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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전시감상문

대구 미술관에 다녀와서 10115 손세미
| 조회 339
전시명 : 「수직충동, 수평충동」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 「남춘모 : 풍경이 된 선」
전시기간 : 수직충동, 수평충동 2018.01.09.~ 2018.04.29.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 2018.01.16.~ 2018.05.13.
남춘모 - 풍경이 된 선 2018.01.23.~ 2018.05.17.
장소 : 대구미술관

출품자 : 강운 외 24명, 강국진 외 21명, 남춘모

작성자 : 10115 손세미
방문일자 : 2018년 3월 10일

  보통 ‘미술관’이라 하면 미술사를 줄줄 꿰고 있는 사람들이 옷을 빼 입고 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시간을 내서 미술관에 거의 가지 않는다. 그런데 중학교 때는 간단한 시험지로 대체했던 ‘감상’ 수행평가를 고등학교에서는 본래의 취지대로 시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미술관에 가서 작품들을 감상한 뒤 감상문을 쓰는 것이다.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미술관에 가 보겠느냐’ 하는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미술관으로 향했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 덕분에 기분이 들뜨고 벽을 따라 걸려 있는 아름다운 그림들을 볼 생각에 내 마음은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막상 입장권을 사서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내 생각과는 너무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흔히 떠올리는 아름다운 유화 작품이 걸려 있는 길다란 벽은 없었다. 대신 넓은 공간에 거대한 조형물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주변에는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 붙어 있었다. 3시에 곧 있을 퍼포먼스를 보려고 잠시 1층의 전시품들을 둘러보았지만 작가들이 도대체 무엇을 전달하려고 저 작품들을 구상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퍼포먼스가 시작된다는 방송을 듣게 되어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어미홀로 나갔다. 첫 번째 순서는 홍오봉 작가의 ‘새와 나’였다. 바닥에는 넓은 비닐이 깔려 있었다.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오늘은 ‘대구새’를 날려보겠다고 하고 자신을 도와줄 지원자를 구했다. 나도 해보고 싶었지만 작가는 다른 사람을 선택했다. 지원자가 비닐의 가운데에 눕자 작가는 지원자의 몸 둘레에 스프레이로 새 모양을 크게 그렸다. 마치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작품 제작 과정을 보는 듯 했다. 스프레이를 다 뿌리고 나서는 쇼핑백에 가득 든 작은 정사각형 모양의 흰 종이들을 공중으로 계속계속 뿌렸다. 종이를 다 뿌리고 나니 하얀새가 되었다. 그리고 난 다음 다른 쇼핑백에서 알록달록한 색종이들을 공중으로 흩뿌렸다. 새에게 따뜻한 심장을 준다고  알록달록한 색을 날리니까 엄청 아름다웠다. 종이를 다 뿌리고 나니까 힘든지 작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숨을 골랐다. 짧은 휴식 후 다시 일어선 작가가 외쳤다. “자! 이제 대구새를 날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지원자까지 날려버릴 줄 알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마지막 작업 전에 지원자가 비닐 위에서 내려왔다. 그 후 관객들이 비닐을 잡아서 들어올리고 온 힘을 다해 흔들었다. 색종이가 모두 날아가고 난 뒤에 공연이 끝났다. 항상 미술에서 관람객의 역할은 감상인데 작품의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거기에 내가 참여해 보니까 느낌이 새로웠다.
