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4    업데이트: 12-06-28 16:02

언론 평론

달리는 화가!! 김성규 (runnerskorea. 2002.7.)
아트코리아 | 조회 950

포항 호미곶 마라톤(102.6km)을 다녀와서

 

 

김성규님에게는 여러 이름이 있다. 선생님, 화가, 풀뿌리마라토너....

 

현재 구미 오상고등학교에 근무하고 계시는 김성규님은 미술을 전공하고 나와서 미술중등교사 자격증을 따고 대학 졸업 후 군대 생활을 하면서 행정대학원을 다녀 석사과정을 마치셨다. 공부하는 동안은 그림을 안 그렸지만 늘 예술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어 전역하면서 결국은 내가 갈 길은 그림이라고 생각해 늦게나마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셨단다.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건 95년 군복무했던 부대를 찾아 갔다가 마침 마라톤 출전을 위해 현역병들이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다가 무작정 함께 뛰게 된 것이 오늘까지 끈질긴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마라톤이 굉장히 어려운 운동이라 여겼는데 자세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구나."라는 엉뚱한 생각이 불현듯 들어 바로 옷을 갈아 입고 함께 뛰기 시작한 것이다. 10km를 가뿐히 뛰시는 김성규님을 보신 부대장이 부대 선수가 없으니 예비역인 김성규님이 부대 대표로 한 번 참여해 달라고 권유했고, 99년 춘천마라톤 하프코스에 처녀 출전을 하면서 마라톤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심폐 기능이 안 좋고 봄이 되면 알레르기성 천식까지 있었는데 하루 이틀 뛰어보니까 체력이 좋아지고 알레르기 천식도 점차 나아갔고 또한 그림은 창작 활동이기 때문에 밤 늦게까지 작업할 때도 많고 잠도 잘 못 이루곤 했는데, 달리기를 시작한 후에는 예전에 억지로 8시간을 자는 것보다 한번 뛰고 4시간을 자는 것이 훨씬 몸에도 좋고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너무 좋다며 화가에게 있어 마라톤 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고 하신다.

 

그저 그림을 그리다가도 붓을 놓고 옷만 갈아 입고 사람 다니는 어느 길에서도 할 수 있으며, 다른 운동과는 달리 자기가 시간을 만들어서 자기 나름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 미술과 많이 닮아 있어서 운동이 낯설지 않아 좋단다. 언제나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김성규님과 잘 맞는다고 한다.

 

8월 16일에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화랑에서 2회 개인전을 계획하고 있지만, 마라톤 열병 때문에 계획을 지키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걱정스러워 하신다. 김성규님은, MBC마라톤까지 연속 3주간 대회를 안 빠지고 나가고 있으니 붓 잡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년부터 대구마라톤클럽 지부장을 맡아서 일주일에 적어도 3~4회씩 꾸준히 10km 내외를 회원들과 모여서 달리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1999년 마라톤을 처음 시작할 때 기회를 제공한 군의 친구는 운동이 힘들다며 그만두었는데 그때는 사실 김성규님이 힘들다며 시작을 망설이셨단다. 그러나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 ‘런 하이'를 즐기고 있으시다며 웃으신다. 요즈음 친구들이 7~8kg빠진 체중에 얼굴이 시커멓게 탄 김성규님을 만나면 어디 아프냐고 걱정을 하는데, 이때 마라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시며 이래저래 마라톤 예찬으로 침이 마르지 않는다.

 

그림은 언제든지 그릴 수 있으니 지금은 이왕 시작한 운동에 한번 신나게 빠지고 싶다고 하시는 김성규님.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달림이들을 주제로 한 ‘달리는 세상 사람들전(展)'을 한번 열어보리라 구상 중이기도 하다.

 

마라톤은 가장 나와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운동, 자기 발견에 가장 좋은 운동, 철학이 있는 운동이라고 마라톤 철학까지 피력하신다.

 

혼자서 작품 활동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므로 누구에게든 적극 추천하고 싶단다.

 

현재 최고 기록을 오는 춘천대회에서 3분 단축하여 내년에는 보스턴대회에도 꼭 출전하리라 각오를 다진다.

 

지난 토요일(5월 25일) 저녁 7시에 호미곶 광장을 출발하여 102.6km를 달려서 다음날 일요일(26일) 아침 8시 30분 경에 다시 출발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출발점에서부터 자신의 완주를 의심하며 떠난 긴 레이스는 험하고 처절했다.

