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0    업데이트: 18-07-05 14:01

News & Critics

[전원 속 예술가들 .16] 서양화가 공성환
공성환 | 조회 2,968

“난 청개구리”

산에서 살면서 물 그림 그린다고 내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

진부하지 않은 작품 만들기, 사색의 시간이 필요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줄.

시골생활의 낯섦, 작업에 좋은 자극제가 됐다. 그것이 자연의 힘이다.


서양화가 공성환의 집 앞마당에 서면 청도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공 작가는 마당에서 청도읍내를 바라보면서 작업의 영감도 얻고, 일상에서 지친 마음의 여유도 찾는다고 한다.
1955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16회를 열었다. 한국구상대제전, 아트 싱가포르, 아트 대구, 구상1번지전, 동방지광- 한·중 정예작가초대전 등 단체전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대구시미술대전, 정수미술대전, 청도미술대전 심사위원을 맡았다. 현재 한국미술협회와 신미술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강과 바다의 물결을 화면 가득히 그리는 서양화가 공성환은 2004년 청도군 각북면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뒤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지인들이 붙여준 ‘청개구리’다.

“물결을 담은 ‘물’ 연작을 2007년 그리기 시작했어요. 산에 들어가서 물 그림을 그린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지요. 제 집이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거든요.”

공 작가는 그동안 사실주의 기법의 그림을 그려왔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그림을 주로 그려온 그가 산에서 살면서 흔히 보는 풍경을 그릴 법한데, 완전히 반대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20년 넘게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 작업실을 뒀던 그는 늘 작은 꿈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 좋아서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는 직장까지 그만둔 그로서는 모든 것이 행복했는데, 한 가지 불만은 작업실이 도심에 있다는 것이었다. 여건만 되면 시골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공성환 작가가 작업실에서 대표작인 ‘물’ 그림을 배경으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청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2년간 미술교사로 있었습니다. 그 때의 기억이 저를 자꾸 시골로 들어가라고 재촉했는지 모릅니다.”

결국 그는 다시 시골로 찾아들었다. 그것도 청도로.

하지만 그가 청도를 좋아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짧은 교직생활에서 그림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다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2년간 교사로 있으면서 그림을 단 세 점밖에 그리지 않았더군요. 이렇게 해서는 작가생활을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이 좋아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는데, 먹고 살기 위해 그림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교직을 관둔 그는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아내가 말릴 법도 했지만, 남편의 용단에 오히려 박수를 치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공 작가는 그런 아내가 지금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단다.

“시골로 들어가면 당연히 청도에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구에서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에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가진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행운처럼 느껴졌습니다. 청도 이곳 저곳을 돌아보던 중 지금의 집터에 왔다가 눈 아래로 펼쳐지는 자연풍경에 반해 바로 결정해버렸지요.”

그의 말대로 집 앞마당에 서서 눈 앞에 펼쳐진 경치를 보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많은 사람이 편리한 도시를 버리고, 다소 불편하지만 시골로 찾아드는 이유를 알 듯도 했다.

그는 시골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으로 늘 낯섦을 즐길 수 있는 것을 꼽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작가에게 낯섦은 작업에 좋은 자극제이자 영감이 되곤 한다.

“이 곳에 들어온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매일 마주치는 풍경이 늘 낯설고 새롭습니다. 어떤 때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에 아직도 적응되지 않아 당황스럽기도 하지요. 이것이 바로 즐거움입니다. 늘 새로움을 주는 자연이 한 곳에 안주하면서 편해지고 싶어하는 제 마음을 가다듬게 만들지요.”

사실 ‘물’ 연작도 이런 치열한 작가정신에서 비롯됐다. 그는 사실주의 작품을 그리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나 사물을 담아내지는 않는다. 그의 눈을 통해 들어온 풍경은 그의 머리와 가슴을 통해 새롭게 변한다. 이것이 바로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산속에 있지만, 그는 물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현대미술에서 사실주의는 자칫 진부한 표현기법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인물과 풍경 등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려왔는데, 진부함에 빠져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일반 사실주의와는 차별화된, 공성환만의 사실주의 그림을 찾고자 노력했지요.”

그는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뒤 연과 낮달 등을 소재로 한 풍경화를 그렸다. 특히 연 그림을 많이 그렸다. 하지만 일반 작가가 많이 그리는 연꽃을 그리지 않았다. 연꽃이 지고 난 뒤 약간은 쓸쓸한 느낌을 주는 연의 모습을 화면 가득히 담아냈다.

“못에 사는 연을 몇년간 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물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물은 형태도, 색깔도 없지요. 사물과 빛의 색깔을 흡수하는 대로 색깔이 변하고, 형태도 담은 용기에 따라 달라지지요. 물결이 주는 리듬감도 좋았습니다.”

연이 주가 되고, 물이 배경이 되던 그림이 어느 순간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은 사라지고, 물만 남았다. 물을 그리는 작가는 많지만, 공 작가의 작업은 남다르다.

물을 소재로 한 풍경화는 바다 위의 섬, 강어귀, 해안처럼 물과 다른 자연풍경이 한데 어우러진 것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화면 가득히 물만 그린다. 그리고 물결의 움직임, 여기에 비치는 빛의 색깔 등에 초점을 맞춰 작업한다. 물결이란 단순한 소재를 쓰는 그의 그림이지만 금색, 초록색, 하늘색, 갈색 등 다양한 색깔을 가미함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전혀 다른 이미지를 준다. 물의 색깔만이 아니라, 물결의 무늬나 물결에 비치는 사물의 빛깔 등도 또 다른 이미지를 연출한다.

공성환 화가의 작품들. 왼쪽부터 파문, 바다와 나비, 금빛. 작가는 물에 비치는 빛의 색깔에 초점을 맞춰 작업했다. 금색, 초록색, 하늘색, 갈색 등 물에 다양한 색깔을 가미함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전혀 다른 이미지를 준다.

“풍경을 소재로 하지만, 단순한 풍경화로 보이는 것이 싫었습니다. 현대미술에서 풍경화를 진부하게 여기는 것도 단순히 자연이나 사물을 재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적 감성을 가지면서 이 시대의 시각을 담은 풍경화를 그리고 싶었지요. 이런 점에서 물 그림은 현대미술의 핵심적 요소인 평면성과 무중심성 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소재라고 여겼습니다.”

산에 살지만 물을 그리는 작업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사색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 자연이다. 그는 특히 집 앞마당에 있는 그네에서 청도읍내를 바라보며 작업을 구상하고, 생각을 정리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네에 앉아 청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제 상상의 나래가 마음껏 펼쳐지지요. 눈으로는 청도를 바라보고 있지만, 가슴과 머리는 제가 상상한 풍경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이 주는 위대함입니다. 자연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자연은 새로운 것을 꿈꾸게 하는 또 다른 힘을 가지고 있지요.”

그는 이 곳에서 한국적인 풍경화를 그리는 꿈을 꾸고 있다. 서양에서 들어왔지만, 한국적인 맛과 멋이 나는 풍경화 말이다. 그래서 그는 매일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그동안 밖에서 바라본 물결을 그려왔던 그는 최근 물속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오는 10월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리는 초대전에서 그의 이같은 변신을 만나볼 수 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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