  두 번째 순서는 김석환 작가의 ‘십자가에 못박힌 한반도’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첼로로 연주하는 배경음악이 어미홀 전체에 흐르고 작가는 십자가를 들고 나왔다. 십자가 모양의 틀의 구멍을 비닐로 메운 형태였다. 작가는 하얀 스프레이로 비닐에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기를 마친 후 작가는 팔 두 개를 비닐을 뚫고 통과시켜서 십자가에 못 박힌 형태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십자가를 끌고 관객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따라 불렀다. 조금 있다가 작가는 얼굴로 스프레이가 칠해져 있는 비닐을 뚫기 시작했다. 마침내 얼굴이 비닐을 뚫고 나왔을 때 얼굴은 스프레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얼굴은 분단이 된 우리나라의 아픔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비닐을 뚫어낸 것은 통일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순서는 문유미 작가의 ‘매거진 액션’이었다. 작가는 살색 전신 타이즈를 입고 온몸에 잡지에서 오려낸 듯한 명품 사진들을 붙이고 커다란 쇼핑백을 여러 개 든 채 입장했다. 작가는 관객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몸에 붙은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떼어 가라고 했다. 나는 팔에 붙어있던 시계 하나를 떼어왔다. 몸에 붙은 것이 거의 사라졌을 때 작가는 들고왔던 쇼핑백에서 잡지를 꺼내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쇼핑백에 들어가서 셀카봉으로 셀카를 찍는 흉내도 냈다. 조금 있다가는 인간의 허물을 자기 발과 연결시키고는 잡지들이 흩어져 있는 바닥을 마구 굴러다니며 잡지들을 움켜쥐기 시작했다. 외형적인 것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기 자신은 허물로만 남고 욕망에 질질 끌려다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예쁜 옷, 멋진 화장품, 비싼 차와 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옛날에 대해 조금 반성했다. 앞으로는 외형적인 것보다는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렇게 화려한 퍼포먼스들이 끝나고 나니 1층 전시물들의 해설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아까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던 작품들이 도슨트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까 그 의미들이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전시장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눈에 띄었던 것은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를 그 주변의 땅과 함께 들어낸 작품이었다. 미술관은 사람이 만든 건물에 사람이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인위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연물이 있으니 생소하면서도 새로웠다. 그 작품은 이건용 작가의 <신체항>이라는 작품으로, 시간의 축적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뿌리의 주름이나 쌓여 있는 지층 등을 통해 시간의 압축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신체항> 옆에는 길다랗고 하얀 종이를 주렁주렁 매단 나뭇가지가 낚시줄을 통해 공중에 떠 있었다. <종이나무>라는 이 작품은 성황당이 모티프가 되어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의 작가인 이승택은 우리나라 최초로 공기의 흐름이나 소리 등 빗물질성을 조각의 구성 요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보통 ‘조각’하면 ‘움직이지 않고 딱딱한 것’을 떠올리는데 이 작가는 <종이나무>처럼 바람이 불면 흔들리기도 하고 종이가 서로 스치면서 내는 ‘사각사각’ 소리까지 모두 조각의 구성 요소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무 밑에는 동글동글한 돌멩이가 놓여 있었는데 이는 ‘고드레돌’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고드레돌은 자리를 짜는 돗틀에 메달아 자리를 짜는데 필요한 도구이다. 이 작가는 물성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보통 ‘돌’하면 울퉁불퉁하고 뾰족한 모양을 떠올리는데 이 작가는 둥글둥글하게 표현해 놓았다. <종이나무> 뒤에는 같은 작가의 작품 활동이 사진으로 찍혀 있었다. <바람-민속놀이>라는 이 작품은 바닷가에서 넓고 긴 붉은 천을 리듬체조를 하는 것처럼 공중에 흩날리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는 풍어제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이처럼 이승택 작가의 작품은 한국적인 요소를 많이 적용시켰다. 작가가 활동하던 1970년대의 한국 미술계는 서구화되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지만 작가는 ‘가장 세계적인 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모두가 ‘NO!’라고 말할 때, ‘YES’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본받아야겠다.
