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8    업데이트: 23-02-16 09:38

언론, 평론

발’에 드리운 깨달음…숨김과 드러남의 美學[대구신문]
관리자 | 조회 1,260
<한국화가 김봉천 개인전 내달 4일까지 맥향화랑> 
한국화의 현대화 모색 
두꺼운 하드보드지 활용 
보름달·대나무 잎 배치 
‘은현’ 시리즈 등 30점 소개


한국화가 김봉천의 21번째 개인전이 맥향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우연히 들른 식당 벽에 걸려 있는 글 귀 한 구절에 예술가 김봉천의 눈길이 섬광처럼 꽂힌다. “하늘에 달은 떠 있는데 소나무에 그림자가 없고, 바람이 한 점도 없는데 대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뜻의 한 시였다. 

달이 있는데 그림자는 왜 없으며, 바람이 없는데 대나무는 왜 흔들렸을까. 이 이상야릇한 현상의 범인은 귀신의 장난도, 낮도깨비의 술수는 더더욱 아니었다. 범인은 바로 ‘눈’이었다. 달그림자가 없었던 것은 세상을 뒤덮은 백설이 그림자를 흡수한 탓이고, 대나무가 흔들린 것은 댓잎에 쌓인 눈송이가 제 무게에 겨워 떨어진 때문이다. 

당시 이 오묘한 싯귀가 주는 반전의 풍경들이 김봉천의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깨달음 하나를 남긴다. 바로 그림속 ‘은유’와 ‘순화’다. ‘숨김’과 ‘드러남’의 적절한 오고감을 통해 풍경이 갖는 일상성을 ‘순화’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은 극대화하는 것이다. ‘숨김’과 ‘드러남’의 미학에는 발, 창호, 창문, 물결 등의 고전적인 장치들이 활용된다. 한국화가 김봉천의 ‘은현(隱現)’ 시리즈의 탄생비화다.

“서양화는 빛의 조화, 소실점 등을 고려한 분석적인 그리기인데 반해, 동양화는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조합해 새롭게 해석하는 관념적인 그리기에요. 나는 이 관념적 그리기에 발이나 물결, 창호 등을 통해 한소끔 걸러낸 은유를 더하지요. 마치 안개 속 풍경처럼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지요.”

전통 한국화의 현대화를 모색하는 한국화가 김봉천의 21번째 개인전이 맥향화랑에서 시작됐다. 전시에는 ‘은현’ 시리즈 14점과 정물 느낌의 작품 30여점이 소개되고 있다. 

전시작 ‘은현’ 시리즈는 발이나 물결 등을 통해 바라본 풍경이다. 대나무 사이를 비취는 두둥실 둥근달과 흐드러진 봄의 매화, 바람에 일렁이는 물경 속 풍경이 발이나 창호, 물결을 통과하며 칼칼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가 나른한 카타르시스로 돌변하기도 한다. 

‘은현’은 20여 년 동안 몸담았던 대학을 떠나던 4년 전 시작한 작품이다. 화선지를 버리고 두꺼운 하드보드지 위에 색을 입히고 칼집을 내어 격자 형식으로 뜯어내는 기법이 특징이다. 일종의 종이판화와 비슷한 방식이다. 

대개 화선지에 그리는 전통한국화는 먹과 화선지가 가지는 까다로운 물성 때문에 머릿속 밑그림을 미리 그리고 그 논리도에 따라 그려내는 예측가능한 그림이지만, 하드보드지 위에 그린 그의 그림은 좀 다르다. 하드보드지가 주는 투박함이 처음 시작할 때의 밑그림을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는 가변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개입 여지가 확대되는 것이다. 

그는 화선지와 비교해 하드보드지를 “플러스알파(+α)”로 비유했다. “1+1=2이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림도 시작과 끝이 같으면 재미가 없어요. 실패로 시작했지만 수작으로 마무리 될수도 있어야 하고, 시작은 좋았지만 실패작으로 흐를 수도 있어야 해요. 그것이 플러스 알파지요. 하드보드지에는 그런 변화 여지가 많지요.” 

그는 영남대 사범대 회화과를 나왔다. 회화과라고는 하지만 대학시절부터 한국화를 공부했고, 그림의 시작도 한국화였다. 하지만 회화에 대한 감각도 몸 속 어딘가에 담겨져 있을 것이다. ‘은현’ 시리즈의 색감이 전통한국화의 그것보다 훨씬 화려하고 회화적인 것에는 그런 이력이 숨어 있다. “수묵이 주는 매력을 충분히 경험하고 나면 칼라가 생각나기 마련인가 봅니다. 마침 하드보드지가 아크릴 물감 흡수율이 좋아서 칼라를 즐겨 활용하고 있어요.” 전시는 내달 4일까지. 053)421-200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기사전송 : 2015년 0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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