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    업데이트: 13-09-24 16:07

언론 평론

김일해 / 화류계의 천부적인 재주꾼
김일해 | 조회 1,077

김일해 / 화류계의 천부적인 재주꾼

 

칼럼 김종근

 

이름을 부르면 웃음이 저절로 나오며 기분이 좋아지는 작가가 있다. 김일해 그가 바로 그런 작가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전 내가 파리에서 유학을 할 때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인 그를 파리시내의 한 화랑이 초대 한 적이 있다. 파리 전시를 마치고 고성으로 유명한 투르의 호텔 전시장이었다. 마침 그가 전시할 때 그의 노래솜씨를 보고 프랑스 국영 TV 방송이 전시장 촬영과 함께 그림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방영 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조용필의 노래로 기억되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는 그들도 탄성을 지르며 놀라워 했다. 그의 인기는 라디오 인터뷰로 이어졌고 해프닝과 에페소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시 뒤풀이가 열린 피자 집에서는 피자집 딸이 김일해씨를 너무 맘에 들어 한국가지말고 여기서 같이 살자고 피자집 사장이 귀국을 막고 프랑스에 살자고 허락 할 정도로 그는 언제, 어디를 가든 화려한 인기와 주목을 받아왔다. 그림이면 그림 , 노래면 노래 , 음담패설이면 또 음담패설 그는 이것 중에 어느 부분도 타인에 추종을 불허한다. 옷도 세련되게 잘 입지만 인물 또한 출중하고 대단한 멋쟁이 이다. 

나와는 20여년 이상의 친분을 가진 형뻘인 그는 지난해에는 기막히게도 나와 사제지간의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내가 홍대 대학원에 강의를 하는데 그가 주변의 성화에 못 이겨 늦깎이 서양화과에 늙은 학생으로 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미나 발표순서가 되어 우리는 그의 작업실로 갔다. 그의 아틀리에는 경기도 광주 오포라는 곳, 수미산 꼭대기였다. 그의 발표차례가 되었다. 그는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자기는 발표할 것이 신곡뿐이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신곡 발표는 작업실 지하 노래방이 설치된 곳에서 20여명의 학생들 앞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신곡발표는 남진의 '모르리' 이었다. '그대 곁에 있으면 허물어지는 마음 그대는 모르리 모르리' 로 시작되는 그의 허스키한 음색 앞에 '너를 사랑하고도 너를 보내야하는 찢어지는 가슴을 달래며....나나나나나~'그의 노래는 단연 압권이었다. 그는 말했다. 어쩌면 자기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면 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인가 그에게는 그런 노래와의 인연도 깊다. 
지난 가을 일간신문에는 ‘담백하라’의 미스터 김(Mr.Kim) 1집 음반이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음반 재킷을 비롯, 속지를 그의 그림들로 꾸며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미술 매니아들이 앞다투어 사재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어느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가 소장중인 김일해의 꽃 시리즈 12점이 실려 있었다. 그는 이미 지난 2000년 하루 1개씩 모두 365가지 탄생화를 정하고 이를 그림으로 완성해 성곡미술관에서 전시를 하여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등지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그는 이것을 “대중 음악과 미술이 접목된 신선한 시도라고 느껴졌다. 순수 미술 팬들의 저변 확대를 위해 아무 조건 없이 그림들을 내줬다”고 했다. 
아무 조건 없이 주었다고 하지만 실지 미스터 김인 김태욱씨는 그의 조카이며 부인 채시라는 조선시대 초상화가 석지 채용신(1850∼1941)의 5대손이다. 
김일해는 이처럼 노는 물 자체가 아주 화류계에 닿아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국내 유명 연예인들과 친분이 두텁기로 소문이 나 있다. 가수 바다가 그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는 애제자이기도 했고, 가수 최백호도 그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심지어 최백호와는 그의 노래인'낭만에 대하여'와 '애비'등은 실제 노래방에서 부르면 최백호보다 점수가 훨씬 더 잘 나오는 실력을 가질 정도로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탁월한 인간관계 때문에 그는 가끔 여류화가들의 파트너로도 인기가 높다. 오래 전 어느 파티에서 지금은 병환으로 미국에 체류중인 천경자 화백의 연인으로 대신 술을 마셔주고 신청곡을 불러주는 귀염둥이 꽃미남이기도 했다. 그때 천경자씨가 그에게 신청한 곡이 바로 조용필의 미워미워 미워 였다. 지금은 돌아가신 변종하 화백에게 있어 김일해는 끔찍이 아낀 수제자 중의 한사람이다. 모두가 그가 그림을 잘 그리기 때문이다. 


