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    업데이트: 18-05-11 10:21

Critics

미래를 통하는 문_김복영 (서울예대 석좌교수)
아트코리아 | 조회 282

미래를 통하는 문

김복영
서울예대 석좌교수



[전시리뷰]
 
개인전 기록만으로 18회를 맞는 권정호전은 종래의 타블로를 대형 설치로 바꾸어 전시장 플로어에서 천장에 이르는 높이와 방의 전후좌우 폭 대부분의 공간을 2300여 개의 인조 인골로 채워 놓았다. 3열 4횡 5단의 아크릴 케이스에 인골을 안치하고 케이스를 전열과 후열로 해서 3차원으로 축조한 그리드형 인골 설치물을 선보였다. 케이스마다 총60개의 인골이 배열되고 케이스 하나하나가 집적단위가 되는 대형설치물이 아닐 수 없다. 단위들을 포개어 쌓는 방식이 압도적이고 위용을 느끼게 했다
 
인골 하나하나는 두개골 모형에 풀 먹인 젖은 닥을 도포하여 형상을 만들고, 말린후 모형에서 건조된 닥의 형태를 걷어낸 것으로, 인골의 명시적 현상을 두피(頭皮)가 뚫리고 성긴 틈새로 안쪽이 드러나는 반 투명 반(半)입체상으로 처리했다. 이것들에 조명을 가 함으로써, 안팎이 드러나고 얇은 노란빛 닥의 표면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미묘한 앙상블을 연출하는데다 전체의 구조물 또한 대형 심포니를 연상시켰다.
 
작가는 유사 주제를 18번째 다루고 있지만, 인골은 여전히 그가 가장 자주 택하는 단골 메뉴다. 이번 전시는 물론이고 지난해 대구대학교 정년 기념전 또한 기억할 만하다. 그가 평생을 인골과 더불어 살며 이것들과 함께 해온 역정을 한 문에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떠한 연유에서 인골을 평생의 소재로 삼게 되었는지는 고교시절에 경험한 죽음에 대한 담론으로 소급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의 내심에 트라우마로 자리하게 되고 이를 뛰어넘으려는 일련의 예술행위가 그의 생애의 테제가 되었다.
 
대구화단을 일선에서 이끈 주역으로서 활동적이고 모범적인 경력의 이면에는 이와 대조적인 그만의 내밀이 고스란히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에 체험한 생명에 대한 외경은 그가 평생 인골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드러난 겉모습의 세계가 갖고 있는 얄팍한 표피를 과감히 걷어 냄으로써 그 안쪽을 응시하는 동기가 여기서 이루어졌다. 보이는 것들의 껍질을 벗겨냄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들의 경계를 넘보려는 의욕이 그의 평생을 지배했던 건 이 때문이었다. "나는 개인적인 작품을 만들지만 형식을 만들지는 않는다. 정신이 중요하다. 정신속에서 형식을 만들고 형식을 만들기 위해 정신을 방임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게 나를 지배하는 생각이고 신앙이고 확신이라"는 그의 언급은 작가가 응시하는 세계가 외관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내적인 정신세계라는 것을 적시한다.
 
권정호의 '정신세계'는 이 맥락에서 삶과 죽음을 소재로 해서 모색되고 오늘에 이르렀다. 삶과 죽음을 응시하면서 그 경계가 확실치 않다는 데 주목했다. 그가 이번 전시에 내놓은 닥종이 인골이 이를 말해준다. 인골들은 외관이나 내실이 모두 불확실할 뿐 아니라 내외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반 투명체로 제작되었다. 근작들은 일체를 가르는'경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에 시사한다. 그러면서도 보이는 인골을 대거 등장시켜, 보이지 않으나 어디엔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구경(久境)의 세계를 끊임없이 응시하고 말하려 한다. 그에게 인간과 사물을 아우르는 궁극의 세계이자 정신의 세계는 존재의 경계 구분을 불허한다. '형식을 만들기 위해정신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그의 언급이 이를 한마디로 요약한다.
 
그는 인골을 소재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경계를 탐구하는데 일생을 바치고 있다. 인골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걸 담고 있는 그릇이요 상징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반투명체이자 반쯤은 경계가 열려있는 인골과 인골의 모뉴망을 구축한 것도 정신의 무한성을 인골을 빌려 탐색키 위해서 였다.
 
권정호展_미래를 통하는 문 (쿤스트독 2010.12.3~12.16)
 
월간미술 2011년2월호
 
■ 김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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