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    업데이트: 17-03-29 12:56

언론 평론 노트

우먼라이프 2010년 09월호 - 맨드라미의 열정적인 삶 속에 빠지다.
김종준 | 조회 1,596


한여름, 마당에 피어 있는 붉은 꽃을 기억하나요?

고향마을 장독대나 담벼락 밑에는 자줏빛 감도는 빨간 꽃이 피어 있다. 이 꽃은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꽃이 향기도 없고 예쁘지도 않지만 붉은 빛이 온갖 귀신을 물리친다고 믿는다.

이 꽃은 바로‘맨드라미’다. 닭벼슬처럼 생긴 맨드라미는 한여름 뜨거운 태양에 맞서 두 달 정도 자태를 뽐내다 이내 확시들어버린다. 영어로‘Cockscomb’이며 한자로‘계관화’(鷄冠花), 즉 닭벼슬꽃이다. 맨드라미는 막걸리를 섞은 술떡을 만들 때 고명으로 얹기도 하고 화전으로 먹기도 했다. 또, 민간에서 맨드라미를 설사를 멎게 하는 약용으로 활용했다.
맨드라미의 열정적인 삶을 그림 속에 인생철학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맨드라미 화가’라 불리는 김종준 작가다. 그는 오늘도 맨드라미에게서 열정을 배운다.


대구 수성구 파동로 28길

대구 수성구 파동로 28길 한 골목길 안.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올라 길쭉하게 생긴 골목을 마주하게 된다. 겨우 한 대의 차만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그제서야 김종준 작가의 작업실이 나온다. ‘맨드라미 화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작업실 앞마당에는 맨드라미가 지천으로 자란다.

김 작가는 올 봄 작업실 앞마당에 맨드라미를 심은 뒤, 맨드라미가 자라는 모습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았다. 꽃을 보면서 작가가 느끼는 바를 캔버스에 그대로 옮겼다.

“올 봄, 지인에게 씨를 얻어 맨드라미를 키웠어요. 직접 키워 보니 제 자식마냥 예쁘네요. 아내가 질투할 만큼 맨드라미에게 사랑을 쏟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작품을 위해 충북 단양 등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수 천 장의 맨드라미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맨드라미를 그리는 작가들이 꽤 있지만 김 작가의 맨드라미는 추억을 담고 있다. 햇살 따스한 어느 날, 장독대 옆 화단에 눈부시게 피어난 맨드라미. 그 위에 나비까지 내려앉으면 마치 꿈을 꾸는 듯 유년으로 돌아가게 된다.

김 작가는“어느 날 문득 어렸을 적 오랜 추억을 더듬어 붓 가는대로 그린 그림이 맨드라미다”며“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어렸을 적 외할머니집 담벼락에서 보았던 맨드라미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김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옛 추억에 잠긴다.


아트지앤지 개관 2주년 특별전‘김종준 초대전’

갤러리 아트지앤지(ART G&G) 개관 2주년 특별전‘김종준 초대전’이 이달 7일부터 16일까지 대구 중구 봉산동 문화거리내에 위치한 아트지앤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자연에 대한 풍부한 감성과 맨드라미에 대한 열정을 볼 수 있으며, 독창적인 작품 2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김 작가는 한국미협회원, 표상회, 대구미술대전 초대작가로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로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개인전만 17회 연 중견화가다.

아트지앤지의 금철현 대표는“개관을 준비하면서 되도록 지역에서 활동하거나 지역 출신인 작가 위주의 기획전시를 열겠다고 다짐했었다”며“이번 2주년 개관 특별전도 지역 작가가 좀 더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장에 선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고 전했다.

김 작가는 자연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작가의 감성으로 표현해 작품에 담아냈다. 수채화같이 얇은 붓질로 천천히 유화를 올리고, 여러 번의 겹침으로 작품의 깊이를 표현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삶에 대한 이해를 관객에게 구하고 있다.

금 대표는“신진작가들이 점차 자리를 잡고 성장해나가는 것을 보면 한 없이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며“김종준 작가의 경우도 지역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지금은 서울까지 활동영역을 넓혔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화가로 활동하는 것과 화랑을 운영하는 것, 모두 돈만을 쫓는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작가가 성장해야 화랑도 성장하고, 지역미술도 성장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작가들이 꿈을 버리지 않도록 항상 옆에서 형처럼 다독여 주겠습니다.”


작가의 작품 세계

맨드라미는 씨를 뿌리지 않아도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어김없이 돋아난다. 그리고 이맘때면 수탉의 볏처럼 화려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의 꽃을 피운다.

때때로 열정적이며, 무심하고 순수하기도 한 맨드라미의 모습이 혹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김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맨드라미의 열정이 그림속에 그대로 녹아 그의 인생철학이 됨을 느낄 수 있다.

김 작가의 맨드라미는 강렬한 붉은 기운을 품고 주위의 초록색과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얌전하던 꽃은 점차 만개하면서 광란적 이미지로 바뀐다. 불타오르듯한 붉은색의 맨드라미는 극렬한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실제와는 또 다른 이미지로 태어난다.

김 작가는 맨드라미에 넘치는 생명의 기운을 표현하려 했다. 불끈불끈 솟구치는 맨드라미가 도열하는 모양은 생동감으로 충만하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색깔이 짙어지는 맨드라미의 형상은 절정으로 치닫는 가을의 정취를 대변한다. 더불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회화적인 이미지로 변환함으로써 실상과는 또 다른 형태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실제로 그는 맨드라미에 자의적인 해석을 곁들임으로써 실제를 재현하는 것 같지만 실제와는 다른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부각 시킨다. 조형적인 이미지로 치장하고 나타나는 맨드라미에 확실히 실제와는 확연히 다른 인상이다. 이는 물감이 만들어 내는 조형의 요술인 것이다.

김 작가가 재현한 맨드라미는 유난히 색깔이 짙고 화려하다. 이는 강렬한 햇살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표현기법에 기인한다. 강렬한 햇살에 노출된 꽃은 순결한 속살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특히 역광 아래에서는 꽃의 투명도가 한층 높아진다. 이처럼 투명한 꽃 색깔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햇빛을 실제 이상으로 강조한다. 실제의 색채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빛의 강도를 높임으로써 강렬한 발색의 맨드라미가 더욱 싱그럽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순도 높은 채도, 실제보다 과장된 광선, 그에 따른 극명한 명암을 통해 현실의 꽃보다 아름다운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김 작가의 그림은 반드시 실제로 봐야 한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 속에 빠져드는 충동이 견디기 힘들 정도다.
미술평론가인 심항섭 씨는“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의연히 서 있는 맨드라미는 정열의 화신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며 “마치 나르시스처럼 실제보다 밝고 화사한 모습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에 취해 꿈꾸는 것 같다”고
전했다.


글 _ 정수지 기자 / 사진 _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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