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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평론 자료

[이사람] 박병구 화가 / 김수영기자 이지용기자 2019-02-22
아트코리아 | 조회 1,250
[이사람] 박병구 화가 / 김수영기자 이지용기자 2019-02-22


“7년간 대구미술협회 이끈후 돌아온 화실…심상 녹여낸 풍경 작업에 집중”
 
오는 3월 서울, 5월 대구 전시를 앞두고 마무리작업에 한창인 박병구 화가. 그의 신작들이 시선을 끈다.
 
박병구 화가의 신작들.


7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대구미술협회를 이끌어왔던 박병구 화가(59). 협회장으로 있는 동안 대구아트페스티벌이란 새로운 개념의 미술축제를 만들고 국제교류에도 힘써오는 등 지역미술인들의 창작활동 촉진 및 대외 홍보에 주력했던 그가 회장직을 떠난지 딱 1년이 지났다.

“협회장으로도 열심히 활동했지만 늘 마음 속으로 다시 돌아올 곳은 화실이라고 생각했다”는 그가 화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학창시절의 치열했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 고민하는 작업을 하겠다는 그는 오는 3월 서울 전시와 5월 대구 전시를 앞두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미술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는지요.

“어릴때부터 미술로 상을 많이 받아왔던 터라 그림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습니다. 하지만 중 1학년 첫 미술수업에서 손을 드로잉했는데 선생님이 나중에 따로 불러 미술부에 들어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미술부 활동을 했고 고등학교때도 미술부 참여를 제의받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거셌습니다. 대학입시를 해야 하니 미술부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미술부 활동을 했는데 우연히 제 그림이 신문에 실리면서 부모님이 제 의견에 지지를 해주셨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겠다는 말에도 반대를 하지 않으셨지요.”

▷대학에서 미술 전공을 하는데 큰 영향을 준 일도 있었다고 했는데요.

“고등학교때 허용 미술선생님이 손일봉 선생님에게 자주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손일봉 선생님은 대구 1세대 작가로 1920년대 수채화 개척의 선두에 섰던 거장이었지요. 그런 분을 지척에서 보는 영광을 안고 있던 가운데, 한번은 그 분을 동성로에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손일봉 선생님은 오후 늦게 동성로에 산책을 나오셨는데 우연히 석양을 등지고 서있는 그 분의 모습을 보고는 ‘나도 저런 멋진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화가로서의 삶을 살도록 하는데 쐐기를 박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30여년간 전업작가의 길을 고집해왔습니다.

“대학 졸업 후 교사로 갈까하는 생각도 잠시 가졌습니다. 교사자격증이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교사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라는 권유을 많이 했지요. 그 당시는 전업작가라는 개념이 제대로 서지 않았던 터라 주위의 많은 선배들이 교편을 잡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림을 워낙 좋아했던 터라 그림에 전념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는 전업작가가 인정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로필에 ‘전업작가’라고 꼭 표시를 했지요. 지금껏 전업작가의 길을 걸어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대구미술협회 수장 떠난지 1년 
창작활동 동력 준 대구아트페스티벌 
해외 교류 활성화 등 의미있는 시간
30여년간 전업작가 길…후회는 없어
막걸리 한잔과 스케치, 더없는 즐거움 

상상력으로 재창조…이상화된 자연 
젊은날 수없이 현장실습 갔던 수성못
추억 묻은‘연작’…많은 변화상 읽어 
3월 서울, 5월 대구展 준비 바쁜 나날

지역미술인 힘 모아야 업그레이드 계기
젊은 작가들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길
예술은 ‘마라톤’…한걸음씩 정진해야 



▷전업작가라서 좀더 치열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대학졸업 후 줄곧 자연풍경을 그려왔습니다. 자연풍경을 그리는 방법은 다양한데 저는 현장스케치를 좋아합니다.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막걸리 한잔을 하는 그 기쁨과 여유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직장이 없으니 틈만 나면 현장스케치를 떠났고 여유를 즐겨가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 과정이 자연풍경을 그리되 일반 풍경화와는 다른 그림을 그리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는 많습니다. 그 속에서 박병구 화가의 풍경화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특징이 있습니다.

