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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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1    업데이트: 13-12-13 12:46

작가노트

2013-02-19 - [문화산책] 예술가의 이른 죽음
김병호 | 조회 1,021

[문화산책] 예술가의 이른 죽음

 

좁은 길이 내 기억 속에서 흘러간다. 소풍이나 운동회보다 더 큰 기억으로 자리하는 내 유년의 일상들. 그것은 그저 방과 후의 교정이나 문구점 혹은 만화방을 스쳐 지나가는 보통의 인연이나 풍경 속에서 더 아련하게 피어오른다.

사춘기 시절 누구나처럼 싱그러운 추억도 많았고 아름다운 풋사랑의 기억도 간직하고 있다. 나의 지난 시절 추억은 다른 보통의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소박하고 평범하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내게 스민 추억 중 애절하고 서러운 것이 있다면 내가 사랑했던 예술가의 이른 죽음에 관한 기억들이다.

서양의 화가 고흐와 모딜리아니의 죽음이 그러한 것처럼 이십 대의 새순 같은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시인 이상과 윤동주의 죽음은 서럽기까지 하다. ‘시가 쉽게 씌어지는’ 것을 부끄러워한 슬픈 천명의 시인이어서 그랬을까?

가족을 그리워하다 홀로 요절한 천재화가 이중섭과 선각적 목판화로 역사에 자리한 화가 오윤도 마흔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역시 같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시도 애잔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이른 예술가들의 처연한 이별들이 끝내 미색으로 꽃피는 것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 권력의 잣대에 굴하여 자신의 예술혼을 포기하지 않으며, 끝끝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양심들이었기 때문이다.

부정한 시대에 맞서면서도 성찰하는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며, 실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꿈을 꾼다. 동네 골목길 어귀 오래된 막걸리집에 내 나이쯤의 윤동주가 그 선한 눈빛으로 시집을 들고 들어오고, 구석진 자리에서 은지화에 소와 아이들을 그리는 이중섭과 오랜 이국의 여행에서 돌아온 나혜석이 숱한 에피소드로 시끌벅적한 목로주점. 나는 그런 밤과 장소를 소망한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의 끝 구절이 오늘도 이렇게 가슴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김병호 <화가>

 

-2013-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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