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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노트

고금화 ‘박물관 이야기’ 대표·섬유공예가 / 대구신문 2015.08.12
아트코리아 | 조회 211
고금화 ‘박물관 이야기’ 대표·섬유공예가

“근대 산업 중심지 공구거리에 사람 냄새나는 공간이 생겼어요”
회색빛 거리에 예술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박물관 이야기’ 내 전시된 고금화 관장의 수집 작품들.
북성로에 들어선 오감자극 박물관
2층 규모 건물에 카페·갤러리 꾸며
해방 직후 창고건물 원형 고스란히
고가구·조각보 등 200점 이상 전시



공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도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구경해도 되냐?’고 묻기 일쑤였다. 북성로 공구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예술적 감각이 물씬 묻어나는 실외 인테리어만으로도 회색빛 거리와는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산업거리가 다양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로 문화예술 거리로 변모하고 있는 북성로 공구거리의 변신에 또 하나의 명물이 될 복합문화공간 ‘박물관 이야기’가 지난 28일 북성로 공구박물관 옆에 문을 열었다. 근대 시대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한 2층 규모의 ‘박물관 이야기’는 1층은 카페와 아트샵으로, 2층은 갤러리와 박물관으로 꾸며졌다. 넓이는 100㎡다. 문을 열기도 전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공간으로 행인들의 오감을 자극한 이 공간의 주인장은 섬유공예가 고금화(54) 대표다.

“세계적인 흐름이 과거의 것을 부수고 새로 짓기보다 리모델링해 현대적인 기능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저 역시 계단과 1층, 2층 천장을 근대 시대 창고 건물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 역사성을 보존하려 했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과거와 현재의 공존, 말이 쉽지 간단치 않다. 특히 보존으로 극복할 수 있는 외형과 달리 내용에 전통을 심는 것은 녹록하지 않다. 단시간에 구현하기에는 시간과 비용, 전통 예술에 대한 안목 등의 조건들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 대표에게 이 가치의 구현은 별스럽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집가로 꽤 많은 예술품들을 소장해 온 콜렉터였다. 특히 고가구, 오래된 한복, 조각보 등의 한국 전통 예술품에 특별한 조예를 보여 왔다. 고 대표가 현재 소장하고 있는 고가구와 전통 조각보는 각각 100여 점이 넘는다. 여기에 다양한 생활 소품까지 더하면 적지 않은 규모다.



“15년 전 전통 예술품 수집에 뛰어들어 최근 10여 년 동안 열정적으로 수집했죠. 집에 다 보관 할 수가 없어 달성군 가창에 있는 시댁의 창고와 남편 회사의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중의 일부가 2층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앞으로 이 공간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통 예술품들을 전시할 계획이에요.”

2층 갤러리 옆 공간에 꾸민 박물관은 복합공간인 ‘박물관 이야기’만의 한끗 차이다. 갤러리와 카페의 결합은 문화예술과 카페의 공존이라는 현재 뜨고 있는 트렌드지만, 한국 전통 예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의 존재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박물관 이야기’만의 차별점이다. 사실 고 대표가 박물관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은 좀 됐다. 전통예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박물관을 꿈꾸었다. 구체적으로 북성로 공구거리로 확정지은 것은 대구의 골목투어와 스토리 발굴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는 (사)시간과 공간 연구소의 권상구 이사를 만나면서다.

그녀는 “권상구 이사를 알게 되면서 북성로와 삼덕상회를 접하게 됐다”며 “권 이사님께 ‘저도 삼덕상회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하면 되지’라며 용기를 주셔서 북성로 공구거리에 건물을 알아보게 됐고, 해방 직후 사용하던 창고 건물이 있어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박물관에는 고 대표의 심미적 태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넓은 공간으로 구성된 갤러리와 달리 박물관은 그야말로 아담 사이즈로 소박함을 강조하고, 전시품을 전시할 가구도 고목으로 짜 넣었다. 고졸한 맛의 한국 전통예술품의 매력을 그윽하고 소박한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도록 한 것. 여기에 해방 직후 창고건물 원형을 그대로 살린 바닥과 천장의 오래된 나무의 질감은 박물관의 화룡정점이다.




