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5    업데이트: 23-02-1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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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화 선생의 작품초대전 ‘옛 이야기+꿈’을 축하하면서... / 창작민화연구가/화가 설촌(雪村) 정하정
아트코리아 | 조회 210
고금화 선생의 작품초대전 ‘옛 이야기+꿈’을 축하하면서...
 
창작민화연구가/화가
설촌(雪村) 정하정


조선의 전통적 예혼(藝魂)을 품은 여류 현대미술가가 나타났다!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고려시대를 찬란하게 빛냈던 인위(人爲)의 미(美)를 멀리하고 그 대신 무위(無爲)의 미(美)를 매우 중시하였었다. 그러다보니 도자기나 그림들의 외형이나 구도가 디테일보다는 즉흥적인 자유미로 마무리했음을 보인다. 그래서 조선 막사발 등의 제품들은 한 쪽으로 일그러진 모습이 또 다른 멋으로 드러나는, 당시로서는 아이러니한 형태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그런 막사발 등은 이웃 나라로 들어가 그 나라의 보물로 정해지기도 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개념으로 그리는 그림까지도 인위적 표현인 ‘그린다’보다는 자연원리(우주적 섭리)의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친다’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사군자 특히 난(蘭)이나 산수화 등은 그리는 게 아니라 치는 것이다. 참고로 양 무리를 기르는 것 역시 자연(우주)의 기운을 대거 활용한다는 이유에서 ‘친다’고 했고 상대적으로 돼지처럼 인위적으로 제한하여 키우는 것은 치는 것이 아니고 ‘먹인다’라고 했다. 이 부분을 이렇게 지루하게 설명하는 것은 오늘의 작가 고금화가 다름 아닌, 위에 설명한 조선의 대표적 예혼(藝魂)인 ‘치는’ 방식의 작업으로 우리에게 예술적 쾌감을 불어넣어주는 예술가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금화는 우리나라의 큰 자랑거리인 민화를 조선의 무위적 예혼(藝魂)을 활용하여 현대화시키는 작가인 것이다.
 
잠깐 그녀의 작업노트들 중의 두어 곳을 들여다보자.
 
‘어느 날 무심코 천년의 색으로 물들인 전통침선의 옛 향기에 마득하여 수집한 그 세월이 이젠 일상이 되었다. 서양의 퀼트나 십자수에 밀려 잊혀져가고 있는 전통규방공예 조각보에 남다른 애착을 갖게 된 것은 한 땀 한 땀 조각에서 보이는 작위적이지 않은 무심한 손의 움직임으로 빚어내는 추상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모시, 삼베, 광목 등의 보푸라기를 모아 마름질한 시접 사이로 바늘을 넣어 손끝에서 한 땀 한 땀 담아온 침선은 모자람도 더함도 한결같은 마음에 실어 그윽한 여운으로 이어진다. 조각조각에서 배어나는 갖은 색의 짙고 흐림에 따른 쥐대기로 바림(Gradation) 효과를 살리기도 하고, 그 사이를 홈질로 드러내 모양을 내고 마감도 한다. 자유의지로 마음을 편안히 하고,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여울에 가린 의미의 세계를 열어젖히는 느낌으로, 갖은 오브제로 든 속살을 충실하게 채워 마음의 깜냥으로 헤아려본다.’
 
