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4    업데이트: 12-12-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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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식과 조형 - 권정호의 근작에 대해 - 오광수
아트코리아 | 조회 761

시대의식과 조형 - 권정호의 근작에 대해 ● 권정호의 작품을 대할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활동 무대가 향리인 대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 대한 인상이 비교적 선명히 남아있는 것은 해골을 소재화한 다소 특이한 내용성에 기인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죽음을 상징하는 기호와의 대결이란 작가의 치열한 의식이 극명히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화면에서 느낀 것은 그렇게 불유쾌하기나 소름끼치거나 한 정서보다는 어쩐지 아름답다는 역설적인 감정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비극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이 승화됨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고양돤 정감의 결정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작년 대구 문화예술회관에서의 개인전에서다. 근래에제작된 야심적인 작품들이 일당에 모아져 있을 뿐 아니라 비교적 그의 화력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게 시대별 구성이 돋보였다. 이번 작품들도 이에 연계되는 것들로 방법상에서는 커다란 변모를 보이고 있지 않은 편이다. 극히 일상적인 모티프를 추적하는 내용상에서도 일관된 관심의 지속이다. 도시의 풍물과 정물적 소재가 중심을 이루고 있음에서 특히 그렇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상의 기록으로 치부되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내용으로서 시대의식이 강하게 표상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게 한다. 내용이 다름아닌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이 사건은 그것이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나와 우리들의 문제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절실성을 지니지 못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불과 몇 해 전에 일어난 끔직한 참사가 이렇게 잊혀져가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그만큼 시대의식의 빈곤을 노증한 것에 다름 아니라 할 수 있다. 여론만 들끓었지 이를 치유하고 승화시키는 아무런 장치도 마련하지 못했다.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고 추모비를 세우는 것만이 이를 치유하는 길은 아니다. 이런 비극이 왜 일어났는가를 연구하고 그것이 미치는 사회적 반향이 어떤 것인가를 조사하고 이를 방지하는 장치들이 강구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극을 치유할 수 있는 의식의 고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권정호의 이번 대구 참사를 주제화한 일련의 작품들은 예술을 통한 정신의 치유 방법의 하나의 적절한 예를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먼저 고발의 형식을 띤다. 참사가 일어난 현장을 스케치하고 참사가 일어난 정황을 동시성의 장치로 추적해가는 놀라운 순발력을 피력해보이고 있다. 환자를 들 것에 실어 뛰는 사람들의 긴박한 모습이나 경찰과 대치한 유가족들의 극렬한 항의 데모의 현장이 보여주는 상황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의 적나라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진행형이다. 흰 바탕에 흑색의 단속적인 필획으로 이미지를 표상하는 방법은 어떤 사실적인 묘출보다도 동시성의 긴장감을 유도해내고 있다. 단절과 연결의 숨 가쁜 선조로 뒤덮인 화면은 설명을 앞질러 상황의 긴박함을 구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근작에 다소의 변화라면 신문지나 한지를 잘게 썰어 반죽을 한 것을 화면의 여백에다 시술함으로서 한결 입체감을 획득하고 있음이다. 마치 화강암 표면과 같은 두께를 지님으로서 한결 탄력을 보여주고 있다. 돌에다 이미지를 각인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이미지는 더욱 기념비적인 무게를 지니게 된다. 그러고 보면 그의 작품은 내용과 더불어 방법상의 긴밀한 관계가 두드러지면서 그 독자의 조형의 차원을 일구어가는 느낌이다. ■ 오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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