“한국 전통 예술의 멋은 소박하면서도 고졸함에 있습니다. 저는 공간의 규모나 분위기를 전통의 멋을 배가하는 쪽으로 꾸미고 싶었어요. 중앙에 반닫이와 의자를 놓아 전시품을 감상하며 차도 마실 수 있도록 했는데, 이 공간을 손님들이 특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누구나 첫 계기가 있다. 고 대표의 첫 예술품 수집은 생각보다 빨랐다. 댕기머리 고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 놀라갔다, 마당에 던져놓은 전통 다리미인 인두를 보고 친구 할머니에게 ‘주십사’ 하고 얻어 온 것이다.

“어릴 적부터 오래된 전통 생활 소품들을 좋아했는데, 공무원이셨던 친정 어머니는 신식을 좋아하셨어요. 오래된 것보다 현대식 물건들을 더 좋아하셔서 저희 집에는 신식 물건들만 가득했죠.”

소장품 중 애정이 가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나만은 고 대표가 특히 영혼을 실어 아끼는 소장품은 ‘오동나무 서류장’과 ‘대형 괘짝’이다. ‘오동나무 서류장’은 그녀의 시아버지가 평생 사용하고 남긴 유품이다. 그녀의 시댁은 전통을 고수하는 시어머니와 공무원이었던 시아버지의 영향으로 신식보다 구식 생활방식을 그대로를 따랐다. 이 때문에 시댁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생활용품이 세월을 머금은 손 떼 묻은 골동품 일색이었다. 하지만 고 대표가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오동나무 서류장’ 단 한 점이다. ‘오동나무 서류장’은 현재 2층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시어머니와 제가 오래된 물건들을 좋아하는 성향이 비슷했어요. 시어머니께서 입버릇처럼 손 떼 묻은 물건들을 제게 물려주신다고 하셨는데, 몇 년 전에 그만 시댁에 불이나 모두 소실되어 버렸어요. 저와 인연이 아니었겠지요. 시아버지의 숨결이 묻어있는 ‘오동나무 서류함’ 하나 남긴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귀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고 대표가 귀하게 여기는 또 다른 소장품은 대형 궤짝이다. 갤러리 한켠에 의자와 함께 전시되어, 소규모 강좌 모임의 테이블로 활용되고 있다. 우연히 소장하게 된 이 궤짝은 돈을 보관하는 된궤, 책을 보관하던 책궤, 절에서 바루를 보관하던 바루함 등의 분분한 의견들로 설왕설래하는 재미를 주지만, 정확한 기능은 알지 못한다.

“2년 전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아트샵 ‘뜨락’을 운영했어요. 궤짝을 샵 입구에 두었는데, 사람들이 용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며 좋아했어요.”

이 밖에도 박물관에는 그녀가 오랫동안 모아 온 실제 선조들이 사용했던 오래된 한복, 꼭두인형, 고가구 등의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돌잔치에 입었던 아기 돌 옷은 섬세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아기 돌 옷은 색상도 화려하고 어른 한복보다 선이 더 섬세해요. 또 부분 부분에 들어가는 재치가 넘치는 조형성도 탄복하죠.”



고 대표는 콜렉터 이전에 섬유공예가다. 대학에서 공예과를 전공하고 도자공예 등을 거쳐 현재 섬유공예가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에서는 심심찮게 전시에 이름을 올리는 유명 인사다. 한국미술협회회원, 대한민국미술협회 이사, 한국미술협회 현대민화 활성위원회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국제교류회원전, 한독교류회원전, 한국국제교류협회뉴욕초대전, 독일 마브르크 미술협회초대전, 파리 그랑팔레 살롱데생전 등에 초대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전시에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에 그랑팔레미술관에서 열린 ‘2013 살롱 앙데팡당’ 전에 국내 유명 전통예술작가들과 함께 참가해 현지에서 대작을 판매한 내공이 만만치 않은 작가다. 그녀는 지난해도 그랑팔레 살롱데생전에 참가했다.

별걸 다하는 마당발, 전통 예술품에 매료된 특별한 미학을 가진 고 대표의 작품은 어떤 느낌일까. 전통 예술품을 소집하는 취향과 고 대표의 작품은 서로 통(通)할까. 그녀는 비단, 삼베 등의 전통 천을 바느질로 이어붙이고 골무 등의 꼴라주를 붙인 다음, 그림을 그려 작품을 완성한다. 그런 고 대표의 작품들에는 전통의 향기가 몽글글몽글 피어오른다.

