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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언론

[나의 예술, 나의 삶]화가 김정기 / 매일신문 배포 2020-05-03
아트코리아 | 조회 1,169
[나의 예술, 나의 삶] 화가 김정기



화가 김정기가 대구시 북구 구암동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인 목일화실에서 산을 대상으로 한 대형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정기 작 'ESSENCE-20F'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다른 분야처럼 예술 분야에서도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개념미술 등 다양한 사상과 흐름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면예술, 즉 회화를 관통하는 흐름을 구상과 비구상으로 대별하는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비구상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눈에 보이는 대상들의 왜곡이나 추상을 통한 기호적 표현이라면, 구상은 화면 배치나 구도 및 색감의 변화는 있어도, 여전히 전통적인 회화의 모습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우리에게는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강렬한 색채미학을 통한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화가 김정기(55)가 수채화와 구상계열 유화에 몰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구시 북구 구암동 함지산 자락이 뻗어난 동네 3층 건물에 자리 잡은 '목일(木日) 화실'. 자신의 호(號)를 화실 이름으로 작가가 12년째 작업하고 있다. 화실 넓이는 약 130㎡로 벽면을 채우고 있는 많은 수의 그림들이 김정기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대변하고 있다.

"제 고향이 안동인데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하굣길에 거의 매일 자연을 대상을 그림을 그리는 게 놀이였죠."

계명대 미술대학(85학번) 서양화과를 나온 작가는 중고시절 미술부에서 활동했고 고3 때부터 꿈꾸어 온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위해 대학 4학년 때는 교직이수마저 포기했다.

"언제나 무작정 그림이 좋았고 대학시절 바람은 지프차 한 대 사서 화구를 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죠. 당연히 그림만 그려갖고 결혼과 생활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회의도 들었죠."

고3시절 안동에 잠시 자리 잡았던 민병도 화백에게 입시미술에 대한 정보와 가르침을 받기도 한 작가는 계명대 서양화과 내 구상 서클인 '청목회'에서 활동했으며 1996년 당시 송아당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현재까지 25년째 전업 화가로 살아오고 있다.

"첫 개인전을 열면서 스스로 다짐했던 게 내 나이 40이 될 때까지 10번의 개인전을 갖는 것 였습니다."

김정기는 40살 때 돌이켜보니 13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2020년 올해 29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강한 색감과 진한 터치감으로 표현되는 작가의 화폭은 수채화와 유화를 병행한다. 그에게 수채화는 '애인'같다면 유화는 '마누라'인 셈이다. 작가 말에 따르면 수채화는 물성이 지닌 우연성이 있고 또 처음과 끝이 보이는 특성이 있는 반면 유화는 덧칠과 교정이 가능함에 따라 마치 산전수전 다 겪는 우리네 인생과 닮은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는 유화를 그릴 때 그림 도구에 구애받지 않는다. 심지어 두꺼운 마분지를 잘라 쓰기도 한다. 그림 도구로 붓이 부드러움을 표현하고 나이프가 딱딱함을 구현하는데 적합하다면 김정기는 강렬한 색감과 두터운 붓 터치를 구현하기 위해 실리콘 주걱을 사용할 때가 많다.

실리콘 주걱 사용은 그의 그림에서 회화성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사실적 그림이 선(線)적이며 형태를 중시한다면, 이와 반대로 면(面)적이고 색감과 질감, 시간성을 더 중요시하게 되는 경우 이를 '회화성'의 재현이라고 한다.

한편 화가로서 삶에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정기는 40세를 전후로 생활고와 그림 스타일에 대한 갈등이 많았다. 당시는 대구 화단에 사실주의적 그림의 유행하던 터라 작가로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는 어느 순간 '내가 왜 그림을 그리는가?'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그림으로 경제적' 사회적 명성을 바라지 않았다'는 초심으로 돌아가게 되자 마음을 추스르게 됐다고 술회했다.

"이후 열린 전시회 등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저의 그림이 무척 밝아졌다는 평가를 하게 되자 그때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즐거워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의 화풍이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가 됐던 것이다. 김정기는 대부분 자연에서 그림의 소재를 가져온다. 주변에 보이는 산이고 강이고 마을이고 꽃이다. 사람의 흔적은 되도록 화폭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회화적인 순수성이 돋보이는 그의 화폭은 야수파적 정취가 묻어나는 인상주의적 생동감이 넘친다.

그는 매달 한 번 이상은 화구를 매고 현장사생을 나간다. 또 사진을 찍거나 현장에서 느낀 자연을 마음에 담아 화폭에 재현하기를 즐긴다. 이중에서도 그가 즐겨 그리는 대상은 산 그 자체이다. 작품 중 산 풍경은 실제보다 크게 화면에 드러난다. 산이 대개 화면의 2/3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자연이 사람들이 사는 배경으로 역할을 하지만 사람도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작가의 자연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산 그림은 산의 형태보다는 산의 기상(氣相)이나 정기(精氣)에 더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김정기 산 그림들은 대개 제목을 'Essence'라고 붙인다. 이 같은 제목에는 인위적 변화보다 자연스런 변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의 예술철학이 담겨있다.

"저에게 그림은 곧 화가인생의 일기와 같아요."

그림에 전통적 요소가 없다면 힘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김정기 유화에서 오브제가 풍기는 정기 혹은 본질이 빠진다면 그건 김정기 유화가 아닌 것과 같다.

그는 대구청년작가회 회장(2001~2002)을 맡아 대한민국 청년비엔날레를 주관한 바 있으며, 현재 대구사생회(2010~) 회장과 한유회(2015~) 회장 및 한국미술협회 대구지회 서양화분과 부회장과 대구시민센터 이사로 공익과 예술의 만남전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글 그림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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