작가노트에서 엿보이듯이 고금화 작가는 마음속에 예의 조선 여인들이 품었던 제작의지 그대로를 끌어안고서 저들과 동일한 마음앓이를 즐기며(?) 창작에 임함을 알 수 있다. 또 한 편으로는 자신의 선배인 조선 여인들의 정신이 서양의 유사한 문화 때문에 그 인기가 뒤질세라 걱정하기도 한다. ‘작위적이 않은 무심한 손의 움직임으로 빚어내는’이라는 대목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그녀는 분명히 조선의 ‘무위자연론(無爲自然論)’을 향한 지극한 동경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자신은 조선여인의 그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고 싶다는’ 고백일 것이다. 필자가 십여 년 전부터 유심히 고금화 작가의 작품 활동을 추적하는 즐거움 속에 얻어낸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조선인의 대표생활덕목이자 삶의 일상적 철학이었을 무위정신(無爲精神)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려한 방법을 이용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조각보 바느질을 이름 없는 할머니들이 그들의 솜씨로 바느질하게 하고, 그 위에다가 작가 본인이 보충 바느질 및 전체 면의 적당한 여백에 민화 이미지를 그려 넣어 작품을 완성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화가 자신이 천 조각 이어붙이기 바느질을 했을 때보다 작위적(作爲的)인 부분이 훨씬 줄어들도록 하기 위함인데, 작가노트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는 조선여인들의 전통이었던 ‘무작위의 미’를 존중하기 위함이다. 고금화는 전통의 맥을 보전(保全) 또는 고수하기 위해 이렇게 오브제(Objet) 미술형식이 되더라도 자신이 평소에 품었던 민족적 민화정신의 맥락 드러내기를 먼저 챙기고 있다. 이러한 양식의 민화작품은 그 발상부터가 특이하고 새롭다. 보통의 민화 제작의 형태를 살펴보면 감상용 회화 작품과, 생활소품과 협업제조(Collaboration)하는 실용구(實用具)의 민화가 있다. 이 중 첫 번째인 감상용 회화 작품의 민화는 전체 화면(全面)에 그림을 그리고, 두 번째로는 베갯머리나 한복소매 또는 집안 장식품의 부분에서 주로 보이듯이 민화를 용구의 부분에만 자수나 핸드페인팅 등으로 도안 삼아 그려 넣는 공예 방식이 있다. 후자의 경우에서 민화는 공예를 돕는 역할만을 한다. 그러나 고금화의 작품 양상은 후자의 경우, 즉 생활용(生活用) 공예의(공예품의) 특성을 변용하여 감상용 회화 작품으로 완성시킨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당연히 고금화처럼 민족의 전통적 자부심을 본격적인 미술언어로 만들어 세상으로부터의 공감을 얻는 발상의 작업 방향은 현 사회의 문화적 추세나 상황으로 보아 꼭 필요한 부문이다. 그녀는 이 시대 상황이나 여건 중에 미술이 안고 가야 할 분명한 과제의 길을 본인 작업의 시리즈로 확보해낸 게 틀림없다. 아마도 이러한 면은 작가가 오래전부터 그림뿐만이 아니라 전통규방공예와 조각보에도 조예를 다져온 터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시대는 실용주의적인 문화가 심할 정도로 생활 속에는 물론, 예술 속까지 깊이 자리를 잡으려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민족주의적 전통에는 별 관심 없는 채 편의주의 일편도의 사회가 되어져감에 마음이 쓸쓸해진다. 현대의 시중 갤러리들을 메우는 작품들을 보면 외래적 느낌의 작품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 중에 민족 뿌리의식을 고스란히 지녔으면서도 현대미술로 반듯한 성과를 보이는 고금화와 같은 작가를 만나면 더없이 기뻐진다. 위에서 말했듯이 작금의 화단 풍조가 비록 눈에 보기 좋은 것에 만족하려는 가벼움으로 치달아가지만, 그럴수록 눈이 아닌 가슴을 울리는 작품철학이 배인 작품이 필요한 시기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본래 미술의 본령은 눈이 아닌 가슴의 감동인 것이다. 눈으로 보는 현재적 안목의 사실주의보다 역사의식 속에서 현실을 가슴으로 읽어내는 사실주의가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예혼(藝魂)을 불태우는 작가 고금화에게 응원의 기립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부디 좋은 성과 거두시고, 계속해서 큰 예업(藝業)으로 우뚝 서시길 서시길 바란다.
 
신축년(辛丑年) 초하(初夏)에
계양산 아래 설촌헌(雪村軒)에서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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