술은 습관에 반대하고 우리가 경탄하거나 사랑하는 것에 갖다 대는 눈금을 재조정하도록 유도해 그 소중한 것을 더 정확히 평가할 수 있게 우리를 되돌려놓는다”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김 작가는 5월(1~30일 오션갤러리)에는 부산시민들에게 이 하늘을 보여주고 온답니다.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

#김윤종 작가는 영남대 회화과를 나왔으며 2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대구시미술대전, 경북도미술대전 등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작품은 대구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포스코, 경북도신청사 등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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