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14-12-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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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 그의 먹빛은 맑고 필획은 예리하다. - 이인숙
아트코리아 | 조회 1,294

김진규, 그의 먹빛은 맑고 필획은 예리하다.

지금 ‘문인화’는 무엇을 그리는 그림을 가리킬까?

김진규의 이번 전시작 중에는 사군자도 있고, 꽃과 과일도 있으며, 채소와 열매, 버드나무도 있다. 그는 매미, 잠자리, 하늘소, 나비, 벌 같은 곤충과 새도 그리고, 오리와 개구리도 그리며, 금붕어와 게도 그린다. 문인화가 무얼 그리는 그림인가는 이제 잘라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문인화는 사군자를 가리켰다.
매난국죽을 비롯해 수선, 연, 파초 등 간단하게 그릴 수 있지만 품격 있고 상징적 의미가 깊은 대상을 서예의 필법과 묵법을 응용해 그리는 묵화가 문인화였다.
그러나 현대 문인화는 군자화목(君子花木)류에 머무르지 않고 소재를 크게 넓혔다.
이제 문인화가들에게는 필력과 묘사력이 함께 필요하게 되었다.
물론 채색을 활용하는 능력도 함께... 

김진규는 맑은 먹과 투명한 색채, 예리한 필획으로 못 그리는 게 없다.
그러나 그는 많이 그리고, 잘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양화의 장점이지 문인화의 장점이 아니다. 문인화는 사실(寫實)이 아니라 사의(寫意)로 그린다. 사의는 대상의 형태가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서 느끼는 ‘기분(意)’을 대상을 빌려서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대나무에 대한 생각을 그리는 것이 묵죽이며,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그 기분을 살리는 것이 사의이다. 문인화 역시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인 대상과 공간을 그려내는 회화이다. 그러나 문인화의 공간은 서양화의 원근법과 명암법의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미묘한 함축과 대담한 생략으로 여백을 생성시키는 철학적 공간이다. 문인화의 공간성, 즉 여백은 묘사의 기술(illusion)이 아니라 관조의 깊이(禪味)에서 나온다. 물론 그것이 화면상에 나타나자면 붓털 하나하나가 살아있게 팔면출봉(八面出鋒)하는 생생한 운필을 통해 붓과 먹이 종이와 한 몸이 되는 화학적 결합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여백이 생성될 때 그려진 부분과 비워진 부분은 모두 필요불가결한 회화적 공간이 된다. 절제는 문인화의 미덕 중 하나이다. ‘단순한 것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문인화가들에게 무척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

김진규가 근래 자주 그리는 대상 중에 붓이 있다.

붓!

극연양호(極軟羊毫)의 모필(毛筆)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예술 도구 중 하나일 것이다.
한 대의 피아노가 어떤 음악이든 연주할 수 있는 것처럼 한 자루의 붓은 무한한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인간의 뇌 사용량이 10% 미만이라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낭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 대의 피아노, 한 자루의 붓이 실현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인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붓은 붓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에게 희망이자 절망이며, 기쁨이자 슬픔이며, ‘웬수’일 것이다.
그 애증이 붓을 그리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붓이 갖는 상징성은 사군자만큼이나 강하다.
필총(筆塚), 퇴필여산(退筆如山)이라는 중국식 과장이 있듯이 붓을 쌓기도 하고, 붓은 ‘몽(夢)’자를 쓰기도, 낙서를 하기도 한다. 붓은 문(文)을 낳는다. 대구는 원래 문(文)의 문화가 강한 동네였다. 지금 대구에 훌륭한 문인화가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고, 수성구의 높은 수능 성적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대구는 서병오, 서동균을 비롯하여 문인화의 역사가 짱짱한 곳 아니던가.
사물에 대한 관조의 깊이와 붓의 장악력에 대한 고민이 문인화의 출구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의 압권은 210×280㎝의 대작 <석죽도(石竹圖)>이다. 대나무(虛心)는 군자이다. 돌(石)도 군자이다. 두 군자(君子)인 돌과 대나무가 서로 속마음을 알아주는 허심우석(虛心友石)의 화제는 역사가 오랜 묵죽화의 한 유형이다. 특히 서병오가 상해에서 포화(蒲華, 1830?1911)에게 직접 그려 받은 ‘석죽도’를 대구로 가져 온 이래 대구 묵죽의 중요한 도상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 석죽이다. 죽강은 호쾌한 뜻과 운치(豪情逸韻)로 바람을 맞는 풍죽의 오연한 모습을 또 한 군자인 바위가 든든히 동반하는 석죽도로 그려냈다. 

죽강(竹岡) 김진규(金振奎, 1962년생),

털털한 생김새와는 달리 그의 먹빛은 맑고 필획은 예리하다.
 

이 인 숙 │한국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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