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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김강록의 회화 - 색으로 풀어낸 율려(律呂) / 미술학 박사 서영옥
아트코리아 | 조회 275
김강록의 회화 - 색으로 풀어낸 율려(律呂)

 

“화가의 시간은 자주 거꾸로 간다. 삶은 끊임없는 기다림이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기대감과 설렘에 대하여, 희망과 꿈에 대하여, 장엄한 우주로 열린 따스한 생명의 흐름, 그 영혼과 신성에 대하여, 또 다시 생각을 한다. 내 작업은 늘 그리움이다.” (김강록의 작업노트)

 

작가 김강록의 작품세계를 집약해 놓은 글이다. 작가의 작업은 작가가 가장 잘 안다. 그의 작업일기를 글머리에 배치한 이유이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고 창작 예술은 가능한 세계의 기록이다.”고 한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김강록의 회화는 신화적 환기로부터 상상력을 동원해 가능한 세계를 동경하게 만든다. 붓으로 우주의 원형을 기록하는 작가 김강록은 오랜 세월 ‘율려(律呂)’에 천착해왔다.

 

율려는 십이율(十二律)의 양률(陽律)인 육률(六律)과 음려(陰呂)인 육려(六呂)를 통틀어 일컫는다. 고대 신화와 신화학에서도 사용되는 율려는 장대한 우주로 열린 조화로운 생명태동의 기운이다. 음악 용어이기도 한 율려는 음양이 조화로운 태초의 소리이자 자연법칙의 소리이다. 우주천체가 운행되면서 생겨나는 엄청나게 큰 소리에서부터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를 포함한 음률과 가락의 조화, 천지창조의 조화에 해당되는 율려는 만물의 생육과 조락(凋落)에 관여하는 신비한 힘이라 할 수 있다. 시공간의 본질이며 현(玄)을 연주하는 미지의 손이다. 근원에 맞닿아 있는 음파이다. 탄력적으로 출렁이는 생명기운인 것이다. ‘조화’와 ‘상생’이 핵심인 율려는 우주 생명의 핵 또는 만물의 율동여정(律動呂靜)이라고도 한다. 인간 판단의 영역 밖인 대 우주의 혼이자 음양오행이며 생명의 궁극적인 실재이다.

 

필자의 넓고 깊지 못한 지식이 왜곡과 어긋남을 낳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동양사상 전체에 대한 이해를 요하는 ‘율려’를 빈천한 식견으로 섣불리 거론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한 고백이겠다. 두 가지는 분명하다. 하나는 율려가 불가해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율려를 주제로 삼은 김강록의 작업의도가 일상을 넘어서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동양철학에 기인한 율려를 색으로 풀어낸다.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거나 놓칠 뿐 천지간엔 이미 조화로운 음양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우주의 중심은 인간 너머에 있고 작가 김강록은 그 범주를 탐문한다.

 

인간과 우주의 화합추구는 동아시아 미학의 공통된 특징이다. 동양인들은 우주를 불가지한 신비의 대상으로 보았다. 특히 관념적인 사유의 소유자인 중국인들은 우주에 온전히 동화되는 천인합일을 미적 이상으로 여겼다. 중국과 한국은 오랫동안 통합주의적 사상과 문화를 일구어온 민족이다. 변증법이나 종말론으로 치닫는 서양과는 달리 동양예술의 역사가 초시간적인 목적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통합주의적 사상의 영향이다. 이들의 미학을 검토하는 것은 포스트모던 이후의 문화방향 모색과도 맞닿는다. 김강록은 일찍이 이러한 흐름을 간파하고 통합주의적 사상을 자신의 회화작업에 투영시킨 작가이다.


1990년에 미술대학(계명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김강록은 1994년 1회 개인전(대백프라자)을 시작으로 약 25년간 서양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빼곡한 그간의 이력들 중에서 유독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박사과정 수료(2007~2009)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제 7대 원우회장’ 역임이다. 기(氣)철학 수행자였던 김강록이 우주의 원초적인 질서개념인 율려를 색으로 녹여내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한 단초가 아닐까 한다. 불가시적인 율려를 조형적으로 시각화한 출발점이 뇌교육종합대학원 과정이었다고 볼 때, 김강록이 본격적으로 율려에 몰두한 시기는 약 10년 전후로 상정된다.

