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    업데이트: 17-03-29 12:56

언론 평론 노트

사람을 아는 일은 쉽지 않다.
아트코리아 | 조회 856

사람을 아는 일은 쉽지 않다. 열길 물 속보다 깊다는 사람 속을 알기는 참 어렵다. '안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알아야 성립되는 말일까. 지난 일년간 함께 길을 떠나고, 술잔을 기울이고, 밤을 보내면서 김종준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길을 걷고, 술을 마시고, 피곤한 몸을 여관방에 뉘었다는 것은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 대화를 나누기 위한 도구.

온갖 이야기거리들로 시간을 채웠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 '참 닮고 싶은 사람이다.' 시간이 아까워 안달 난 사람처럼 김종준은 최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열심을 다해 삶을 산다. 밤잠을 설쳐가며 캔버스 앞에서 그림에 몰입하고, 새벽잠을 아끼고, 행여 게을러질세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잠시도 쉬지 않는다.

 

뜬금없이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작업실로 한 번 찾아오라고 했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돌아 전망 좋은 작업실 마당에 발을 디뎠을 때 깜짝 놀랐다. 마당 곳곳에 펼쳐진 맨드라미 꽃밭. 수백 개의 붉은 꽃봉오리가 한여름 뙤약볕 속에 마치 불 타오르듯 작열하고 있었다.

 

맨드라미를 그리는 화가는 많다.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 맨드라미를 해체하고 재조합하고 분석한다. 하지만 김종준만큼 맨드라미가 내뿜는 기운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아낸 화가는 찾아볼 수 없다. 맨드라미의 꽃말은 '건강'과 '타오르는 사랑'이다. 김종준이 그려낸 맨드라미를 보고 있노라면 건강한 삶의 정열이 마치 전기가 통하듯 찌릿하게 전해온다.

김종준의 맨드라미는 사실적이지만 결코 자연의 모방은 아니다. 맨드라미에서 사람을 보게 된다. 크고 작은 꽃들은 마치 제 흥에 겨워 '군무'(群舞)를 추는 듯하다. 서로 다른 높낮이를 갖고 더 높은 지향점을 향해 매진하는 듯도 보인다. 사람이 그렇다.

 

홀로 서지 못해 어우러지고, 그러면서 보다 나아지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인생이라는 틀 속에서 뻔한 한계가 보이지만 그 속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하루하루를 아낀다. 그게 사람이고, 맨드라미다. 비단 맨드라미뿐이 아니다.

그는 햇살과 아침, 향기, 정원을 사랑한다. 작품 속에 일관되게 추구해 온 가치이고 지향점이다. 여물통에 가득 찬 석류에도, 이른 봄 수줍게 피어나려는 목련 꽃봉오리에도, 시멘트 담벼락에 나란히 선 접시꽃에도 '햇살과 아침'은 살아있다.

김종준이 맨드라미에 귀착한 까닭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작업실 마당에 활짝 핀 맨드라미 꽃밭에서 조금은 부끄러운 듯 환하게 웃고 있는 김종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언제 그 많은 맨드라미를 키웠을까? 이제 그의 그림 속에서 붉고 노란 꽃봉오리보다 수줍은 듯 끝을 떨구고 묵묵히 제 몫의 일을 해내는 초록빛 잎사귀에 더 눈이 가게 됐다.

 

초록이 버티고 있기에 붉은 맨드라미가 더욱 도드라져 살아나듯 작가 김종준은 캔버스에 피어난 꽃을 돋보이게 하는 뛰어난 조력자로 남아있다. 진정 그림으로 말을 건네는 것이다.

매일신문 김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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