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    업데이트: 15-08-18 10:22

자유로운 이야기

율려 세계의 구현과 예술적 욕망
화가 김강록 | 조회 1,100

율려 세계의 구현과 예술적 욕망


태초에 지구적 환경은 생명체의 부재상태였을 것이다. 그것은 태양에서 불덩어리 혹은 가스 덩어리 상태로 떨어져 나온 일체몰아의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수많은 곤난(困難)과 독자적인 자기화 과정을 거치면서 땅과 하늘의 분화를 낳았을 것이다. 당연히 분리의 결과물로서 피조물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을 것이며, 또한 천(天)과 지(地)의 틈바구니 속에 존재하게 된 그 피조물로서 인간이란 생명체의 출현은 가능하였을 것이리라!

김강록의 그림은 태생적으로 많은 시사점을 지닌다. 그것은 분화된 자연 혹은 분열된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다. 보다 고양된 의미를 지닌 그의 작품은 마치 세계의 본원으로서 천부(天符)사상이 깃든 세계시원의 개념이 내재한다. 즉, 인위성을 벗어나 대기적 순환을 거스르지 않고 물 흐르듯 형통하는 기운의 운영이 내재한다. 그가 줄기차게 예술적 행위를 통해 구현코자 하는 율려(태초의 생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세계가 그러한 기운의 흐름을 보양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참으로 기이한 세계를 유영(遊泳)한다. 그 유영은 시작이나 끊임이 없고, 출발도 없고 종말도 없다. 그 그림의 모태는 하나이며 시작도 끝도 하나이다. 이로써 그 작품세계는 이미 하나로 응축된 물(勿)의 세계를 기반으로 한다. 음과 양이 편재한 분리된 세계를 초극해 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부재를 초극하는 세계의 제일원인을 포괄한다. 그 그림에는 태초의 천·지·인의 섭리가 내재하는 하나로 응축된 세계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 작품들은 각양각색의 형들과 색들의 조화로운 배합을 지향한다. 그 과정적 성과를 도출함에 있어 형과 색은 율려 세계의 구현을 이루는 필연적인 구성원리로 실재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 구성은 생명체를 탄생시켰고 이 과정에서 형과 색은 탄생했다. 이때 형과 색은 그것이 만물을 끌어내고 온 누리를 통치할 수 있는 생명체를 낳는 한량없는 매개체로 군림한다. 이를 통해 작품은 율려 세계의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회화의 소재로서 원초적으로 실재하는 화판에는 아무것도 실재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형체도 없고 색채도 없다. 그곳에는 무형(無形), 무색(無色), 무성(無聲), 무취(無臭), 무미(無味)만이 있을 뿐이다. 작가는 그곳에 생명을 부여하듯 형과 색을 배열한다. 이를 전제로 화판에 인간의 영혼을 일깨울 수 있는 혼을 불어넣고, 그 결과로 생명을 낳는 율려의 세계를 양산한다. 마치 삼신(三神)이 ‘하늘과 땅에 기를 불어넣어 최초의 인간인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을 만든 것’ 처럼 말이다. 이에 따라 이미 그 그림은 신령스런 상서로움이 내재한다. 하늘로부터 하강하는 천기와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지기의 조화로운 융합을 내포한다. 현대의 서구적인 정신과학이나 자연과학적 세계관으로는 거의 인식할 수 없는 세계의 지향을 낳는 조화로운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한 신비로운 세계의 구현을 회화로 풀어가는 그의 회화관은, 따라서 매우 심오하다.


홍준화 (미학‧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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