 

김강록은 분화주의에 입각한 서양미학을 밀어낸다. 대신 우주적 질서에 합하는 동양철학에서 미적인 쾌를 구한다. 추를 제거함으로써 미에 도달하기보다 통합주의적 사고로 우주조화의 실체를 탐구한다. 동양사상을 서양화로 풀어낸 것이다. 이러한 그의 회화 율려 시리즈는 추상형식을 띤다. 그렇다고 제작방식을 잭슨폴록처럼 자동기술법에 기대지는 않는다. 생명감 넘치는 클레의 작품을 상기해봄직 하지만 칸딘스키가 추구한 회화의 음악성에 접근하는 것은 왠지 조심스럽다. 동양사상이 토대된 김강록의 회화가 이들의 작품방향에 견주어서 다소 현학적이기 때문이다.

 

김강록의 ‘율려’ 연작은 2001년 청년작가초대전에서 선보인 이래 20여 년간 꾸준하다. 이번 구미에서 펼칠 10회 개인전도 지난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의 율려 시리즈는 색이 화면 전체를 지배한다. 전면으로 나온 색이 조형요소의 전부인 셈이다. 간간이 색의 인위적인 배치나 의도된 마티에르에 따른 경직성이 포착되지만 물감을 뿌리거나 포개고 공굴린 혼색이 대체로 조화롭다. ‘조화’의 개념을 염두에 둔 작업답게 색들이 순조롭게 어우러져서 밝고 경쾌한 느낌을 자아낸다.

 

어떤 색채가 차별화된 표현성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색채가 다른 색채와 어우러져 역동적인 긴장감을 산출할 때이다. 혼색의 경우 더욱 그렇다. 혼색에서 색채의 우성(優性)을 결정짓는 요인은 주변에 포진한 다른 색채이다. 색의 유사와 대비현상도 다르지 않다. 어느 한쪽의 색채를 희생시키고 다른 한쪽의 색채를 강조할 때 혼색의 불안전성은 크게 감소된다. 김강록은 화면에서 색의 대비와 강조에 더한 조율로써 조화를 일구어왔다. 음악으로 치면 농현(弄絃)에 가까운 색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서서 조화에 밀도감을 높인다. 오방정색 사이에 간색과 잡색이 두루 삽입되어 생명력을 가진 색채로 거듭났다. 분자가 스스로 생명체를 형성하듯 색채의 조립으로 공명을 일으키는 김강록에게는 색이 곧 생명의 의미이다.

   

색채는 지각되고 정서는 전달된다. 색가(色價)에 우리의 의사전달 전부를 맡길 수는 없지만 색은 눈에 보이는 외양을 결정짓는 중요한 조형요소이다. 형으로는 얻을 수 없는 표현적인 힘(impact)을 발휘하는 색은 한 가지 색상이라도 명도와 채도, 면적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진다. 두세 가지의 색상이 어우러졌을 때는 더욱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변수가 많은 조형요소인 것이다. 색의 느낌은 주관적이다. 김강록은 이러한 색으로 율려를 표현한다. 김강록이 운용하는 색은 기호형태이자 기호내용이다. 기표인 동시에 기의인 색으로 풀어낸 김강록의 율려는 삶의 철학적 사유와 예술적 욕구가 함의된 중의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천지자연의 조화에서 나오는 질서에 따른 소리, 김강록은 그것을 색으로 풀어낸다. 그의 시도가 합당한지의 여부는 감상자가 판단할 몫이다. 주목할 점은 동양철학을 기초로 음을 색으로 변환한 예술이라는 점 외에도 가능성을 점치고 기대감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무지개 색처럼 빛 아래 삶의 공간에는 무수한 색들이 존재한다. 환희로 가득한 마음을 색만큼 잘 표현할 조형요소가 또 있을까. 바로 작가 김강록이 율려를 선이 아닌 색으로 풀어내고자 한 이유일 것이다. ‘따스한 생명의 흐름, 그 영혼과 신성에 대한 김강록의 그리움’이 한 순간에 단색 또는 무채색으로 변모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다양한 상상과 기대감에 더한 흥미유발이야말로 김강록의 회화가 지닌 매력이자 가능성이 아닐까 한다.

 

2019. 5. 11  미술학 박사 서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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