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6    업데이트: 22-08-17 09:16

보도 평론 자료

의경(意境)을 통한 일상 풍경의 재해석’- 박병구의 <기억의 풍경展>
아트코리아 | 조회 883

의경(意境)을 통한 일상 풍경의 재해석’- 박병구의 <기억의 풍경>

 

서양화가 박병구는 도시풍경에 따르는 필연적인 각박한 삶의 현실에서 벗어나 주변의 여유로운 자연공간을 중심으로 체험한 일상의 풍경에 주목해 온 작가이다. 그래서 그는 길을 가다가도 무심히 지나치며 바라본 자연의 이미지나 여행길에서 마주친 낯선 지역의 풍경들이 여느 사람들처럼 단순한 기억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비친 정경(情景)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의미를 부여해 왔다. 그리고 그 기억을 되살려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인식하면서 비움과 채움에 초점을 두어회화라는 매체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천착해 오고 있다.

 

조형적 측면에서 바라본 그의 작품 속 화면 공간구성은 실재적 풍경이 아닌, 작가적 내적 감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치열함이 배어 있다. ‘일상(日常)’이라는 의미 자체가 예술의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얼핏 평범하게 보이는 그의 일상은 여느 작가들과는 달리 무한한 모티브가 되고 작업의 중요한 소재(素材)가 되어현대미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예술작품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술이란 일상, 즉 매일같이 반복되는 생활에서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삶의 의미와 감성을 조형요소의 원리를 통해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예술행위를 말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일상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작가의 자유로운 활동으로 창조적이고 표현적인 형식(작품)을 통해 보편타당한 미적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비춰 볼 때 작가 박병구 역시 일상을 중심으로 도식적인 광대한 도시풍경에서 벗어나 작고 아담한 외곽의 자연 풍경을 즐겨 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종종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단순한 풍경과 무심히 마주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일부 기억과 여운으로 남아 있는 시골의 나지막한 집들이며 그 주변의 풍경과 소도읍(小都邑)의 정감 어린 풍경을 대상으로 저마다의 특징을 살려 작품으로 재구성해 왔다. 그는 평소 위압적인 대도시의 살벌한 생활환경에 묻혀 치열하게 부대끼면서도 푸른 산과 너른 들판을 끼고 아늑하게 자리 잡은 평화로운 촌락이며 자연과 더불어 놀이터로 삼았던 논두렁, 밭두렁 등 아련하게 남아 있는 유년시절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곧잘 틈만 나면 도시를 벗어나 시골의 일상적 풍경을 찾아 나선다고 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아니라서 다소 낯이 설긴 해도 그곳엔 정서적,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그는 어디를 가든 여행을 떠나면 언제나 자신이 접한 여행지의 풍경들을 기억 속에 저장하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일상에서의 체험을 여행에 주목하는 이유다.

발걸음 닿는 대로 가다보면 머무는 곳마다 인정 많은 주민들과 짧은 시간이나마 일상을 함께 누릴 수도 있고 생소한 경험을 통해 또 다른 일상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의 소재를 직접 발품으로 찾아 눈으로 기억하고 작품으로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의 작품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일상에서 느끼는 삭막한 도시 풍경과는 달리 기억 속 자신이 경험한 자연의 풍경과 시·공간적으로 교류하는 감성의 표현을 절절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새삼 그의 작품을 대하는 순간, 접할 수 있는 밝고 명쾌한 색채감은 어쩌면 풍경화의 사실적 재현보다는 감성적인언어구사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기억 속의 낯선 풍경은 과거라는 시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아련한 향수와 추억을 언뜻 눈에 띄게 감성적인 색감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작업 할 때 선택하는 색채는 여유로운 공간 구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국적인 미감의 자연스러움을 보여주는 절제감이 돋보이기도 한다. 단지 색상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닌 작품 전체에서 보이는 분위기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전반적으로 파스텔 톤의 튀지 않는 색채를 사용하며 미세한 색채의 변화를 통해 공간적인 깊이감과 자연스러운 연결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특이한 작업기법이 아닐 수 없다.

 

예술가의 심미적(審美的) 특성은 일상에서 본 단순한 대상을 물리적 자극이 아닌 감각에 바탕을 두고 의미를 부여하며 관찰하게 마련이다. 여느 사람들이 볼 때엔 아무 것도 아닌 대상에 작가가 나름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경험하는 모든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 새로운 발견에 도달하며 주관적인 경험의 이미지를 화면에 담아낸다. 이는 곧 예술 활동을 통해 개인적인 삶을 감성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축적된 경험 속 기억은 각자의 방식대로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시각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 박병구의 일상 속 풍경은 단순히 작업에서 얻어지는 물리적인 자극만이 아닌 또 다른 창작의 의미를 가지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게 되고 이를 모티브로 감성이 묻어나는 작품을 완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고 하겠다. 이 같이 일상의 소재와 개인적인 기억에 초점을 맞춰 소재를 시각화 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과거나 현재에 한 번 쯤 보고 느꼈을 정서적 감성과 시공간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알랭드 보통(Alain de Botton1969~)여행의 기술에 등장하는 미술 평론가 존 러스킨(John Ruskin1819 ~1900)어떤 장소의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그것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며 그 방법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했다.

 

작가 박병구의 작품도 관람자의 시각에서 볼 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적 풍경을 새롭게 형상화하는 과정으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예술의 기법은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묘사한 작품을 통해 백미(白眉)를 창출해 내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그림이라는 기록의 매개를 통해 시간이 멈춰 버린 기억 속 풍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 이미애 (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팀 팀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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