“말하기 죄송하지만 예전에 저는 나쁜 버릇(?)이 있었습니다. 다른 화가들이 전시팸플릿을 보내면 작품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그 작가의 작품이 내 속으로 들어올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박병구 그림만의 색채를 만들어낼 수가 없으니까요. 박병구만의 풍경화를 만들기 위해 많이 돌아다니고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특히 1996년 첫 유럽여행에서 파리 오르세미술관을 다녀오고 난 뒤 제 작품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지금의 화풍이 나왔습니다. 자연의 모습을 담아내지만 있는 그대로가 아닌, 저의 심상을 녹여내서 원래의 자연모습과는 또다른 풍경을 만들어 나갔지요. 수없이 많은 현장 답사를 통해 새로운 구상회화의 길을 찾아헤맨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그의 작업에 대해 미술평론가 김영동은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화면은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관념화되고 이상화된 자연에 가깝다.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재창조된 자연으로 심상적 풍경이라 하겠다. 그래서 한 평론가는 ‘몽환적 풍경이 자아내는 미학’이라고 평했다. … 그렇다고 꿈 속 같지는 않다. 그림 속에 반복되고 있는 선과 형태, 그리고 색채가 리듬을 만들고 원근에 차별없는 채색에도 불구하고 풍경의 형태로써 원근감이 감지되도록 한 시선처리로 인해 일어나는 활달한 움직임이 있다. 평면적 패턴의 현대성과 감성적 상상공간 사이의 긴장이 불러일으키는 생동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국의 다양한 풍경을 담았지만 특히 ‘수성못’ 연작이 많습니다. 그 이유가 있는지요.

“수성못은 젊은시절 수없이 현장실습을 갔던 곳입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고 시간이 없을때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가서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수성못이지요. 여기에 얽힌 추억이 많고 그렇다보니 수성못을 많이 그리게 되었지요. 저의 ‘수성못’ 연작을 살펴보면 수성못의 변화상도 읽을 수 있습니다. 수성못은 저에게 작품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미술협회장으로 일하면서 여러 성과를 냈습니다.

“대구미술인의 자긍심은 물론 협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2011년 협회장에 당선된 뒤 바로 한달만에 대구아트페스티벌을 만들었습니다. 그 후 매년 봄에 열리고 있는 이 행사는 일반 아트페어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었지요. 100% 지역작가로 전시부스를 채우고 판매되는 금액을 작가가 100%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작가에게 전시할 기회를 줌으로써 창작동력을 준 의미있는 행사라 할 수 있습니다. 회원들의 해외교류 활성화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중국, 독일, 헝가리, 인도, 러시아 등과 교류를 함으로써 대구와 대구미술을 알리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대구미술100년사’를 발간했습니다. 근대기에 한국미술의 중심이던 대구미술의 저력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의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회장직을 마치고 1년간 나름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우선 작업하는데 열중하려 노력했습니다. 회장으로 있을 때도 매일 새벽에 나와 서너 시간씩 작업했지만 몰입도에서는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작업을 하는데서 조급하게 어떤 성과를 내기보다는 새로운 작업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는 측면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가족, 친구들과도 지낸 시간이 별로 없어서 이런 여유도 가졌습니다. 밀렸던 숙제를 하고 재도약을 준비하기 위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올해 전시계획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오는 3월28일~4월2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인사아트에서 개인전을 가집니다. 10여 년 만에 서울에서 여는 전시라서 설레기도 하고 심적 부담도 큽니다. 5월21일부터 6월3일까지는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집니다. 대백프라자갤러리는 작업을 시작한 초창기때부터 인연을 맺었던 의미있는 장소입니다.” 

▷대구미술협회장으로 활동하고 화가로도 오랫동안 지역에서 작업해오면서 지역미술계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듯 합니다.

“대구미술인들의 저력은 누차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입니다. 이런 저력을 제대로 피워내기 위해서는 미술인 개개인의 창작에 대한 열정도 필요하지만 미술인들의 단합된 힘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동안 지역에는 보이지 않는 계파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반목, 질시가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역미술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기 위해서는 미술인부터 힘을 합쳐 지역미술 발전을 함께 이끌어가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젊은 미술인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화가로서의 삶이 고단하기 때문인 듯한데 예비 미술인들에게도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예술인의 길이 험난한 것은 맞습니다. 춥고 배고픈 직업이지요. 또 이름이 나기까지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작업해야 하는 외로운 길입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예술은 마라톤입니다. 단박에 성과가 나고 조급한 마음에 빨리 뛴다고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를 정해두고 한걸음씩 지치지 않고 열심히 걷다보면 언젠가는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글=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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