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5    업데이트: 23-02-13 10:19

언론 평론 노트

작가 고금화가 청바지를 해체한 후 재구성한 작품을
아트코리아 | 조회 273
작가 고금화가 청바지를 해체한 후 재구성한 작품을 대구의 핫플레이스 카페 ‘별’(대구 남구 대명동) 공간에 걸었다. 젊음과 반항의 아이콘이라는 청바지 특유의 상징성에 작가의 자유로운 작업 행위가 더해져 격정으로 거듭났다. 청바지의 반란이 이보다 더 격렬할 수 있을까 반문할 만큼 그 변신에 한계가 없어 보였다. 카페 ‘별’ 초대전에 새롭게 선보인 고 작가의 신작이다. “어느 순간 거친 청바지의 바느질 선들을 보자 가슴이 뛰었어요. 근·현대를 통틀어 전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이면서 자유분방한 패션이라는 상징성과 시각적인 거친 느낌을 작품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청바지에서 작품 가능성을 발견하자 곧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버려질 청바지를 기증해 줄 것을 요청한 것. 결과는 의외였다. 수많은 종류의 청바지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물론 작가는 쾌재를 불렀다. “원 없이, 마음 가는대로 청바지를 가지고 놀 수 있겠다”는 기쁨의 탄성이었다. “요즘은 청바지를 많이 입지 않는데도 어디에 그렇게들 보관하고 있었는지 많은 청바지가 들어왔어요.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청바지의 대중적인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어요.”

청바지 작품의 첫 작업은 수집된 청바지를 해체하는 것이다. 주로 주머니나 허리나 바짓단 등 재봉선이 거칠게 지나간 부분들을 중심으로 해체가 진행된다. 해체된 조각들은 작가의 바느질 행위를 통해 재조합된다. 재조합하는 바느질 과정에 전통 색동을 오브제로 함께 바느질한다. 재조합이 끝나면 비정형의 평면이 완성된다. “바느질한 라인이 좋아서 바느질한 부분들의 천을 잘라서 이어 붙이기 시작했죠. 스티치의 점과 바느질한 선이 모여 평면이 되었으니 회화의 기본은 충족된 거죠.”

청바지 작품이 일으키는 반향은 적지 않다. 카페 방문객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실물 청바지인지 꼼꼼하게 관찰하기도 하고, 일행들과 청바지에 대한 담소를 나누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미술전문가의 반응은 더욱 반갑다. 서울 소재의 아트페어 참여 갤러리로부터 아트페어 초청 의사도 받았다. 청바지 작품에 보내오는 호의적인 반응에 고무되어 3m짜리 작품 제작을 준비 중에 있다. “거친 야생마 같은 청바지 본연의 이미지에 젊은 시절 한 번쯤은 입어보았던 기억들이 더해져 청바지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요.”

고금화하면 조각보 작가로 통한다. 민화의 소재인 목단이나 새, 옛 여인들이 바느질 도구로 사용했던 골무, 한국색채 미학의 정수인 색동, 전통 복주머니 등의 꼴라쥬를 전통 조각보에 바느질로 접목한 작품들이다. 조각보는 수집한 전통조각보와 작가가 의뢰해 제작한 현대 보자기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전통보자기는 옛 여인들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손에 잡히는 가까운 곳에 두고 밥상을 덮거나 물건을 싸는 등 다양한 용도로 편한 용도로 사용했다. 가장 만만하고 편한 도구로 사용한 만큼 만드는 과정도 소박하고 단순했다. 옷이나 이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바느질로 무심하게 이어서 만들었다. 그런 탓에 색과 조각의 크기는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몇백년이 흐른 현대 예술 작품에서 전통조각보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들의 미감에 새삼 감탄하게 만든다. 직선과 사각이 만든 추상회화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시각적인 동질성을 발견하게 된다. “재료가 부족하던 시기에 임기웅변으로 소박하게 만들었지만 현대의 그 어떤 미니멀한 아름다움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예술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점이 전통보자기가 가지는 위대성이 아닐까 싶어요.”
고 작가의 보자기 작품은 전통조각보에 현대적인 감수성이 더해진 과거와 현대의 접목이다. 바느질과 드로잉으로 완성하는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은 전통버선에도 적용됐다. 유난히 옛여인들의 잡화에 관심을 기울였던 고 작가의 취향에는 그녀가 몸담았던 환경이 있었다. 작가는 전통을 귀히 여겼던 조부와 대대로 내려온 가문의 전통을 지켰던 종갓집 종부였던 시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여고시절부터 오래된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수집은 이어졌다. 고가구, 한복, 그릇, 침구류 등 종류를 가지지 않는 수집력은 자연스럽게 작품 제작으로 연계되어 조각보 작품으로 이어졌다.

“대학에서 공예과를 전공하고 도자공예와 목칠공예를 먼저 시작했지만 결국 조각보 작품으로 넘어오게 되었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제가 수집해 놓은 조각보에 있었죠.”

조각보 작품도 이번 전시에 신작이 나왔다. 광목이나 삼베, 무명 등의 천을 선의 형태로 잘라 조각보 위에 바느질해 반입체 평면을 구현했다. 이 작품에도 골무나 색동조각 등의 전통적인 소품들이 꼴라쥬로 사용되었다. 이 작업은 전통조각보보다 작가가 제작한 조각보가 주로 활용된다. “수집한 전통조각보는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조각보를 직접 제작했고,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자투리 천 조각들이 생겨났어요. 그 천 조각들이 의외로 느낌이 좋아서 작업으로 활용하게 되었어요.”

물감 대신 천 조각, 붓 대신 바느질로 작품을 만든다. 바느질이 천과 천, 천 위에 꼴라주를 소통하는 매개물이 된다. 한 땀 한 땀, 작가의 손끝에서 작은 바늘과 얇은 실이 지나간 흔적의 아우라에 알 수 없는 연민과 사랑이 묻어난다. 그녀가 “바느질을 하면 명상 상태에 빠져든다”고 했다. “바느질 선을 낮에 힘겹게 일한 노고를 바느질에 풀어냈던 옛여인들의 감성으로 유희처럼 하면 6~7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무상무념 명상의 경지에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죠. 제게는 바느질 작업이 곧 명상인 것 같아요.”

조각보나 청바지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바느질로 연결하는 고 작가. 역사나 소재, 조형성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이 두 소재는 작가의 의식에서 하나의 가치로 응집된다. 그것은 바로 ‘숭고함’. 작가가 “시대를 초월한 소시민들의 치열한 삶 속에서 숭고함을 발견했다”고 회상했다. “가장 낮은 위치에서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았던 이들의 땀이 배어있는 조각보나 청바지야말로 숭고함의 상징이 아니겠느냐”는 의미였다.

전시는 31일까지. 010-8784-4587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