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5    업데이트: 23-02-13 10:19

언론 평론 노트

다른 것들 사이에서 보게 하는 / 2022. 8. 강선학(미술평론)
아트코리아 | 조회 239
다른 것들 사이에서 보게 하는

전통과 현대 사이에 있는 작업 그렇게 말하니 너무 구태의연하다. 그러나 그런 말 외 다른 적절한 말이 있을까 싶지 않다. ‘전통’도 ‘현대’도 평가적 용어나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다’는 것도 형상적 특징일 뿐, 작품의 평가적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고금화의 작업을 짧게 함축한다면 전통과 현대, 반복과 연속 그리고 콜라주의 세계다. 그것은 평가와 내용을 담고 있다.
 
색동천, 바느질, 골무와 조각보, 그가 상용하는 재료이자 방법이며 내용이다. 그런 면에서 전통적이다. 청바지 대님에 홈질로 드러나는 바느질 자국과 주머니와 허리춤에 병치하듯 박은 색동천과 구륵법으로 그린 선 안에 가볍게 염색한 채색의 모란도(牡丹圖)의 조우는 현대적이다. 전통적인 조각보의 구조와 현대적인 콜라주의 교직이 만드는 지점이다.

삼베나 모시, 무명천을 바탕으로 색동천을 조그맣게 잘라 홈질, 시침질, 박음질로 묶어 본다. 그리고 그 옆으로 골무 몇 개와 기러기 매듭, 매듭으로 묶어 만든 단추가 붙어 있다. 그 밑에는 구륵담채로 그려진 매화도가 자그맣게 잘려 나가면서 자신을 드러낸다. 잘려 나가기보다 홈질로 도리어 그곳에 들어선다는 편이 옳을 것 같다. 한 땀 한 땀으로 표현하듯 끊어지고 이어지면서 연결되는 선은 반복과 연속, 그리고 바느질 자국과 바느질 실이 만드는 선과 점이 단순한 접속이 아니라 접목과 접점으로 형식이자 내용으로 생성된다. 작품 간의 변별력이 거의 없는 같은 재료, 같은 기법과 문양의 반복적 행위 속에서 그 접점은 골무와 바느질 자국으로 모시올의 매듭이 묶이고 풀리는 지점이다.

묶이고 풀리는 그 지점에서 옛것의 새로운 만남이 생성된다. 섬유공예라는 이름의 실용, 목적, 현장의 도구나 쓰임이 완상(玩賞)으로 전환된다. 전통이라는 시간의 연속이 비연속성의 현대적 의미로 바뀌는 것이다. 연속과 단절이 쉼 없이 이어지는 세계가 생성되는 순간이다. 단순한 접합이 아니라 바느질이라는 행위의 반복은 다른 것들을 만나게 하고 동일하지만, 동일하지 않은 연속성을 기저로 삼고 있다. 같은 것들 사이에서 서로를 다르게 보게 한다. “모리스 블랑쇼는 ‘같은 것을 두 번씩 반복한다는 것은 동일성에 대한 관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동일성의 거부 때문이라고’”하지 않는가. “해체주의에 의하면, 반복이야말로 이 우주라는 텍스트의 기본적 참운동이고, 일직선적 발전은 가짜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묶고 푸는, 깁고 엮는 화면은 집합과 해체의 이중성이자 행위의 비연속성과 연속성의 다른 면이기도 하다.

바느질의 접합 기법은 재료를 묶는, 재료를 도구로 만드는 전환의 기술이자, 콜라주이자 몽타주이다. 이질적인 것들을 공존하게 한다. 조각보와 골무, 색동천, 청바지가 만나는가 하면, 다양한 바느질의 흔적들은 이들을 묶어내는 데 중요한 몫을 한다. 재료를 묶어 연속성을 만들고, 접합으로 드러나는 것들은 비연속성과 연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소재이자 내용이며 기술이자 기법이다. 이들은 서로를 오가면 감싸고 박고 홈질하면서 이질적 시간과 공간이 지금의 장소가 된다. 공예라는 쓰임에서 벗어나고 무목적성으로 자율적 움직임을 가지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일견 단조로운 해체와 접합의 시선은 우리 시대의 무의식적 직접성, 혹은 분열증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계적 조립의 콜라주는 우리 시대 산업화의 환유적 표현이라면 전통적 소재와 기술의 접합은 자기 기술의 신체적 이미지의 재현이며 자기 스타일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런 접합의 의식적 전환은 소비와 생산의 귀속적 관계를 거부하는 것으로 그것은 하나의 형식이나 내용에 집착하지 않는다. 규정된 주제 의식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전통적 의미에서의 절단이자 확장이다.

