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0    업데이트: 19-11-2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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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김효선의 작업실
아트코리아 | 조회 1,966

조각가 김효선의 작업실


조각가 김효선의 작업실(범어2동 231-10번지)에 들어서면 벽면마다 다양한 길이와 너비로 켜 놓은 원목 판재가 겹겹이 세워져 있고, 왼쪽 노란 벽면에는 지금은 대학생이 된 딸아이의 유년 시절 낙서가 한가득입니다.
중앙에 놓인 작업대 위에는 한창 제작 중인 작품이 놓여 있고 작업대 주위로 다양한 크기의 톱과 끌, 망치, 송곳, 드릴, 자,가위, 여러 가지 모양의 조각도가 있다. 또 중앙 한쪽에는 겨울이면 어김없이 진가를 발휘하는 고풍스러운 화목난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업실의 나머지 여백은 보사노바나 재즈,때로는 라디오에서 흐르는 국악으로 채워집니다. 그래서 김효선의 작업실엔 손님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작업을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비어 있는 때가 없습니다.
도심에서 조각 작업실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소음, 유지 비용, 공간의 크기 등 걸림돌이 많기 때문입니다.



조각가 김효선이 이곳에 입주한 것은 1998년입니다. 아파트 발코니에서 작업하던 시절에는 흙으로 소조 작업을주로 했지만 이곳으로 오면서 소조 작업은 차츰 멀어졌습니다. 아파트라는 장소의 특성상 소음이 발생하거나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는 범위안에서 작업을 하자면 흙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흙 작업(소조 작업)은 흙으로 성형한 뒤 석고로 형틀을 만들어 합성수지나 브론즈로 떠 내는 작업과 흙으로 만들어진 형상을 낮은 온도의 가마에서 구워 내는 방법(테라코타)이 있는데 김효선은 그 두 가지 방법으로 10여년간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 범어2동의단독주택지 작업실로 온 뒤로는 흙 작업에서 차츰 멀어졌습니다. 형상을 만들어 가마에 자연스러운 결과로 작가가 원하는 형상과 나무가 갖고 있는성질이 서로 잘 맞을 때 작품은 비로소 완전한 생명력을 갖게됩니다. 흙에서부터 비롯되는 작업(소조 작업)은 오직 작가의 손길만이 생명이지만, 나무는 나와 나무가 협동해서 새로운 생명을 만듭니다.

김효선은 “어쩌면 내가 나무의 위력에 기대어 완성된다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작가의 영감과 손길이라는생명력이 나무의 원래 생명력과 만나 온전히 하나가 될 때 완전한 생명으로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조각가 김효선은 대학(경북대 조소과) 시절부터 나무를 상대로 작업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젊음의 치기로 마음만 급해서 나무의 속성을 달래 가며 원하는 완성에 도달하는 느긋한 여유로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차라리 금속이나 소조 작업이 좋았습니다.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나이 들고 자식 키우고 제법 어른이 되면서부터 조금씩 나무를 다루는 일이 가능해졌다”고 말합니다.
일상의 소재로 삶을 조각한다 김효선이 나무를 다루어 제작해 낸 작품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소한 것들입니다. 연탄재, 망치, 가위, 화분, 사람, 나무….


그녀는 일상에서 흔히 쓰며 가까이 대하는 사물을 통해 사람과 사람살이를 봅니다. 예전에는 인체를 단순화시킨 조각을 많이 했습니다. 인체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단순화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인체의 외형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했었습니다. 이제는 삶에 쓰이거나 기대게 되는 물건을 보면서 우리 삶의 내면으로부터 드러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품으로 예를 들면 ‘가위’로 설명되는 삶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가위가 가위로 기능하자면 두 개의 날카로운 칼날이 필요합니다. 날카로움이 배제된 가위는 가위가 아닙니다. 그러나 날카로움이 상대에게 상처를 낸다면 그 역시 가위가 아닙니다. 가위는 날카로운 두 개의 칼날을 갖고 있지만 두 칼날이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냅니다. 가위의 기능이 그렇지 않은가? 가위를 주제로 만든 작품 ‘커플’과‘유능한 커플’ 등은 서로 도와 가면서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 사람과 사람을 은유합니다. 두 개의 날은 ‘나’와 ‘너’로 구분되는 조합이기도 하며 ‘나’가 마주한 ‘일’과의 조합이기도 합니다. 2014년개인전에서 가위의 형상에 무용수를 표현한 작품 ‘dancing’으로 다양한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연탄재를 주제로 만든 작품 ‘불꽃화석’ 역시 같은 이치입니다. 연탄재는 자신을 희생해서 세상에 온기를 퍼뜨립니다. 그렇게 연탄재는 소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소멸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연탄재가 갖고 있는 온기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온기였으며, 세상으로부터 받은 온기를 세상으로 돌려줄 뿐입니다. 태어나고 살고 죽는 사람살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 3분의 2쯤 타고 있는 상태의 연탄 불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나는 연탄은 이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색깔은 연분홍을 띠며 희어지고 불꽃은 강렬하고….”


