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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평론 자료

[김수영의 그림편지] 박병구 作 ‘기억- 수성못’ 2017-02-17
아트코리아 | 조회 877
잊었던 추억들을 가만히 우리 앞에 다시 소환하다



#박병구 화가=계명대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8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대구미술대전 초대작가 등을 지냈다. 대구미술협회장, 대구예총 수석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 대구에서 급부상하는 관광명소를 꼽으라면 수성못을 꼽는 이가 많을 것입니다. 두 달 전쯤 한 지인의 초대로 수성못을 눈앞에 두고 스테이크를 먹은 적이 있는데 고급스러운 저녁식사에 어울릴 만한 화려한 불빛의 향연이 수성못을 중심에 두고 펼쳐져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수성못 야경!’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던 이유를 알 만했지요. 수십 년을 살았던 대구에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며칠 전 ‘김수영의 그림편지’의 첫 편을 쓰면서 그림으로 수성못을 접했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서 두 달 전 수성못의 풍경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펼쳐졌던 그 화려했던 불빛이 제 기억을 자극했습니다. 그 기억을 떠올리니 박병구 화가의 작품 ‘기억- 수성못’은 너무나 소박해 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수성못의 봄풍경을 담은 것입니다. 분홍, 노랑, 연두 등 파스텔톤을 주된 색상으로 사용해 포근해 보이는 풍경입니다. 수성못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핀 벚꽃, 개나리 등과 이름 모를(실제 이름이 없는 꽃이 아니라 기자가 모르는) 꽃들이 활짝 피어있습니다. 화사한 봄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린 듯한데 꽃, 나무 등을 단순화해서 담백한 느낌을 줍니다. 연분홍의 벚꽃이 무리 지어 터질 듯 피어있는 모습은 피부가 하얀 아이의 분홍빛 볼을 닮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이 피부에 두껍게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입술을 새빨갛게 칠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물과 불을 동시에 품은 듯 촉촉하고 발그레한 피부와 입술은 그대로 놔두어도 충분히 예쁜 것을. 벚꽃을 보면 그런 아리따운 소녀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제가 갖는 이 같은 벚꽃의 느낌을 이 작품은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파스텔톤을 사용하지만 밝지만은 않습니다. 파스텔톤의 색상이 자칫 가벼워질 수 있는 위험성을 작가는 잘 알고 있는 듯 약간의 무거움, 즉 깊이감을 줍니다. 흰색을 섞어서인지 왠지 모르게 차분한 빛깔의 연분홍과 노랑, 약간 어두운 빛이 도는 듯한 연두와 초록 등은 자칫 봄볕의 따사로움에 들뜨기 쉬운 우리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줍니다. 그리고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줍니다. 바쁜 일상에 묻혀 어느새 잊어버렸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우리 앞에 다시 소환시키는 힘이 있는 것이지요.

그의 그림을 보면 어릴 적 가족과 함께 찾았던 수성못 풍경이 떠오릅니다. 당연히 지금 수성못과는 좀 다른 모습입니다. 수성못에서 운동하는 이들이 늘면서 수성못 주변은 걷기 좋은 곳으로 새단장 됐습니다. 한때는 수성못의 명물로 못 주변에 즐비했던 포장마차는 사라지고 못 주변의 허름했던 건물들은 고급 식당, 커피숍 등으로 새 단장을 했습니다. 수성못의 야경 또한 이런 최근의 추세에 힘입어 새롭게 만들어진 풍경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수성못의 옛 모습을 어설프게나마 기억하는 저는 수성못이 점점 세련된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솔직히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수성못에 익숙해져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수성못의 소박한 모습을 ‘기억- 수성못’이 되살려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수성못의 야경에 현혹돼 휘황찬란한 불멸의 도시 같은 수성못의 밤만 기억하던 저에게 약간은 촌스럽지만 인간미가 살아있는 수성못의 낮 풍경을 다시 불러왔습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삼킨 채 불빛만을 기억하게 했던 지금 수성못의 진풍경을 보여준 것입니다.

주로 풍경화를 그려왔던 박 작가는 지금도 시간만 나면 캔버스를 들고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고 합니다. 차 뒤 칸에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를 싣고 여행을 떠나는 화가의 마음을 일반인은 잘 모를 것이라 몇 번이나 강조하는데 저는 약간은 알 듯합니다. 주부들이 냉장고 가득히 음식을 넣어두었을 때의 그 뿌듯함과 충만감이라 생각됩니다.

박 작가의 ‘기억’ 연작은 수성못을 비롯해 전국의 다양한 명소를 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수성못이 마음에 듭니다. 지척에 있는 곳이기 때문이겠지요.

박 작가도 어릴 때부터 수성못을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갔다고 합니다. 그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본 풍경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해 표현합니다. 눈을 통해 들어온 풍경에 자신만의 감성을 더해 그리는 것입니다. 이 감성은 그의 인생 철학과 살아온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수성못의 풍경을 완벽하게 재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가슴속에 남은 수성못의 진정한 이미지를 작품화했다는 면에서 수성못이 가진 실체를 드러내 보여주는 시도라고 생각됩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합니다. 인간이 가진 뇌의 한계 때문에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흐르는 시간에서도 어떤 일이나 장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삭제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억입니다. ‘기억- 수성못’에서는 이런 기억을 만날 수 있습니다.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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