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    업데이트: 16-08-22 10:49

김강록의 작품세계

김강록의 감각적 유희의 향연 / 서희주(철학박사)
화가 김강록 | 조회 1,028

김강록의 감각적 유희의 향연 / 서희주(철학박사)

화려한 색의 흐름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김강록의 작품은 항상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캔버스 위의 추상적 형태는 색과 만나 추상표현주의적 경향을 드러내면서 서양적인 회화에 침잠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작품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화려한 색이 우리의 오방색(五方色)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캔버스 위에 펼쳐지고 있는 빛깔들의 근원은 음양오행적 우주관에 바탕을 둔 것으로 오행의 원리에 따른 청(동쪽), (남쪽), (중앙), (서쪽), (북쪽)의 다섯 가지 색의 향연인 것이다. 여기에 이 색들이 서로 어울려 만들어내는 미적 특질은 우리를 궁극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우리는 시각적 감각과 미술에 대한 지식을 동원하여 그의 작품을 추상 또는 추상표현주의적 작업이라 판단하지만 작품의 근원에는 우리에게 육화(肉化)되어 있는 동양적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긴 시간 동안 동양적 세계관을 담은 작품을 발표해왔었다. 2001년 청년작가초대전에서 그는 율려(律呂)’ 연작을 선보였으며 지금까지 율려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율려가 바로 그의 작품 제목인 동시에 작품에 담긴 철학인 것이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 단어는 전통음악 용어로 12율의 양률(陽律)과 음려(陰呂)를 통칭하여 율려라고 말한다. 동양철학에서 율려는 상생과 상극의 상관관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조화를 의미하며 고대 신화에서는 천지창조의 모태이다. 따라서 율려는 모든 것의 근원이자 조화인 셈이다. 바로 이 개념이 김강록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인 것이다. 그는 이 개념에 오랜 시간 사로 잡혀왔으며 이제 자신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철학이 되었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배태한 의식은 작가 자신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통상적인 관념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그를 만나게 되면 상생과 조화를 중요시 여기는 자신의 일상생활과 그의 작업이 맞닿아 있음을 쉽게 간파 할 수 있게 된다. 이 율려라는 개념에 그 자신이 오롯이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드러내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만으로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오방색을 사용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친 두께의 질감과 물감이 만들어내는 물성,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붓질, 현란한 색의 조화와 상충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역동적인 그의 이미지들은 지극히 감각적인 작품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색과 붓질이 화면을 채우고 형상의 역동은 그의 작품이 품고 있는 철학적 통찰을 넘어 우리 직관에 직접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작업에서 시각적 감각의 살아있음을 먼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예술의 생명과 감각의 자유로움을 즐기게 된다. 이것은 그의 작품에 담겨 있는 심오한 철학적 해석보다 우리의 감각이 그의 작품에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궁극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 특성임에는 분명하다.

이번 전시에서 김강록은 이와 같은 미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작업에 또 다른 감각을 덧입혔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캔버스가 아닌 도판(陶板)을 선택했다. 도판에 자신만의 미학적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색과 붓질이 살아있는 그림을 그렸다. , 도자 그림(ceramic painting)을 시도한 것이다. 그가 오랫동안 작업해왔던 캔버스 위의 시각적 이미지가 도판 위에서 펼쳐졌다. 그러나 매체의 특성상 그의 작품에 강하게 드러나는 거친 질감은 사라졌고 색의 선명함과 화려함은 부드러움과 유연함으로 바뀌었다. 다른 매체로의 확장을 시도한 이번 작업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미학적 특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도자 그림에 사용하는 물감은 유화물감이나 아크릴물감의 색만큼 선명하고 화려한 색을 표현할 수 있지만 이 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물성이 다소 다르다는 점이 그의 작품에 변화를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러한 결과를 예측했든 예측하지 않았든 간에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새로운 미적 감성을 일으키고 있다.

 

그 동안의 작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매체로의 확장은 예술 작품이 가지고 있는 실용적 가치에 대한 탐구 결과이다. 작가가 긴 시간 동안 사용했던 매체를 바꾸어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경우, 실패의 연속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에 그 동안의 작업이 녹녹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자 그림은 도자 물감과 도판의 특성으로 인하여 붓질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물감의 농도를 조절하여 그림을 그려야 하고 표면에 투명유약을 바르고 다시 가마에 구워야 작품이 완성되므로 그 결과를 예측하고 능숙하게 작업을 할 수 있기까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시간을 보낸 그의 작품은 캔버스 위의 붓질이 그랬듯이 도판에서도 자유로운 감각의 유희가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 유희들은 이제 자연을 탐하고 있다. 꽃의 향연 같기도 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펼쳐 놓은 것 같기도 한 그의 도판 작품들은 이전의 강렬한 작품의 이미지에서 중장년 작가의 노련미와 안정된 화풍이 묻어난다. 작가로서의 길을 걸으면서 그의 이미지는 강렬한 추상형태에서 우주의 질서, 조화, 상생의 형상으로 나아갔었다. 그리고 이번 작업에는 자연의 이미지가 그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혈기왕성하고 의욕적인 청년작가의 시기를 거쳐 중장년 작가의 시기가 되면서 궁극적으로 본질라는 개념에 다시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지금 이 질문의 여정에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이 끝나면 새로운 질문과 함께 중견작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중견작가의 원숙하고 세련된 자유로운 감각의 유희와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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