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5    업데이트: 24-01-15 11:36

평론 언론

대구문화 2012년 7월(320호)이사람 : 지역 첫 수채화 공모전 개최한 대구수채화협회 회장 김정기
아트코리아 | 조회 876

“수채화처럼 투명한 공모전으로 키워나갈 터” 


지역 첫 수채화 공모전 개최한 대구수채화협회장 김정기 


 

  지난달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전국 단위의 수채화 공모전이 열렸다. 이달에는 3일부터 8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공모전 수상작들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현재 한국수채화공모전 등 전국 단위로 두세 개의 수채화 공모전이 열리고 있지만 지역에서 준비하는 수채화공모전은 처음이라 더욱 관심이 모아졌다.
  제1회 수채화공모전을 이끌어낸 대구수채화협회 김정기 회장은 “대구수채화협회가 1983년에 창립되어 교류전, 아동수채화실기대회, 남부워터칼라페스티벌 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치며 다른 지역 수채화협회 창립의 촉매제 역할을 했지만 이렇다 할 자리매김 행사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지난 공모전은 괄목할만한 자리매김 행사였다.”고 공모전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한국 최초의 수채화 전시인 서동진 수채화 전람회가 1927년 대구 조양회관에서 열렸고, 지역 출신의 손일봉이 1925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 (이하 선전)에서 수채화로 입상했으며 1927년에는 동경의 제국미술전에서 입선하는 등 기량을 뽐냈다. 1930년대에는 이인성이 선전과 동경의 제전에서 수채화에 두각을 나타냈고,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는 이경희가 수채화 작품으로 특선을 받는 등 한국 근대미술의 초석을 깐 지역 작가들을 통해 대구가 한국의 수채화 발상지로 만들기에 충분한 만큼 지난 수채화 공모전 개최의 의의는 충분했다. 지난 2010년 대구수채화협회 제13대 회장에 오른 김 회장은 회장 직에 오르기 전부터 수채화공모전을 계획했다. “회장직에 오르자마자 공모전 준비에 들어갔으니 2년 정도 준비 기간을 가졌다. 우리나라에 공모전이 수백 개가 되다 보니 처음에 수채화공모전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또 공모전인가?’라는 반응이었다. 출품 작가와 심사위원 간의 유착관계로 얼룩진 자정력 없는 공모전이 우후죽순 생기다 보니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투명한 공모전으로 치러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 첫 번째 실천 과제로 누가 심사했는지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이었다. 심사위원들의 이름을 공개함으로써 작가의 이름을 내건 책임 있는 심사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행사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출품작 수를 늘리기보다 질적으로 투명한 공모전으로 치러 공신력 있는 공모전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급선무였다.” 총 상금 6백만 원을 내건 지난 공모전에서 무엇보다 협찬금 모금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했지만 의외로 그 부분은 일찌감치 해결되었다. 내실 있는 중소기업을 찾았던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문화센터, 평생교육 강좌를 통해 일반 수채화 애호가들은 많아지고 있다지만 실제 수채화 작업을 하는 작가는 많지 않다. 대구미협 수채화 분과에 20여 명, 대구수채화협회 회원 70여 명이 고작이다. 그런 현실에서 전국 단위의 수채화 공모전을 치러냈다는 점에서 대구수채화협회와 김 회장의 추진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 추진력 뒤에는 지난 2002년 대구청년작가회장을 역임하며 전국의 청년작가들을 불러들인 대한민국 청년비엔날레, 한유회 사무처장으로 15차례의 공모전을 치러낸 오랜 시간의 실무경험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김정기 회장은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개인전 21회를 열었다. 현재 사생회 회장, 한유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글|홍미혜 사진|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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