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8    업데이트: 23-02-16 09:38

언론, 평론

상징과 방법의 이중주
관리자 | 조회 1,411

상징과 방법의 이중주

‘숨김과 드러냄(隱-現)’의 방식을 통해 나타나는 표현미학

2018.4.
김영동(미술평론가)
 
 
화폭의 전면에 드리워진 대나무 발, 가지런한 대오리의 촘촘한 살 사이로 투과되는 빛들이 화면 가득 재현되는 것을 보면 경이로움을 감출 수 없다. 고르게 펴져 있는 정치한 선들을 통해서 바깥 풍경이 반투명하게 비치는 것까지 정말 놀라운 표현이다. 허공에 커다랗게 걸린 만월의 둥근 원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여백 가장자리로는 그 빛에 그림자를 드리운 대나무 가지들과 뾰족한 잎사귀들이 제 무게에 휘어진 채 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까지도 들리는 듯하다. 빛과 음향이 엮어내는 교향시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서 고즈넉한 풍경을 관조하며 묵상에 잠긴 듯 느껴지는 화면들은 김봉천 교수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는 독특한 개성의 작품들 중 일부다. 수묵화인 듯 아닌 듯 하고, 서양화의 기법으로 구현된 조형작품 인듯하면서 전통적인 서화 매체의 속성을 계승한 한국화의 정체성이 바탕에 깔린 것이 바로 이 작가의 그림이 지닌 특성이다.
발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게 한 바깥 풍경은 은은하고 순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것도 한눈에 확 들어오기보다 찬찬히 주시하면서 전체 상을 읽어 들이게 유도한다. 창이나 대청마루에 쳐두고 밖에서 들어오는 강한 빛이나 시선을 차단하는 용도지만 통풍과 투시가 허용되는 장치로서 발은 일상생활의 지혜가 담긴 운치 있는 발명품이다. 이제는 실용에서도 거의 사라진 풍정의 일부가 됐는데 이를 작품의 모티브로 또는 매개로 지속적인 탐구를 계속하고 있는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작품 주제 ‘은-현(隱-現)’에 담긴 함의
 
김봉천 교수는 수년간 어의가 서로 반대인 두 글자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한 단어를 중간에 이음표(-)를 넣어서 자신의 작품 제목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각각의 그 홑 글자들에서 암시되는 바대로 작품대상의 드러냄과 숨김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타입의 조형방법을 사용해 독특한 미학적 표현을 하고 있다.
우선 ‘은현’이라는 이 단어가 ‘숨었다 나타났다’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작가의 그림 속에 재현되는 상징들의 성격을 은유적으로 설명한다. 먼저 그가 즐겨 다루는 화재들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자주 소재가 되는 대상들을 보면 커다란 만월을 배경으로 나뭇가지와 잎을 드리운 대나무 혹은 버드나무 줄기들이거나 그 밖에 주위의 고즈넉한 풍경들이다. 주렴에 달이 그렇고 밤하늘 달빛에 투영된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그렇듯 허공에 고정된 듯 보이지만 바람에 흔들리거나 조용한 밤공기에도 미동하는 미묘한 떨림이 있고 여기서는 빛조차 명멸하며 산란되고 있는 물질이다.
또 ‘은현(隱現)’이란 단어에는 “보일락 말락 함”이란 뜻도 있는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전경들이 대개 사색을 동반하거나 관조적 시선을 통해 본 시의가 깃든 장면들이다. 따라서 직접적인 현시가 아니라 심안을 통한 현현으로 해석되는 그 정경들을 바로 ‘발’의 도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함으로써 의도와 효과가 일치하는 듯하다. 발을 통해서 보게 되는, 너머에 있는 반 간접적인 풍경들은 더욱 풍부한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게 된다.
이른바 현실의 자연은 복잡한 관계 속에 얽혀 있고 온갖 사물들 속에서 진정한 상은 쉽게 백일하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흔히 진실도 분명하고 확연한 방식으로 보다는 넌지시 희미한 빛 속에서 점차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은현’의 주제가 상징하는 또 다른 의미는 이와 같이 야상곡에서와 같은 공명과 울림을 창출하는 것,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세계와 마주하려는 마음자세를 일깨워 주려는 것 같다. 그 주제는 결국 사물과 풍경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반영하면서 그의 예술이 지향하는 미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숨음과 드러남’의 이중주 같은 방법
 
‘은현’의 다의적 의미는 주제에서만이 아니라 제작과정과 방법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의 그림들이 두터운 재질의 종이(대지) 위에 먼저 그려지고 그 위에 이차적으로 나이프나 조각도로 표면을 커트해내는 특유의 작업방식에 의해서 탄생된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작가는 주로 장지나 하드보드지에 밑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칼집을 내고 표면을 박리시키며 한 올씩 잘라낸 자리를 드러냄으로써 이미지를 표현한다. 이렇게 잘라낸 절단면은 겹겹의 층위를 이루어 화면에 명암의 단계를 내고 톤을 조성하게 된다. 밑그림 부분을 반전시킴으로써 최종단계에서 작품을 완성시키는 이 두 번의 과정은 마치 이중주 속에서 서로 조화하듯 공명과 울림이 큰 톤을 형성해 가는데 최근에는 다색 지판의 효과까지 포함시키며 다양성을 더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변주를 통해 더욱 세련되고 화려해진 이미지들에서 한편의 교향시와 같은 풍부한 화음을 느끼게 한다.
김봉천 작가는 한국화 장르가 유난히 실험정신을 강조하면서 재료와 방법을 쇄신하려고 애쓰던 분위기에서 성장한 세대다. 전통과 관습의 혁신을 통해 현대화를 이루겠다는 시대적인 열정이 지배하던 시절 그 역시 현대한국화의 방향을 모색하며 ‘현대적인 미감’을 찾고 있었다. 아마도 추상적인 양식을 선택해 ‘의미 있는 형식실험’을 전개하던 도중 우연히 참신한 기법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지금의 방법을 확보하게 되었던 것 같다.
다소 파격적인 조형방법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다시 구상적인 이미지들을 불러냈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소재들에 애착을 보이기도 하는데 탄은 이정의 묵죽도들 연상시키는 화재도 그 한 예이다. 채색에서도 먹을 사용하거나 먹빛을 주조색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직접적인 붓질을 앞세우지는 않더라도 필획의 생명력을 중요하게 적용시키고 있는 것도 전통적인 미감을 상기시키는 부분이어서 의미심장하다.
 
한국화 본질의 특성과 계승문제

먹의 번짐과 스밈, 날렵한 필획에서 나오는 속도감과 예리한 필봉에서만 가능한 다양한 선의 구사, 리듬 등 전통회화에서 맛볼 수 있는 이런 미감들은 현대 한국화를 추구하는 김봉천 교수의 작품에서도 돋보이는 표현상의 특징들이다. 서양화적인 방법을 응용하지만 대체할 수 없는 한국화의 정체성이 그의 작품에 바탕을 이룬다. 작가의 작품 곳곳에서 이런 근원적인 가치들을 상기시키면서 여전히 회화는 개성과 솜씨가 반영되는 장르이며 개인 작가의 기예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임을 입증한다. 그렇지만 실험적인 방식에서는 우연에서 오는 자유가 느껴지지 않을 리 없다. 실험적인 방법을 놓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전통적 가치가 소환되는 작가의 이번 전시에서 한국화의 매력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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