전통적 재료와 기법의 반복, 콜라주 구성은 전통적 기술 연속성의 절단이다. 옛것의 기록이 내재화되어 현대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통상적 보기를 넘어서서 의미/무의미, 의미의 단수, 복수라는 재래적 인식론적 테두리를 벗어나서 의미 자체를 흩어버리고 제 삼의 무엇이 되려 한다. 자크 데리다는 이를 산종이라 한다. “왜냐하면 산종은 자기 것만을 낳기를 바라는 자가수정이 아니고, 그것은 다른 것과의 접종이요, 접목이다. 그래서 산종은 차이와 연기의 행위이기에 적극적 관계이며 생산성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산종은 차연이 생산성과 같아서 거기에는 결합과 이산의 역동적 힘이 있다. 통일도 싫어하고 무관심한 고독도 싫어한다. 산종은 같은 것만의 긍정도, 다른 것의 부정도 아니다. 산종은 같은 것이 다른 것으로, 다른 것이 또 다른 것으로, 그 다른 것이 같은 것으로 변형하는 그런 흔적의 흔적이다. 흔적의 흔적이 흔적 등이 종횡으로 엮어지면서 텍스트의 그물을 이룬다.” “그 안에서는 어떤 것도 현존이라 할 것이 없고, 실체가 없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고금화의 작업은 하나의 텍스트로 우리 앞에 놓인다.
 
메주틀이나 채틀 안에 설치하듯 안치된 한 묶음 섬유는 이런저런 재료들의 병치 이상이 아니다. 그러나 전통적 도구의 구조물 안에 이들이 안치되는 순간, 완강한 전통은 흔들린다. 한복을 입고 도심에 서 있는 꼴이다. 어색한 만남이 주는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의 현장이다. 한복을 빌려 입고 관광지를 나다니는 외국인들을 볼 때, 그것은 하나의 콜라주이자, 전통과 현대에 대한 절단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런 맥락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제 그저 풍경이지 않은가. 동서와 현대와 전통이, 종횡으로 얽혀 다른 것을 보게 한다. 어떤 정해진 전통성도 어떤 방만함의 현대도 없는 것이다. 그들로부터 읽어야 할 것은 연유나 정합성이 아니라 지금이다. 지금은 연속과 비연속성으로 속성 그 자체가 아닌가.

전통은 구태의연하고 현대는 아쉽다. 전통적 재료로 담아내기에는 현대는 가뭇하게 멀고, 현대를 그대로 드러내기에는 전통적 미감과 재료가 대부분 상식 안에서 놀고 만다. 그 사이의 거리를 절단하고 그 절단을 반복하면서 과거와 현대를 연속성으로 시침질하는 한땀 한땀이 두드러진다. 이런 시선이 고금화가 보는 길이다. 그러나 이런 특징이 실은 현대 공예라 일컫는 일련의 양식에서 목격되는 일반적 특징이라는 점에서 그를 의미화하는데 조심스럽다. 말하자면 독자적 세계로 의미가 강화되지 않으면 현대 공예 일반으로 밀려갈 뿐이다. 이왕의 쓰임을 버린 무목적성으로 기존 재료와 방법의 해체로서 바느질과 기존 문양과 재료들의 물성을 차용하는 것이라면, 공예라는 인상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느냐가 갈림길일 것 같다.
 
바느질의 여러 기법이나 문양, 재료가 전통적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좀 더 적극적인 이해와 확장된 시선을 기다린다. 화면을 구축하는 콜라주 구성은 조각보의 구조와 무관하지 않지만 현대적인 감성으로서 전체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통과 현대, 도구와 감상으로서 텍스트가 정해진 기준이나 그것을 “해석해야 할 절대적으로 최초의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모든 것이 이미 해석이기 때문이다. 모든 기호는 그 자체에 있어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호들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2022. 8. 강선학(미술평론)

김형효, 『데리다의 해체철학』 민음사, 1993, p.384 재인용
김형효, 『데리다의 해체철학』 민음사, 1993, p.384 
김형효, 『데리다의 해체철학』 민음사, 1993, p.386
김형효, 『데리다의 해체철학』 민음사, 1993, p.349
김형효, 『데리다의 해체철학』 민음사, 1993, p.389



강선학 / KANG, SEON - HAK

미술비평

1953 경남 마산 출생
부산대 미술교육과 학사 ,부산대 대학원 미술학과 석사 ,

수상
1884 제2회 예술문화비평 신인상 미술 평론부문 당성 ("상상력과 산수의 비경"-계간 예술계),
1990 제7회 서울 문화예술 평론상-미술평론 부문-수상 (서울신문사 주최)
"동양화 비평의 방법론 적 시고"(현대미술)
1998 제3회 월간미술대상-학술, 평론부문-장려상 수상
(중앙일보, 월간미술 주최), "반항과 욕망의 거처"(저서), "현대한국화론"(저서)

저서
형상과 사유(1989,지평, 부산) - 그림보기의 고독 혹은 오만(1995,미진사, 서울)
반항과 욕망의 거처(1997,재원, 서울)
현대한국화론(1998,재원, 서울)
상처에의 탐닉(2000,재원, 서울)​

공저

모더니즘과 그 이후(1989,예술신서, 서울) - 한국현대미술의 새로운 이해(1994,시공사,서울)
- 한국 추상미술 40년(1997,재원, 서울)
- 21세기 한국작가 21인(2000,재원,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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