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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전시감상문

대구미술관에 다녀와서-10510 서문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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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 남춘모 - 풍경이 된 선, <수직충동, 수평충동>
전시기간 :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 2018.1.16 - 5.13
남춘모-풍경이 된 선 2018.1.23 - 5.7
수직충동, 수평충동 2018.1.19 - 4.29
장소 : 대구미술관
출품자 : 강국진, 하종현, 이건용 외 19명 / 남춘모 / 토니크랙, 이수경, 강운 외 20명
작성자 : 10510 서문여경
감상일자 : 2018.3.11

나는 사실 처음에 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한 뒤 감상문을 써 수행평가로 제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막막한 기분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미술 작품에 관한 인식이 있을 때 미술관을 가본 것은 딱 두 번, 그것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의 수학여행 코스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술관을 가본 것은 그러니까, 작년도 아니고 재작년이 되었던 것이다. 미술 작품은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감상이든 무엇이든 쓸 수 있을 텐데, 솔직히 이런 식의 수행평가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 미술관에 간다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집 앞에서 100-1 버스를 타면 곧바로 대공원역에 도착하여, 11시 셔틀버스를 타고 대구미술관에 도착했다. 웨딩홀 표지판에서 좀 떨어져 있는 흰 계단을 올라가면 조금은 높은 곳에 대구미술관의 깔끔한 건물이 보였다. 커다랗게 전시명을 단 포스터들이 붙어 있는 미술관에 들어설 때는 감탄사에 묻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의 기억이 '와~' 하는 것밖에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자동문 너머로 들어가면 한순간 조용해진 공기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조심스레 살금거렸다. 깔끔한 복장의 직원분들이 티켓을 건네주시면 곧바로 입구 근처에 있는 팜플렛을 모두 집어 당장 1층의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 전시에 관한 것부터 살펴보았는데, 사진에서부터 느껴지는 파격적 이미지가 굉장히 강한 인상을 줘 기대감을 안았다. 그리고 들어선 전시장에는 내 기대감을 훨씬 넘어서는 작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봤던 작품들 중에 굉장히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신영성 작가의 <코리안 드림>이라는 작품인데, 한 벽에 백여 대의 드릴 같이 생긴 무언가가 달려 있어서 처음에 이 작품의 제목을 <코리안 드릴>이라고 읽은 기억이 난다. 곁에 있던 어머니께서 정정해 주셨다. 자세히 보니 몇몇 개는 좌우로 도리도리 돌아가는 것이 드릴이 아니라 날개 빠진 선풍기였다. 나는 코리안 드림이라는 이 작품의 제목과 이것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딱 봐도 낡고 오래된 선풍기들, 이것이 이 작품이 만들어진 1986년의 꿈일까? 아니면 이 선풍기 뼈들이 의미하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안쪽의 전시관에서 본 작품, 내가 이것을 볼 때는 가슴속에 큰 충격이 자리잡아 이 작품의 제목을 볼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덕분에 작품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이 줬던 강렬한 인상은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이 감상평을 쓰는 시점에도 내 손발을 저릿거리게 만든다. 흙에 링거를 꽂은 작품.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이라는 작품이 흘러나오는 바로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던 이 작품은 내게 이유 모를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흙에 꽂혀있던 링거에 반쯤 담긴 피 때문이었을까? 피가 흘러나와 젖은 듯 검붉은,
 링거와 땅과의 연결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도 1970년대에 창작된 것 같은데, 하물며 지금의 나도 이렇게 충격받는 것을 그때의 사람들은 얼마나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을까? 까무러치는 사람들은 없었을까, 아니면 입을 벌리고 굳어있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이라는 전시에서는 강렬하고 파격적인 인상을 주는 그런 작품들이 많았고, 전시명 값을 톡톡히 하며 반항적인 이미지를 관람자의 눈과 머리에 새기고 있었다. 처음 전시를 이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보고 나니 2층의 다른 전시도 기대가 되어 계단을 꽤 서둘러 올라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2층에는 <수직충동, 수평충동>이라는 전시와 함께 남춘모 작가의 <풍경이 된 선>이라는 전시가 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앞의 전시와는 다르게 이 두 전시는 놀란 내 가슴을 진정시키고 가라앉히는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수직충동, 수평충동>에서는 다양한 이름과 국적의 작가들이 세우고 눕힌 선들이 작품을 통해 드러났다. <수직충동>쪽에서 단연 기억에 남았던 것은 잉카 쇼니바레 작가의 <Cake Kid> 였다. 고층 케이크를, 허리를 90도로 숙인 웨이터가 떠받드는 형상의 이 작품은 내 시선을 자연스레 화려한 케이크로 먼저 끌었고, 케이크 꼭대기에서부터 차차 시선을 내리고 나서야 힘들게 그것을 받친 웨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팜플렛을 보았을 때 그것이 창작자의 의도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가 우리의 감각에 보내는 말초적 자극신호를 이용해 우리가 화려한 케이크들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졌던 것이다! 나는 내가 욕심이 그다지 없다 생각했는데 그것만이 자본주의의 전부만은 아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세상 속에서 그러한 태도가 자연스레 몸에 배어버린 것인지 꽤나 생각이 복잡했다. 나는 화려한 케이크에 묻힌 웨이터 같은 사람들을 지금까지 그저 열쇠고리 같은 장식품처럼 가벼이 생각하고 지나가지 않았는가?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박찬민 작가의 <BL21436519812725>였다. 깔끔하고 정갈히 정렬된 수직 아파트, 그리고 수평으로 정돈된 아파트 아래 도색과 강변.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굉장히 만족감을 주면서도, 딱딱한 아파트와 대조되는 수평의 강변을 보고 미묘한 무언가를 같이 느끼게 하였다. 나중에 이 작가의 작품을 더 찾아보았는데, 딱딱한 건물들을 통해 현대 사회의 차가움을 담아낸 작품들이 보여 이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다.

남춘모 작가의 전시는 사실 이해하고 생각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아직 미술 쪽의 안목이 부족하고, 앞의 강렬한 작품들에서도 의미 도출이 굉장히 힘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은 딱 하나였다.

바로 안쪽에서 흘러나오던 동영상에 등장한 이 작품. 온통 선이 가득했던 타 작품들과 달리 캔과 붓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남춘모 작가가 지금까지 했던 노력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던 듯했다. 대형 입체 작품이 많았던 이 전시는 남춘모 작가가 일일히 천이나 캔버스 따위를 조형하고 그리고 칠하여, 마치 유년시절 그가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밭고랑을 가는 노동을 하던 그 마음가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페인트가 들어있던 것 같은 캔 더미와 그 위에 어지럽게 쌓인 브러시들은 그 마음이 겹겹이 쌓여 이 전시를 열기까지의 그 노력을 표현한 것 같았다. 이러한 하나의 전시를 열기까지 걸린 시간 1년, 그동안 얼마나 정성과 노력과 열정을 다해 작품 세계를 펼쳤을지. 를 말이다.

이렇게 전시들을 다 감상하고 나면 벌써 시간은 1시가 다 되어 다음 셔틀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처음의 막막함은 어느샌가 저 너머로 걷혀있었고, 서서히 쌓여간 고양감과 새로움의 감탄사만이 전시의 여운을 남겨 아쉬움을 느끼게 하였다. 아마 이번 전시를 통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미술관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덜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도 시간이 날 때 새로운 전시를 보러, 또는 한 전시를 여러 번 곱씹으러 미술관에 갈 의지를 가지게 된 것 같다. 지금 이 글의 마침표를 찍으며, 수행평가를 통해 내 의식을 성장하게 해주신 미술 선생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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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18/06/1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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