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    업데이트: 17-03-2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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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고향, 할머님을 회상하게 한 화가
김종준 | 조회 1,538

추억, 고향, 할머님을 회상하게 한 화가

김종준 화백의 <꿈꾸는 맨드라미> 전을 보고서

 

            

 

 

지난 금요일(6일) 점심시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정동의 경향갤러리에 들렀다. 매일 식사 전후 30~40분 정도 산책을 하는데, 당일은 ‘뭔가 새로운 전시가 없나?’ 하는 생각에 갤러리를 찾은 것이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멈칫했다. 어린 시절 경상도 시골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식용)맨드라미가 여러 작품에 담겨있었다. 예전 내 고향 경북 영주에서는 기지떡(술떡, 증편)에 올리는 고명으로 맨드라미의 꽃과 잎을 많이 사용했다.

여름에 주로 먹은 기지떡은, 집에서 만들 때는 주로 찹쌀을 불려 막걸리를 발효를 시킨 다음 떡을 만들었다. 그래서 씹히는 맛이 있으면서도 발효를 시킨 떡이라 쉽게 상하지도 않아 여름에 먹는 떡으로는 최고였다.

특히, 여름에 친정 가는 며느리를 위해 시어머니가 밤새 찹쌀을 불리고, 막걸리를 넣어 발효를 시킨 다음, 떡을 만들어 보내는 마음은 그 무엇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친정 나들이를 가는 며느리를 위해 귀한 찹쌀로 기지떡을 해서 보냈던 시어머니의 뒷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 같다.

요즘에야 떡집에서 떡을 주문하여 만드는 관계로 찹쌀을 대신하여 멥쌀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어린 시절 맨드라미의 잎과 꽃을 고명으로 올린 찹쌀로 만든 기지떡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간혹 영주에 가는 길에 순흥면에 있는 기지떡집에 가서 떡을 조금씩 사오기도 하지만, 고명도 다르고, 맛도 예전의 깊은 맛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도 변하고 세월도 변해 예전의 맛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나는 맨드라미만 보면 기지떡이 생각나고, 어린 시절 나를 두고 멀리 떠나신 할머님 생각이 난다. 아련한 추억이 떡에도 있지만, 맨드라미에게도 있는 것이다.

경향갤러리에서 맨드라미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분명 경상도 출신의 50~60대 중년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봄, 여름, 가을의 맨드라미를 계절과 광선, 채도, 배경에 변화를 주면서 그린 것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특히 최근에 그린 것 같은 푸르름이 거의 없고, 시들기 시작하는 늦가을의 맨드라미 앞에서는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보았다. 미술평론가 신항섭 선생의 평론에는 “순도 높은 채도, 실제보다 과장된 광선, 그에 따른 극명한 명암을 통해 현실의 꽃보다 아름다운 환상적인 이미지의 맨드라미를 김종준은 만들어내고 있다. 작품에 따라 배경을 어둡게 처리하는 것도 꽃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수법이다. 실제를 재현하면서도 실제를 능가하는 극명한 사실성을 이끌어낸다. 그가 작품 속에 구현하는 사실성은 자연 상태와는 다르다. 자연 상태에서 보는 맨드라미꽃과는 엄연히 다른 사실적인 이미지에는 회화적인 환상이 자리한다.”라고 평하고 있다.

나의 생각과도 거의 유사한 평을 하고 있는 신항섭 선생의 평론에도 공감을 했다. 맨드라미를 그린 작품은 작은 소품을 포함하여 100호는 넘어 보이는 대작까지 20점 가까이 되는 것 같았다.

내 눈에는 처음에 본 최근에 그린 시들어가는 늦가을의 맨드라미가 큰 감동이었다. 전시장 전체가 맨드라미 그림으로 채워졌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이번 전시에는 풍경화도 몇 작품 나와 있었다.

대구대학의 뒷산을 중심으로 한 절벽을 그린 작품과 내 고향 영주시 순흥면의 보물 832호인 성혈사 나한전의 문창살을 그린 작품도 눈에 들어왔다. 400년 전에 만들어진 나한전의 문창살은 물고기, 게, 동자상, 연꽃, 새 등의 뛰어난 조각과 공예기술을 엿볼 수 있는 걸작이다.

나한전 문창살을 그린 작품을 보고서는 ‘이 분 혹시 영주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와 정서가 비슷한 영주출신의 중년화가 가운데 내가 모르는 선배가 있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어 도록을 찾아 프로필을 펼쳐 보았다.

김종준 화백, 인물 사진이 없고 나이나 출생연도도 없어 연령은 짐작하기 힘들고, 경북대를 나와 계명대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개인전을 12회 열었다. 한국미협, 표상회, 대구미술대전 초대작가로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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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직원에게 “김화백님을 뵐 수 없느냐?”고 물어보니, “2~3시경에 나와서 늦게까지는 계시니 저녁에 나중에 오시면 뵐 수 있다”고 했다. 퇴근 무렵에 다시 와서 잠시 인사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갤러리에서 나왔다.

식사를 하고도 너무 궁금한 것이 많아, 경북대 미대를 나온 권기철 화백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은 다음 김종준 화백에 대해 물어보았다. “어 그 친구 내하고 동기다. 주로 풍경화를 많이 그리는데, 사람 좋지. 한번 만나봐. 만날 때 나한테 전화하고”

‘아니 아직 40대 중반의 화가구나! 그런데 작품 너무 좋다’라고 생각을 했다. 퇴근 무렵에 다시 갤러리에 갔더니 김화백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와 맨드라미에 대한 회상과 어린 시절에 먹던 기지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대구와 경북 북부지역, 충북의 북부의 단양 등지에서 주로 맨드라미를 보았고, 사진도 수천 장을 찍으면서 작업을 했다”고 했다. “최근에는 작업실과 집 마당에도 맨드라미를 잔뜩 심어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말 오랜만에 좋은 그림을 보았다. 특히 내 고향인 영주의 소백산 중턱에 위치한 성혈사의 나한전을 그린 그림과 추억을 되새기는 맨드라미와 기지떡을 회상하게 해준 김화백에게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

내년 쯤 돈이 좀 생기면 김화백의 맨드라미 그림, 특히 늦가을에 그린 맨드라미 그림을 한 점 정도 구입하고 싶다.

신항섭 선생의 평론처럼 “한 가지 소재 또는 하나의 제재를 반복함으로써 기술적이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요, 보다 전문적인 시각을 지니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실 계열의 작품의 경우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비례하여 형태미와 색채감각 또한 세련되기 마련이다.”라는 말처럼 그의 그리는 맨드라미 그림이 더더욱 발전하여 그가 맨드라미 그림의 대가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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