  다음은 1전시실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강변의 사진이었다. 김구림 작가의 <현상에서 흔적으로>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한양대학교 주변에 있는 강둑에 삼각형을 그리고 그 모양대로 태웠다. 이는 생성과 소멸의 관계를 표현 한 것으로 그림은 종이나 캔버스에 그려야한다는 편견을 깼다. 작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지미술가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성능경 작가의 <신문>이라는 작품이었다. 커다랗고 하얀 네모모양 판 4개가 벽에 걸려 있고 각각 정중앙의 윗부분에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4개의 신문사 이름이 신문에서 오려내어져 붙여져 있었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바로 1970년대 중반에 일어난 동아일보탄압사건이다. 유신체제 시절 다른 신문사들과 달리 동아일보는 독재정권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유신 체제는 기업들이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지 못하게 했고 결국 동아일보는 두 손을 들었다. 이 때문에 작가는 신문에서 사실인 것은 신문사 이름밖에 없다는 뜻으로 제목만 잘라붙여 놓은 것이다. 성능경 작가는 ‘예술은 감동수단이 아니라 소통수단이다’라며, ‘언제나 진실만을 추구하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아름다운 그림만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사회의 비판과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것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반대편 벽에는 길다랗고 검은빛으로 번쩍거리며 군데군데 찢어져 있는 종이가 전시되어 있었다. 최병소 작가의 <무제>였다. ‘이건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신문 용지 위를 연필로 가득 칠하고, 그 위를 모나미 볼펜으로 다시 칠했다고 한다. 흑연과 잉크가 합쳐져서 새로운 물성이 표현되는 작품이었다. 신문 용지를 연필과 볼펜 등으로 도를 닦는 것처럼 열심히 지웠던 최병소 작가는 인터뷰 중 ‘지금은 무엇을 지우고 계시냐’는 물음에 ‘지금은 나 자신을 지워 본연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로 답했다고 한다. 예술 작품이 창작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즐거움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전시실 중간에는 서울대회화과를 나온 이강소 작가의 <치킨페인팅>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그는 닭을 줄에 매어놓고 그 발에 매직펜을 달아서 닭이 이동할 때 검은색 선이 그려지게 하였다. 바닥에 뿌려져 있는 흰 가루 때문에 바닥에 닭의 발자국이 남는 효과도 생겼다. 이 작품은 예술 작품의 주체는 예술가라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통념을 깨뜨렸다.
  유럽인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 닿은 콜럼버스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콜럼버스는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들 앞에서 달걀을 책상에 똑바로 세워 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동글동글한 달걀을 책상에 세울 수 없었다. 그러자 그는 달걀의 밑면을 깨서 탁자 위에 세웠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건 자신들도 할 수 있다며 항의했다. 아방가르드 작품들을 보는 우리 시선이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 전시실에 있는 작품들을 보면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에이, 누가 저런 걸 못 해! 내가 지금 해도 저것보다는 멋지게 만들 수 있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는 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할 생각을 해 보지 못했고, 그들은 이미 시도했다는 것이다.
  아방가르드 전시실에서 나오자 벽걸이 선풍기들 100여 대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코리안 드림>이라는 작품이었다. 선풍기는 더울 때 모터와 날개가 돌면서 삶의 질을 높여주는 데 사용되낟. 그런데 삶의 질을 높이려 아등바등거린 결과 전시된 선풍기들은 날개도 없어지고 모터도 타 버렸다. 두어 대만 날개 없는 몸체를 이리저리 돌리며 웅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 사회를 나타내는 작품이다. 사람들은 좋은 직장을 가지려고, 돈을 많이 벌려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살려고 경쟁하고, 경쟁하고, 또 경쟁하다보니 꿈도 여유도 모두 잃어버리고 결국 지쳐 나가 떨어져 버린다. 이런 생각을 하니 우웅-웅- 하는 모터 소리가 울부짖는 사람들의 소리처럼 들려 마음이 아팠다.
  아방가르드 전시관 옆에서는 ‘아카이브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는 문서와 서류를 전시한 것으로 1967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행해진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행위미술의 내용을 기록으로 전시해놓은 것이었다. 그 중 우리나라 첫 번째 행위미술인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이 기억에 남는다. 홍익대학교 학생들이 비닐우산에 초를 얹고 노래를 부른 다음 그것을 부숴버렸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도슨트 선생님의 설명을 듣기 위해 귀를 쫑긋 기울였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답에 맥이 빠졌다. “학생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사실 저희도 무슨 의미인지 잘 몰라요.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서 해 봤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니 저 작품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다. “아기가 처음 일어설 때 왜 일어났는지, 일어나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일어났을까요? 물론 아닐 겁니다. 우리는 그저 일어섰다는 것에 박수를 쳐 주는 것 뿐이에요. 이 학생들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행위를 했지만 그것을 시작했다는 것에 박수를 쳐 주고 싶습니다.”
  1층에서 봐 왔던 작품들이 다소 황당하긴 했지만 이런 ‘이단아들, 도전자들, 반항아들’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아직도 캔버스 위의 그림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정부의 탄압, 미술계의 멸시 등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발전해 온 미술이다. 잘 이해는 되지 않더라고 넓은 눈,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을을 가져야겠다.
