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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엠플러스 한국 2009년 8월호
권정호 | 조회 1,195

이달의 문화인물 - 권정호 교수

 

작가 인생 40년 돌아보는 전시회 가져

지난 6월, 수성아트피아에서 기획한 초대전시회를 마치고 휴식의 시간을 갖고 있는 권정호(65·대구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회화과) 교수를 만났다. 권 교수는 근대미술과 서구 모더니즘을 접목시킨 대구 1세대 화가다. 서양화가이면서 동양적 사상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으며 포스트 모던 화풍의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40년 가까이, 개인전 17회 단체전 260여 회라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쳐온 작가의 업적을 회고하며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복한 죽음’이라는 주제아래 설치작업, 영상작업과 대형 회화작품 20여 점이 전시,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냈다.

                            

성난 해골들 

 

권 교수는 1944년 칠곡 동명에서 칠성의원의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대구 칠성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한국전쟁 등 격동기를 거치면서 성장했다. 한때 사진의 매력에 빠져 계성고등학교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사진에 심취하기도 했었다. 그 후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5년 계명대학교 서양화과 2기로 입학했다. 본격적으로 서양화를 공부하기 위해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프랫 대학원 (Pratt Institute) 회화과를 졸업했고, 1985년에 뉴욕과 한국에서 각각 첫 개인전을 열었다.

 

 


skeleton 

유학 후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주목받기 시작

70년대 초반부터 작품 활동을 하며 자유로움 속에서 늘 변화를 추구해온 그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후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예술가는 혁명가며 창작이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권 교수는 “그리스, 이태리, 영국,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의 모든 미술관을 돌아보며 내가 과연 어떻게 그림을 그릴 것인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미국 유학을 계기로 순수 추상회화에서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형상으로 드러내어 표현한 신형상미술로 전향하게 된다.

 

“잘 그리기만 한 그림을 보니 너무 차갑더란 거죠. 인간적인 체취, 인간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죠. 인간의 정신과 감정이 바로 인간의 실체에요. 그래서 그 인간의 모습을 그림에 담기 시작한 겁니다.”

 

실물처럼 그리기 위해 고심하며 원근법을 중시했던 사실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모더니즘은 눈에 보이는 것, 눈속임이 아닌 진리를 그리고자 했다. 그림 자체가 평면 위에 존재한다는 것에서 추상화는 출발한다. 눈으로 보는 그림이 아닌 사고하는 그림인 것이다. 그러나 너무 난해하고 추상적인 기법은 대중에게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해골 통해 생명의 소중함 표현

권 교수의 작품 중 가장 눈에 띄는 소재는 해골이다. 권 교수는 해골을 화폭 위에 그리기도 하고 모형으로 만들어 공간에 설치하기도 한다.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줄곧 다루어온 ‘해골’ 연작 시리즈는 인간 실존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병원에서, 의대를 다니던 형의 방에서 늘 뒹굴던 해골. 처음에는 무섭고 두렵던 그 해골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했으며 작품의 영감도 얻었다. 그는 해골을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함께 생명의 고귀함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썼으며 해골을 통해 인간의 고통, 슬픔, 전쟁의 잔혹함을 알렸다.


 

                                                                                       해골들 

 

2000년대 들어서 권 교수는 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무심결에 그은 듯한 선이 하나의 형상이 되고 하나의 의미가 되는 선은 동양사상을 함축하고 있다. 계속 선을 그어가는 동안 그 선은 사회의 현실과 아픔, 함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권 교수는 상인동 가스폭발사고나 대구지하철참사 등 대구시민의 아픔을 무수한 선들과 그 선 너머로 어렴풋하게 드러나는 형상들을 통해 나타냈다. 

 

그의 작품은 구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이며 상징적이면서 표현적이기도 하다. 평면 회화 외에도 사진, 설치, 영상 등 그야말로 다양한 형식을 넘나든다. 끊임없는 변모를 거듭하며 삶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고, 그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권 교수는 “새로움이야말로 예술의 생명이며 예술은 바로 창조”라고 했다. 창조가 없으면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M.T

 

지역문화발전에 앞장, 주춧돌 마련

그의 열정은 작품 활동뿐만 다른 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미술협회 대구지회장, 한국예총 대구광역시연합회장 등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그는 대구의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대구미술관 건립의 초석을 다지고 이인성 미술상을 제정했고,  가창 정대 분교 자리를 미술광장으로 만들어 전시와 체험 장소로 만들었다. 또한 대구국채보상운동공원의 달구벌대종 사업의 기획단장을 맡아 진행하였으며 대구오페라축제, 컬러풀 축제로 바뀐 달구벌 축제, 전국창작합창제 등 대구의 굵직굵직한 문화행사들을 직접 기획하고 조직했다.

 

러한 것들이 가능했던 것도 지역의 문화예술현안들을 아트포럼을 통해 제안하고 토론하여 끊임없이 방향을 모색하고 여론을 형성해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문화를 통해 도시 발전을 꾀해야합니다. 삶이 문화를 만들어내고 예술이 삶의 방향을 만들어나갑니다.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권 교수는 최근 국제한민족포럼이 결성되어 고문을 맡게 되었다며 “한민족을 세계 속으로 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정경은 기자

                                                                                           엠플러스 한국 200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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