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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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1    업데이트: 13-12-13 12:46

작가노트

2013-01-01 [문화산책]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하며
김병호 | 조회 1,030

[문화산책]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하며

 

“테오에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 바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내버려다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 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너는 언제나 나를 먹여 살리느라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마.”

천재화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냈던 편지글이다. 38세의 짧은 나이로 마감된 그의 인생은 바람과도 같은 운명의 연속이었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바람 같은 그의 인생은 왜 그다지도 아픔과 실패했던 사랑만이 존재했을까? 그리고 가난했던 삶은 착한 그의 영혼에 큰 짐이 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다.

사람의 삶은 운명과도 같은 길을 맞이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운명은 간혹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목회자가 되고 싶어했던 고흐가 붓을 들게 된 것도 하나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낮은 곳에서 헌신적인 삶을 살던 한 젊은이가 세상의 뒤안길에서 죽음 직전까지 끝끝내 그림 속에 파묻혀 있었던 것은 단순히 스스로의 의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선택의 여지 없이 나에게 스며드는 것, 이것이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다.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는 이 작은 화두가 어쨌든 한 삶의 대다수를 좌우한다는 사실 앞에서 필자는 이것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슬프고 가슴 아픈, 때로는 말로 형언키 힘든, 그러나 필연이 되는 이 상황이 어떻게 우연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삶은 이렇게 논리로 풀기 힘든 오묘한 진행과 충동이 있다. 우리는 그런 운명이 때로는 죽음과도 같이 고독하고 슬픈 일임을 알면서도 어김없이 받아들이고,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고흐가 살아왔듯이 말이다.

만약 이 순간 우리가 누군가에 의해,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절망하거나 회피할 이유가 없다. 운명이라는 것은 단순히 체념의 의미만은 아니다. 지독하게도 운 나쁜 삶이 이어질지라도 우리는 때로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언어와 삶의 방식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고흐는 삶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때로는 자신만의 언어로 승화하여 투사처럼 싸우는 혼신의 노력을 거듭했기에 오늘 그의 숨결이 담긴 위대한 작품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이다.

김병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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