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    업데이트: 18-05-11 10:21

Critics

숭고한 공간과 고귀한 흐름_로렌스 디스 (미술사학자)
아트코리아 | 조회 241

숭고한 공간과 고귀한 흐름

로렌스 디스
미술사학자



화가 겸 조형 예술가인 권정호 화백은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전시회 제목을 떠올렸다. 작가의 창작물에서 강박적인 해골 이미지들이 그러하듯이 전시회의 제목은 직관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다다르게 한다. 제목을 소리 내어 읽어 보면 셰익스피어 시 한 구절 혹은 도교적인 지령 같기도 하다. 문장의 영어 발음은 수정처럼 맑게 굴러가고, 단어의 의미는 깊은 산기슭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권정호 화백의 고국인 한국에는 물과 공기가 안정된 온화함 속에서 산골과 계곡을 세공한다. 물과 공기는 섬세한 움직임에 반응하는데 바람은 갈대를 누이고, 빽빽하게 심어진 논두렁 속의 물은 반짝거린다. 지어 놓은 제목에서 순수한 어떤 것이 발산되는 듯하다. 작가는 숭고하고 끝없이 넓은 공간에 우리를 초대했고 우리의 합목적성을 생각하게 했다. 일상의 삶에 의문을 제기했고, 작품 사이에 여백을 두었다.
 
권정호 화백은 대구의 계명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 했고, 빅 애플이라 불리는 미국 뉴욕의 프랫 대학원에서 심층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키웠다. 1980년대 초반에 작가가 머물렀던 뉴욕은 미디어 아트의 시대였다. 그 중심부에 앤디 워홀, 키스 해링, 장 미셸 바스키아, 제스퍼 존스 등이 있었다. 작가는 이곳에서 새로운 내면을 발견한다.
 
작가가 미국에 왔을 때 영락없이 그 문화와 흐름에 스며든다. 그 당시는 선과 추상이라는 미술의 언어가 지배하고 있었다. 추상표현주의의 선두 주자 격인 잭슨 폴록이 눈을 감은지 25년 정도 되었는데 그는 동북아 철학을 자신의 작품에 적용한 첫 번째 서구 화가였다. 실존주의자, 알코올 중독자에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한 사람이었다. 올 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 속의 기(氣)와 균형은 동북아 예술가들의 영향력을 상징한다. 호흡을 단련하고 기를 수련하는 것을 미국으로 들여왔고, 음양의 조화와 불교의 선종(禪宗)도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
 
그것이 어쨌든 권정호 화백이 1982년 뉴욕에 발을 들였을 때 세계 예술의 흐름에 강력하고 새로운 경향이 등장한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들이 국가를 재건하는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노력을 통해서 동북아와 서구, 뉴욕의 낡음과 새로움은 섞이게 되고 예술가들은 현상의 진원지인 뉴욕에서 자신들의 영향력, 리듬, 세계 속에서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1980년대부터 그는 해골을 그리기 시작했고 채색해왔다. 초기부터 그의 작품들은 엄숙한 주제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거대한 크기에서 아주 작은 크기까지 다양한 크기와 많은 수로 구성된 해골을 주조하고 있다.
 
권정호 화백은 인간 의식 저편을 보여주는 한 가지 모티브와 한 가지 형태만 주장해왔다. 인간 존재의 허무함은 그의 작품에서 시작부터 우리를 따라다닌다. 예술가에게 한 가지 주제만 계속해서 그리는 것의 의미를 자문해본다. 왜 작가의 작품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철과 종이로 된 해골로만 이루어진 것일까?
 
작가는 천주교,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서 약속이나 임무 같은 자신에게 주어진 어떠한 운명을 느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살리고 고치는 아버지를 보면서 혹은 신자들을 양육하고 상담하는 신부님을 보면서 예술가가 되는 것을 삶의 소명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천주교 성자들의 초상을 보면서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을 것이다. 그의 창작품을 보고 있으면 20세기 예술가의 역할을 생각나게 한다. 소비 위주의 전체 사회에서 해골이 상징하는 인간 존재의 유일성은 작가의 예술에 대한 정신적 욕구를 드러나게 한다. 작가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것은 돈이나 명품 산업과 유착되어서는 안 되고 소비자들을 단순히 즐겁게 하기 위해 존재해서도 안 된다
 
