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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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2013-01-22 [문화산책] 조연들의 이야기
김병호 | 조회 914

[문화산책] 조연들의 이야기

 

최근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조연의 역할이다. 영화에서 조연은 주인공을 받쳐 주는 작은 역할에 지나지 않지만, 때론 색다른 재미를 주면서 주연의 그늘에서 그들만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완득이’에서 두 주연배우를 받쳐 주는 조연들의 삶이 그랬다. 또 최근 개봉된 ‘반창꼬’에서도 주연배우들의 사랑 이야기가 아름답게 빛났던 것은 조연들의 눈물겨운 열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흔히 조연의 인생으로 마감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힌다. 누군가에게 주목받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를 맺어가는 인간사에서 모두 주연이 될 수는 없다. 타인의 시선 안에서 주인공이 되는 가치를 폄훼하고 싶지는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만의 인생을 걸어가는 삶 또한 가치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큰 기업의 대표나 유명 단체장보다 더 아름다운 삶의 실천은 대개 그 아래 숨어 빛나는 보석 같은 조연들의 몫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아이들과 함께 꿈을 이루었던 고(故) 이태석 신부가 그랬고, 역시 고인이 되었지만 고아로 자라 자장면 배달을 하며 자신의 처지보다 더 어려운 이들에게 끊임없이 기부했던 김우수씨의 이야기가 그랬다. 조연들의 삶이 모여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창작의 정열을 멈추지 않는 대다수 가난한 예술가들이 그러하고, 비정규직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럴 것이다.

멋진 인생을 살았던 김우수씨가 배달 도중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뒤 우리는 그를 기리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가 기사화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이 또한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조연이 단순한 조연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의 삶 깊은 내면을 함께 공유하고 소통해야 한다.

김우수씨가 운명한 뒤 그의 휴대전화에는 저장된 번호가 단 하나도 없었으며, 받은 문자메시지조차 한 통도 담겨 있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의 삶 속에서 조연으로 살아가는 나의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더 낮은 곳의 조연들이 더 이상 소외되지 않으며, 함께 나누고 소통하였으면 하는 것이다.

김병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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