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    업데이트: 15-06-18 11:38

평론

김윤종의 〈하늘보기〉……
아트코리아 | 조회 1,257

김윤종의 〈하늘보기〉……



광활한 하늘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하늘을 그리는 작가’ 김윤종.

그는 수년 전 서해안 스케치 여행에서 우연히 창공에 펼쳐진 뜬 구름의 여유작작(餘裕綽綽)한 이동을 보고 충동을 느껴 〈하늘보기〉라는 새로운 조형성을 작품 속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무한한 시계(視界)의 공간인 하늘은 비정형 상태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정의하기도 어렵고 형태를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언제, 어디를 가든 하늘은 우리 인간의 눈 안에 존재한다. 굳이 시선을 보내지 않아도 하늘은 언제나 무한대의 공간으로 비어 있다.

하늘이라는 단어 자체가 매우 감성적이다. 하늘은 그 공간에 무엇인가 투영되거나 어떤 실체가 공간을 배경으로 보일 때가 있다. 흔히들 하늘 가운데 기묘한 형태로 공간을 메우고 있는 것을 구름이라고 한다. 따라서 구름은 하늘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평선은 광활하면서도 하늘 아래에 존재할 뿐이다. 하늘 아래 땅이 있고 그 사이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살아간다고 해서 예부터 창조주(神)의 조화로 이루어진 하늘․땅․사람을 가리켜 천지인(天地人)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작가 김윤종의 화면 가득히 펼쳐지는 하늘의 풍경은 그 구도가 너무도 과감해 시원한 느낌마저 준다.

작가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양한 구름의 형태와 단조로운 듯 절제된 색감을 통해 하늘의 맑고 시원한 서정적인 분위기를 즐겨 자아낸다. 하늘은 동․서양화를 막론하고 주요 모티브로 사용되기보다 대부분 배경으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작가는 배경적 요소로 하늘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그의 작업에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우선 하늘이라는 소재는 현실과 비현실, 현세와 내세를 넘나들 수 있는 매우 확장성 있는 소재이다. 구름의 형태는 작가마다 정형화된 자신 만의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면서도 그 그림 가운데 어떤 그림이 대기 속의 실제 구름에 더 가깝다는 것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이는 변화무쌍한 구름의 모습을 몇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무정형의 구름 모양은 어떤 형태로 그리든 모두 구름의 형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하늘을 그린다 해도 그 하늘은 구름을 그리는 작가의 마음이 반영되어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영국의 문예비평가 허버트 리드(Herbert Read)는 “자연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예술가는 전에 한 번도 그려진 적이 없었던 자연의 특질을 발견하고 그 자연의 매혹에 이끌려 독창적인 양식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작가 김윤종의 작품 속에 표현된 하늘과 구름은 허버트 리드가 언급한 것처럼 면밀한 관찰 후 그 주된 특질 만을 파악하여 오히려 자연을 관조하듯 멀리서 크게 바라보는 시각으로 문명에 파괴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하늘과 구름)을 독창적 양식으로 이끌어 내고자 했다.

구름을 바라볼 때, 동일한 공간 속에서 구름의 모습을 여러 형태로 구분해 놓을 수 있다. 여러 가지 구름이 자연발생적으로 배열되어 있을 때 그것의 형태에 대해 사람마다 독특한 지각구조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무정형의 하늘 이미지를 인식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게슈탈트(Gestalt) 심리학 이론이 해석학적인 단초를 제공한다.

게슈탈트 심리학 이론이란 미학(美學)의 방향과 인간 경험의 궁극적인 요소로 볼 때 시각적인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영역에서 전체 구조에 의해 지배되는 틀을 형성해 내는 것을 말하는데, 구름을 보는 것도 동일한 시각에 동일한 부분을 보아도 작품에는 각기 다른 형태의 구름으로 나타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기 속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구름을 바라볼 때 누구나 스쳐가듯 산만한 추억과 자연에 대한 감정이 떠오르게 마련인데 이러한 감성의 부분들을 모아서는 게슈탈트적인 조합을 이룰 수가 없다. 완성된 형태의 하늘 이미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미 있는 지각(知覺)들을 연결해서 한 군데 구조로 모아야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전체적인 게슈탈트가 이루어진 하늘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하늘을 마주 대하다 보면, 자연의 무한한 존재 앞에 자신이 한 점의 모래알처럼 한없이 작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고 또한 창조주에 대한 경외로운 감정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무릇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모든 사물은 형태가 있고 그것이 비록 수없이 변화하더라도 어떠한 것이든 그 형태를 유지하고 간직하고 있지만 하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도 존재의 충족 이유를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다. 하늘은 자연의 가장 깊은 근저로부터 환희로 넘치는 그런 내면적인 감성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하늘은 작가 김윤종에게 무한한 자유를 느끼게 해 준다. 어쩌면 그 무한함 속에서 황홀한 여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감성을 통해 작가의 의식이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는 것이다.

하늘은 작가에게 있어서 심상적 사유의 공간이기도 했다. 하늘은 무한한 상상으로서의 내적 공간이며 사유로서의 주관적 암시의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개인적인 내면세계, 정신세계의 요소들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과 어우러져 자유로이 변화하는 하늘의 모습을 자신의 삶의 모습과 동일시 하며, 존재를 표현하고자 노력해 온 것이리라.

도심의 고층빌딩과 아파트숲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들은 일상에 쫓기며 길을 지나다 언뜻 고개를 들어 하늘 한 번 쳐다보는 여유도 갖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하물며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수많은 형태로 변화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감상하는 기회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작가 김윤종의 이번 전시는 다양한 하늘 풍경을 통하여 삶에 지친 현대 도시인들의 팍팍한 삶 속에서 한결 여유롭고 부드러운 안식처로 다가가고자 ‘하늘보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미 애 (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팀장․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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