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3    업데이트: 18-05-25 10:18

언론, 평론

‘발’에 드리운 한국화…숨김과 드러남의 묘한 美學 화선지 대신 하드보드지 활용…매화·보름달·대나무 잎 배치
관리자 | 조회 895

19일부터 맥향화랑에서 열리는 21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화랑에 미리 설치해둔 전시작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봉천 작가.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미술작품의 가치를 평가할 때의 주요요소 중 하나는 작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가정신은 여러가지로 해석되는데 여기에는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는, 작가의 살아있는 정신이 포함된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는 발전적 의식이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이것이 정지된 화면을 마치 살아숨쉬는 것처럼 느끼도록 하는 힘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화가인 김봉천 역시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는 작가다. 2010년 잘 다니던 대학교수 자리를 과감하게 그만둔 이유도 변화하는 그림, 즉 발전하고 성장하는 작품을 위해서였다. 김 작가는 여느 한국화가들처럼 한국화의 현대적 발전을 위해 늘 고민해왔다. 한국화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살아숨쉬는 작품을 보여주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10년 전 택한 것이 발이라는 소재였다. 발은 가늘고 긴 대를 줄로 엮거나 줄 따위를 여러 개 나란히 늘어뜨려 만든 물건이다. 햇빛이나 여러 사물을 가리는데 흔히 쓴다. 이 발에서 김 작가는 한국적인 요소를 찾아냈다.

이인숙 미술평론가는 “발은 창호지 등과 같이 숨김 속에서 드러남을 존재하게 하는 장치다. 숨김 속에서 드러나게 된 대상은 그 즉물성이 제거돼 베일이 드러워진 미인이나 안개가 자욱한 풍경과도 같다”며 “미인이나 풍경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베일과 안개로 인해 일상성이 소거됨으로써 대상이 더욱 미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런 발을 통해 한국적 미감을 보여왔던 그가 5년전 대학 교단을 떠나면서 기존 사용하던 화선지마저 버렸다. 수묵과 함께 한국화의 기본틀이라고 할 수 있는 화선지를 하드보드지로 대체한 것이다. 두꺼운 하드보드지 화면 위에 색을 입히고 가로로 칼집을 내어 격자 형식으로 잘라내는 기법을 가미한 새로운 발 시리즈를 보여줬다.

발 뒤에 흐드러지는 매화 꽃잎, 두둥실 뜬 보름달, 바람결에 날리는 듯한 버드나무 잎, 깔끔한 멋을 내는 대나무 잎 등을 배치시킴으로써 숨김과 드러남이 만들어내는 묘한 조화로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대학을 퇴직한 뒤 첫 개인전으로 2003년 연 전시에서 하드보드지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던 작가는 이 전시 이후 좀더 발전된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를 거듭했다. 기존에 발을 직선으로 표현하고 발 뒤에 버드나무, 대나무 잎을 그렸던데서 벗어나 최근에는 발 자체의 느낌이 최대한 살아나도록 발의 선을 부드럽게 처리하고 발 뒤에 그리는 사물도 매화나무, 달 등으로 소재를 넓혔다. 발만이 아니라 물결을 활용한 작품도 눈에 띈다. 물결 역시 숨김과 드러남의 미학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소재라는 것이 김 작가의 설명이다.

이같은 김 작가의 최근작을 두루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된다. 19일부터 4월4일까지 맥향화랑에서 열리는 그의 21회 개인전이다.

김 작가는 “발이나 물결 모두 무엇인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신비로움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아가 감상자들에게 발과 물결 너머의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며 “눈에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현시대에 보이지 않고 숨어있는 것의 미학과 가치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이같은 김 작가의 다양한 시도에 대해 “그는 그동안 전통적인 한국화의 범주 내에서 실험적 변혁과 자기 정진을 거듭했다. 화면 내에서 전래하는 재료와 새로운 기법에 대한 모색, 특정 모티브 고유의 미감에 대한 작가 개인의 내밀한 시적 감수성에로의 승화가 자연스럽게 공존케 함으로써 전통의 계승에 대한 작가 나름의 방법론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고 평했다. (053)421-2005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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