섬유공예가인 고 대표의 마음을 흔드는 또 하나의 공간은 2층 박물관 옆 갤러리다. 현대미술을 구현할 이 공간에는 그녀의 작품들과 현재 고 대표가 소장하고 있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고 대표는 전통 예술품 수집과 함께 현대 미술 작품들도 함께 수집해 왔다.

그녀의 수집품들은 특히 고 대표의 성품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고 대표의 수집 목록에는 다양한 사연들이 흑백사진처럼 따뜻한 향기를 품어내고 있는 것.

“긴 세월은 수집한 작품들이고 소장품 중에는 특별한 사연이 담긴 작품들이 많습니다. 2층 갤러리 개관전에는 다양한 사연을 품은 제 소장품들을 전시할 계획이에요. 이후에는 기획전으로 운영하려고 합니다. 특히 섬유가회, 현대미술가협회 등의 협회 회원들의 작품을 전시할 생각입니다.”

복합문화공간 ‘박물관 이야기’의 시선을 1층으로 돌려보면 1층은 카페와 소품들을 전시, 판매하는 아트 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역시 2층 못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출입문부터 테이블과 의자, 소품하나까지 세월이 품어준 이야기들로 반짝인다. 카페 출입문부터 남다르다. 유리와 나무로 마감된 출입문에는 고 대표가 우연히 지나다 목격한 오래된 미군창고 철거 장소에서 구입한 고목제가 활용됐다.

“새로 산 나무로 출입문을 만들었는데 폐 고목을 만나고 다 뜯어내고 폐 고목으로 다시 붙였어요. 고치고 보니 느낌이 훨씬 따뜻하고 편안해졌어요. 제가 그리는 밑그림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녀의 카페에는 테이블도 이야기 거리다. 테이블 상판을 공사하고 남은 자투리 나무를 하나하나 잘라 붙여 예술품처럼 만든 것. 카페와 갤러리 곳곳에 놓여 있는 의자 또한 지나다 우연히 만난 폐가구을 구입한 것으로, 나름의 사연들을 품고 있다. 해체되려는 순간 고 대표을 만나 새 생명을 얻은 것들이다.

“지나다가 오래된 건물을 뜯거나 가게를 정리하는 것을 보면 꼭 들어가 봅니다. 그곳은 보물창고와 다름없어요. 그런 곳에서 폐목이나 폐가구들을 아주 싼 가격으로 만날 수 있지요. 통 나무로 제작된 오래된 의자를 하나에 만원에 구입하기도 했죠.”

직접 만져보고 구입할 수도 있는 재미있는 공간인 1층 카페 한켠에 마련된 아트샵은 프로방스 스타일로 꾸며져 있다. 유리병, 꽃병, 악세사리, 손수건 등의 소품, 복주머니, 비단지갑 등의 비교적 저렴한 현대적 장식품과 전통이 묻어나는 소품들이 주를 이룬다.

“아트샵은 ‘박물관 이야기’를 찾아오신 손님들에게 볼거리, 사는 맛을 드리기 위해 만든 공간이에요. 아트샵도 이 공간의 전체적인 콘셉트에 따라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도록 꾸몄어요. 전통 소품과 현대적인 소품들을 한 공간에서 만나도록 한 것이죠. 갤러리와 박물관은 구경하는 공간이지만, 이 공간은 자기 마음에 맞는 작은 소품이라도 사 갈 수 있도록 재미를 주었다고 할까요.”

‘박물관 이야기’는 북·서성로 건축물 리노베이션사업에 선정되어 진행된 북성로 공구거리 거리 변신 프로젝트의 또 하나의 야심작이다. 특히 조상의 숨결이 배어있는 전통 예술품과 현대 미술을 한 공간에서 만나며 다양한 계층이 다양한 이야기로 소통할 수 있는 점은 이 공간만의 특징이자 매력 포인트다.

“북성로 공구거리는 일제 강점기에는 경제와 소비의 중심지였고, 근대화 시기에는 산업의 중심지였어요. 그러다 침체기를 지나 문화예술로 또 다를 변신을 시도하는 있는 역사의 파노라마를 그대로 담고 있는 대구의 상징적인 거리입니다. 이곳에서 ‘박물관 이야기’는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는 또 하나의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는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출처 : 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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