파괴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망치의 형상을 한 작품에 조각가 김효선이 붙인 제목은 ‘섬세한 손’입니다. 망치는 대상을 부수는 도구이지만, 이 역시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기 위해 작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섬세한 손길입니다. 이러다 보니 그녀의 작업실은 깨끗할 날이 별로 없다. 항상 끌과 망치질에 의해 떨어져 나온 나무 파편들과 분진들로 어질러지고 관찰 대상인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습니다. 이런 공간에서 김효선은 자르고 깎아 정돈된 생명을 만듭니다. 까닭에 김효선의 작업실 혹은 작업을 정의하면 사람과 사람살이를 사물의 기능에 빗대어 겹쳐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업실, 자기만의 방이자 축제의 장

조각가 김효선에게 범어동의 이 작업실은 자신의 진정한 소울을 만나기 위한 장소입니다. 하루의 시작도 이곳에 와서야 시작되고 바깥에서 일정이 바빴던 날도 이곳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다양한 관계 속에 살게 되면서 부터 절실하게 그 어떤 밀접한 관계와도 단절된 ‘나만의 방’이갖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복잡한 갖가지 관계들로부터 오는 긴장을 풀고 넋을 놓을 수 있으며 맘껏 멍 때리면서 얻는 에너지 재생의 공간 말입니다. 조각가 김효선에게 이 작업실은 그런 공간입니다. 분주했던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앉아서 ‘멍 때리다 보면’ 그즈음에 만났던 좋은 사람들의 이미지가 몇몇 머릿속에 남습니다.

좋은 사람들은 좋은 인연으로 오래도록 이어집니다. 김효선은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자신이 보낸 시간이 쌓이면서 함께 쌓인 좋은 인간 관계가 작품에 녹아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손길, 자신의 영감, 나무가 원래 지니고 있었던 생명력에 더해작가 자신이 만나고 헤어졌던 수많은 사람들이 또한 생명의 숨결이 되어 주었다는 말이 “그들은 내가 사십 대에 접어들면서 인연이 되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도 적은 분도 있지만 모두 내 삶의 선생님들입니다. 직업도 다양합니다. 하는 일이 달라도 좋은 사람들은 서로신뢰를 쌓으며 절친이 되어 갑니다.”까닭에 범어동의 이 작업실은 ‘작가 자신만의 방’이지만 모두를 위한 ‘축제의 장’이 될 때가 많다. 연중 행사로 깨끗이 정리 정돈과 청소를 기꺼이 하게 되는 날이 일 년에 몇 번 있습니다. 친구들 중 누군가가 승진을 했거나 경사스거운 일이 생긴 것을축하하러 모이는 날입니다. 자연스레 이곳에 모여들어 겨울이면 화목난로에 고구마를 구우며 지인이 갖고 온 보드카로 그동안의 수고에 박수를 보내는 축제의 자리가 되기도 하는데, 그렇게 모두 모이면 제철 식재료를 갖추어 와서 작업실에 있는 부실한 장비로 맛깔스럽고 푸짐한 만찬을 만들어 놓으시는 분, 흥에 겨워 낮은 음조로 아주 옛날 트로트를 라이브로 맛깔나게 불러 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게다가 정식 무대가 아니면 절대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 한 성악가 선생님께선 팬들의 즉흥적인 요청에 반주도 없이 오페라 아리아를 감미롭게 불러 주시기도 합니다. 그 시간만큼은 이 공간이 그분들에게도 ‘나만의 방’이 됩니다.


햇빛, 흙, 노동, 땀 그리고 채소

조각이 본업인 김효선에게는 취미 생활이 하나 있습니다. 도시에서 농부처럼 살아 보기 위해 작은 텃밭을 가꿉니다. 작년 봄부터 김효선은 그곳에서 농부 복장을 하고 흙을 만지고 쪼아 밭을 일구고 거름을 섞어 영양분을 준 다음 씨앗을 심거나 모종을 심어 수확하는 과정을 맘껏 즐기고 있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흙과 흙사이를 자유롭게 쏘다니는 곤충들과 함께 거기에 노출되어 있는 자신이 참 좋다고 한다. 줄줄 흐르는 땀이 고맙습니다.“밭에 있으면 몸과 마음은 가벼워지고 계절의 변화와 내가 심어 놓은 작물의 성장과 하루하루 다르게 변화하는 밭의 모습이 경이롭습니다. 작업실이 인간 세상의 긴장과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용해지기 위한 곳이라면 밭은 내 안의 내가 미쳐 날뛰도록 내버려 두는 곳입니다. 밭에 가면 나는 가만히 있는데 흙과 곤충과 푸른 잎들이 나를 일깨웁니다. 좋은 사람이라도 편안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밭은 꾸밈도 가식도 없이 말 그대로 ‘자연 그대로’여서 그냥 아름답고 편안합니다. 잡초 뽑기,물 주기, 감자밭에 북 주기 이런 거 하면서 실컷 놀고 나면 저절로 얻어지는 수확물들은 또 얼마나 고마운지요! 농약 한 방울 없이 고추, 상추, 옥수수, 오이, 방울토마토, 감자, 고구마, 가지 등 이것들은 덤으로 가져가는 것이지요.”그러니 비록 그녀의 조각 작업은 작업실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창작 활동의 근원은 흙, 곤충, 푸른 잎들과 선명한 햇볕 아래서 얻은 에너지를 가득 안고 다시 사람 밭으로 돌아오는 이 멋진 순환 속에 있습니다.
언젠가 음악회 공연장 로비에서 한 지인과 오랜만에 만나 악수를 했는데 여자 손이 왜 이리 거칠어?라고 농담을 하시더 라고요그래도 저는 즐겁습니다거친 제 손이 좋아요살아서일하는 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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