  1층에서 느꼈던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총 두 개의 전시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 중 먼저 본 전시는 ‘남춘모-풍경이 된 선’이었다. 남춘모 작가는 시골에서 자란 것 때문인지 사람과 사물을 관망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빛과 선을 입체로 표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했다. 작가는 건축물의 기본 골조인 ‘H빔’의 형태를 발견하고, 이 형태를 ‘ㄷ’자로 간소화시켰다. 남춘모 작가는 물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가졌다. 동양화에서 모티프를 받아왔지만 현대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광목천을 일정한 폭으로 잘라서 폴리코트라는 합성 수지를 붓으로 바른 후에 굳히고 뜯어내어 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작가의 작품들은 보는 각도나 시간마다 받을 수 있는 느낌이 달라서 재밌다는데 박물관 폐장 시간이 가까워져서 오랫동안 구경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보통 예술가는 갑자기 영감이 딱 떠오르면 그린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가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다. 전시장 한 편에 붓 더미가 쌓여 있었다. 알고보니 17년 동안 그가 쓰고 버려서 쌓인 것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었다고 한다. 작가의 땀과 눈물이 담긴 것이어서 그런지 붓 더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였다. 남춘모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황무지 같은 허허벌판을 개간하고 돌과 뿌리를 캐내고 하는 농부의 심정이 화가와 같습니다. 화가는 평생 무언가를 모색하면서 살아야지 지금 내 것을 찾았다고 확신하고 자기 계발을 접으면 안 됩니다.” 이미 화가로서의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도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남춘모 작가의 태도가 존경스러웠다.
  마지막 전시는 ‘수직충동수평충동’이었다. 제목에 걸맞게 수직은 세로로 쓰여 있고 수평은 가로로 쓰여 있어서 귀여웠다. 전시실 입구에는 'Point of View'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가늘고 높게 쌓여 있어서 수직적인 느낌은 들지만 가로로 무늬가 들어가 있어서 수평적인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수직과 수평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수직충동수평충동 전시실 앞에 세워져 있는 것 같다. 수직 전시관에 먼저 들어가봤는데 첫 번째 작품은 최정화 작가의 <연금술>이었다. 따뜻한 계열의 색의 기둥 안에서 빛이 새어나와 화려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재료들이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플라스틱 바구니, 바가지, 물컵 등이었다. 자주 쓰는 물건들이 보이니 친근함이 느껴졌다.
  두 번째 작품은 잉카 쇼니바레의 'Cake Kid'였다. 넘어질 듯 말 듯 비틀거리는 아이가 등에 스무 개 정도의 케이크를 지고 있다. 꼭대기의 케이크는 떨어지려고 하고 있어서 더욱 위태위태한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굉장히 예쁜 색감을 가지고 있어서 명랑한 작품 같은데 작품에 숨은 내용들을 알아보니 슬펐다. 이 사람의 피부가 까만 것은 사회가 많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인종 차별을, 주가등가 그래프로 이루어진 머리는 물질만능주의를 아프리카 문양이 그려진 옷은 식민지 착취를 비난하는 것이라고 한다.
  위태위태한 느낌만 받다가 수평 전시관으로 들어오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눕고 싶다는 충동도 들었다. 그 중 리처드 롱 작가의 <Han River Circle>이라는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작가는 옛날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강변을 거닐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 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강변 개울가 돌무더기를 연상시킬 수 있는 강동을 소재로 지름이 5.6m에 달하는 거대한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영감을 얻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처음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내가 저 작품들을 과연 하나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가득했었는데 이번 미술관 관람을 통해 정말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생각하지만 그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외면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꿔야 한다는 것. 세상의 억압이 있어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맞는 건 맞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 뚜렷한 목적이나 계획이 없더라도 하고 싶은 건 한 번 도전해 보는 것.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마냥 놀고 있지만 않다는 것. 끊임없이 노력해야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미술관에서 배운 이 가치있는 깨달음들을 항상 마음에 새기면서 살 수 있도록 해야겠다.

         ▲ 대구미술관 입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한반도’ 김석환 작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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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18/06/1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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