그의 도덕적 신념은 확고하다. 처음 뉴욕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는 성질이 다른 문화의 접점을 찾고 연결하는 지칠 줄 모르는 한 명의 사절단이 되기를 자처했다. 이 점에 있어서 <숭고한 공간과 고귀한 흐름>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회는 하나의 증거이다. 작가는 터키 출신 프랑스 예술가인 코스쿤과 전시회를 같이 하기 위해서 수성아트피아 측에 열정으로 노력했다. 파리에 사는 코스쿤의 작품을 들여오는데 필요한 경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을 함에 있어 화가의 원칙은 뚜렷하다. 삶 속에서 사회적 역할을 찾고 창작물로 사회에 이바지하려 노력하면서 자신의 삶과 예술을 세상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실제로 이 조형예술가에게 예술은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가 속해 있는 문화에는 음양의 조화라는 우주 만물에 대한 철학이 있다. 동북아의 지혜인 이 철학은 서구인들 문화 속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세계화를 통해서 접해왔다. 한 물체에 우주가 들어있고 물체는 무한함 속에 들어있다는 이 이론은 삶 속과 죽음 앞에서 충만함을 갖게 한다. 그리고 유일함 속에 무한함이 있다는 데카르트의 논거를 증명하는 DNA의 과학적 발견이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둘은 실용주의와 관념주의를 갈라놓고, 동북아와 서구를 갈라놓는다.
 
그렇지만 작가가 미국에 살았을 때 공통점을 찾고 차이점을 인정하는 서로 다른 흐름 속의 수렴이 있었다. 이 정신도식은 그의 예술 속에 녹아 있다.
 
작가의 작품은 선(禪)의 에너지를 표현하고 한국, 중국, 일본이 공유하는 동북아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은유의 표현과 함께 자유로운 붓질은 때로는 두껍게 때로는 멋있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표현된다. 선을 표현하는 에너지의 순환을 통해 동물, 꽃, 사람, 주변 환경, 현대인 등을 그린다. 팝 아티스트나 앙리 마티스를 생각나게 하는 그의 이미지는 명료하고 깨끗하다. 해골을 나타내는 방식은 장 미셸 바스키아의 낙서화처럼 표현주의적인 특성이 있다. 작가가 스피커를 그림에 결합했을 때는 제스퍼 존스가 움직이는 물체를 사용한 것을 떠올리게 했다. 즉, 이미지의 부재에서 발산하는 소리를 선을 통해서 묘사한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권정호 화백은 형태의 문제와 존재의 부재 문제를 한 가지 구조로 연결한다. 매스 미디어 속의 이미지 팽창을 이미지의 소멸로 되돌려 놓는 것을 구현한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 속의 시체가 쌓여 있고 해골이 나뒹구는 언론 보도 사진을 보고 무언가를 느낀다. ‘그것은 자연적인 죽음이 아니라 대량 학살 같은 것이었다’.
 
해골은 불교의 도상학(圖像學)에 속하지 않고 서구식 표현의 여러 곳에 존재한다. 앤디 워홀이 <해골> 시리즈를 1976년에 내놓았을 때 20세기의 해골 작품은 더 이상 음산한 이미지의 표현이 아니었다.
 
선진국에서 사람들은 죽음을 직접 실감하지 못하고 현실과 멀게 느끼고 있었지만, 권정호 화백은 해골 작업을 자신의 그림의 주제로 정한다. 둥글고 서구의 상징인 형태는 동북아의 상징인 추상적인 점을 대체한다. 우리의 의식이 너무 많은 이미지 속에 파묻혀 가고 의미가 상실되어가는 시대 속에서 화가는 한지로 해골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된다. 얕고 투명하고 머리카락 같은 가는 섬유들로 이루어진 이 재료는 흐물흐물한 미역 혹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같이 유연하고 맹그로브 나무의 뿌리같이 견고했다. 맑은 흰색 빛깔에서 권정호 화백은 투명한 기둥 속에 종이로 된 자신의 해골들을 배치시킨다. 지치지 않는 창작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의 해골은 점점 더 많아졌다. 이것은 마치 물과 공기로 가공된 한지 해골들이 자신의 삶을 연장하려 도전하는 것 같다.
 
권정호 화백의 예술적 성과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신앙심과 자신에 대한 엄격함으로 동북아의 정신과 서구 정신의 합일에 헌신해 왔다. 행동하고, 창작하고, 일하면서 삶과 죽음, 긍정과 부정, 물질과 정신 같이 대비되는 두 가지 관념 사이의 틈을 메운다.
 
닥종이로 된 그의 해골은 우리에게 인간의 나약함, 아름다움, 우주, 독특함을 말하려는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은 보편적인 지식을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하지만 우리가 서울이나 파리, 뉴욕, 이스탄불 어디에 있든지 그의 작품들은 우리의 시선을 끌 것이다. 권정호 화백의 예술적 성과는 다가오는 시대의 인류에 값진 재산이다.
 
■ 미술사학자-로렌스 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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