연세가 든 할머니에게도 이 정도 인기가 많은 그가 젊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어떠했는가를 물어보는 것은 적어도 그에게는 결례에 해당된다. 그와 여인과의 스캔들에 대해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지면이 필요하지만 나는 그에게 단 하나의 부탁을 받았다. 여자이야기만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는 특별한 부탁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궁금하겠지만 여자 이야기를 할 수 가 없다. 
어쨌든 그는 최근 여인들을 많이 그린다. 특히 그 여인들은 모두가 벌거벗은 누드이다. 그는 1주일에 두 번씩 역삼동의 화실에서 그의 문하생들과 함께 누드 드로잉을 한다. 수십 년 동안 그려온 누드이기에 그에게 누드는 하나의 정물처럼 담담하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 벗은 모델은 이처럼 하나의 아름다운 대상을 창조 해 내는 절대적인 대상에 불과하다. 
그는 어떤 모델을 좋아하는가? 그는 아주 분위기 있는 여자 모델을 좋아한다. 분위기 있는 여자야말로 풍만하고 안정감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떠한 모델도 충분히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 낼 수 있다고 했다. 살이 찐 모델이라면 가슴을 깎아 낼 수도 있고 엉덩이를 살을 찌울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단색 톤으로 마무리짓는 누드 작업에 올인 하고 있다. 이제 수백점의 꽃 그림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고 싶고, 화려한 색감에 질렸으며 모노톤으로 새로운 누드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물론 그 누드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에드와르 비야르처럼, 아니면 권옥연이나 변종하처럼 혹은 이태리의 도미니크 모렐리 같은 작가가 되길 꿈꾼다. 그들은 한결같이 감성적이고 우리들 감성을 촉촉이 적셔주는 그런 이미지의 그림들이다.


그는 여행을 즐겨한다. 그의 풍경은 파리이기도 하고 런던, 그리고 이태리의 베니스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국제적이다. 어떤 풍경은 가을 낙엽이 떨어진 숲길을 걷는 사람, 세느강변의 다리에 기대고 있는 사람, 베니스의 운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 모두 그는 작가가 발 밟으며 만난 풍경들로 만들어 낸 인물이기도 하다. 
김일해의 풍경은 어디서 보아도 쉽게 알아볼 정도로 독특한 붓터치와 색깔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상파 풍도 아니면서 사실도 아니고 인상파와 표현주의를 합친 듯 그의 그림은 환상적 분위기로 사람들 마음을 붙든다. 

그에게 붙잡힌 풍경은 모두가 한편의 시처럼 단아하고 간결하면서 매력적인 풍경으로 다시 태어난다. 세느강을 뒤로하여 노트르담 사원을 배경으로 한〈콰지모도를 기다리며〉와< 밀애〉,〈수련의 꿈〉,〈머물고 싶은 가을〉등 제목에서 이미 그의 그림 속에는 계절과 그것을 그린 화가의 감정이 스며들어 있다. 
최근 들어 부쩍 그는 색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제 색채의 마술사라고 부르는 샤갈만큼이나 색을 골라서 적절하게 풀어쓰는 그가 이제 색을 아끼고 절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밤을 새워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내가 본 실상을 파괴하기에 애씁니다. 그 실체가 파괴돼야 화면에서의 재구성이 가능합니다. 본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도 심고 길도 내어 화면에 맞는 구도를 찾고 물체고유의 색이 아닌‘느낌’의 색을 찾아 어울리는 화면을 만듭니다. 그러다 보면 함축적인 터치가 나오게 되고 단순화되지요.” 이렇게 그의 그림이 매력적으로 태어나는 것은 그만의 감성으로 속도감 있는 필치와 감칠맛 나는 붓터치로 사람들의 마음을 곳곳에서 붙잡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의 그림을 수십 점씩 소장 할 정도로 그의 매력에 빠진다. 그렇다면 그의 개성은 무엇일까 ? 그는 그의 개성을 색에서 찾으려 한다. 그의 작업이 구상이기 때문에 형체에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색채에서의 개성은 화면에 어울리는 전체적 하모니가 될 수 있는 색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될 수 있는 한 사물의 고유색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아직 그는 그러한 경지의 문턱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가 곧 김일해 표 고유의 색채와 그만의 화면을 만들어낼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들의 기대를 그가 져버리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김일해, 그는 여자들에게만 인기 있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불경기라는 화랑가 구상계열에서 단연 아직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구상계열의 블루칩이다. 그는 오는 2월초 일본의 오사카 아트페어에 출품을 계기로 일본으로 출국한다. 그리고 또 다시 3월초 뉴욕의 아트페어에 출품하고 ,5월에는 북경 아트페어에 그리고 중순에는 LA의 아트페어에 참석하는 등 한 해의 모든 스케줄이 잡혀있다. 

그렇다고 그를 우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스케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고 그 전시 스케줄에 끌려가기 때문이다. 화가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충전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그가 고백하고 있듯이 2005년에 맞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을 나는 존중한다. 그리하여 나는 그가 우리 구상화단의 깃발을 들고 가는 작가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다. 
그를 생각하면 또 다시 그의 장미꽃 넝쿨이 흐드러진 꽃 그림을 거실에 걸어 놓고 싶어진다. 누드도 좋고 ,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의 그림도, 베니스의 풍경도 만약 미워 미워 미워도 좋고 ,모르리란 노래가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 

- for you 2005년 1월호 : 국민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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