 

달리는 동안 많은 생각들을 하며 자신과의 고독한 레이스를 펼친 끝에 기록은 변변찮지만(13시간 35분 17초) 큰 부상 없이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코스 답사를 사전에 다녀왔으며 대회 바로 며칠 전에는 선배 울트라마니아분들을 찾아가서 완주 소감도 들으며 정신적으로 준비를 하기도 했으나 체력 관리가 부실하여 아주 힘들게 달렸다. 오늘에야 내과 병원을 가서 진단을 받은 결과 ‘과민성 대장염' 이라고 하지만, 사실 한 달 전부터 불면증에다 설사까지 겹쳐 몸 컨디션은 점점 악화돼 갔다. 평상시 자신을 과신해 오던 관계로 그래도 곧 괜찮아지겠지 하며 무시하고 병원 가기를 미루고 계속 운동을 해 온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100km를 달리는 동안 설사를 무려 다섯 차례까지 하는 엄청난 시련을 감내해야 했다.

 

이와 같은 다섯 차례의 화장실 방문(소변까지 6차례)과 2차례에 걸친 간식 시간, 어설픈 준비, 설사에 따른 탈수 현상에 56km 이후 오르막은 걷다시피한 실수로 얼룩진 완주였다. 앞으로 잘 준비해서 다듬는다면 다음 대회에서는 최소한 한 시간 이상은 분명히 단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수확이다.

 

대회 출전 전에 읽었던 이번 6월 러너스코리아에 실린 일본 250km완주기가 전에는 이해도 되지 않을 뿐 더러 감명이 별로 없었는데 돌아와서 이제 다시 읽으니 얼마나 실감나고 그리고 대단하게 느껴지던지 이 글을 쓴 완주자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분명히 나도 다음 번에는 이런 글을 쓸 만큼 멋지게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고감도의 공부는 직접 체험하는 것이 가장 최고라는 사실을 또 한번 실감했다. 그래서 많이 산 어른들이 매사에 조심하고 또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고 심지어 남을 잘 배려 할 줄도 아는가 보다. 앞으로 또 다른 울트라 경험의 기회가 온다면 다시는 이런 실수와 경거망동이 없도록 잘 준비해서 치룰 것이다.

 

달리는 밤 시간에는 만월의 월광이 함께 있어줘서 힘들고 외롭지 않았으며 오히려 황홀하기까지 했다. 동해 해안 도로를 달릴 때는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여 역시 분위기도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힘이 솟아나기까지 했다. 깊은 밤에 혼자 안개가 피어 오르는 산을 감아 돌며 달리는 동안에는 구름 위를 걷는 것과 같은 환상까지 느꼈으며 혼자 자문자답하며 펼치는 고독한 레이스는 차라리 아름답기까지도 했다.

 

마라톤은 인생이다. 인생은 또한 마라톤이고.

 

내 삶을 뒤돌아보는 철학의 시간을 얻게 되어 한편 무지무지 감사하게 생각하며 달렸다. 인생에 대한 도전의식 또한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싹 터 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었다.

 

아마 이번 대회 이후부터는 밀린 전시에 출품할 작품 제작에 당분간 매달려야겠지만 좋은 그림도 많이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마라톤은 인생의 축소판 같았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한번 마라톤에 중독되면 헤어나지를 못하는가 보다.

 

달리는 동안 끝없이 울어 젖히는 개구리 울음 소리, 잠 못 이루는 온갖 새들과 날 짐승들의 뒤척이는 소리, 주자가 심심하지 않게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반딧불. 모두가 정말 오랜만에 겪는 향수가 묻어나는 진풍경이었다.

 

이런 코스를 달릴 수 있는 건강과 기회를 준 많은 사람들에게 힘드는 순간 순간마다 감사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달렸다. 기회가 되면 이 코스를 꼭 다시 한번 더 달리고 싶다.

 

풀코스 마라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 따르지만, 그에 동반해서 완주 후에 맛보는 그 희열 또한 대단하여 풀코스를 몇 차례 뛰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착실히 준비해서 꼭 한번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울러 골인해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이렇게 훌륭히 대회를 완주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신 많은 고마운 분들이 없었다면 나의 이 도전이 가능했을까... 이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다. 이 기쁨을 기필코 사회에 환원해야지...' 다시 한번 더 이 자리를 빌어, 울트라마라톤은 어떤 재화로도 살 수 없는 엄청난 보석이었다고 재삼 강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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