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8    업데이트: 21-07-26 12:31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강문숙의 ‘소소한 문학산책' 16
강문숙 | 조회 978

이스마엘 베아의 <집으로 가는 길>

# 안녕하세요?


인간의 역사는 전쟁이 쓰는 역사라고 했지요.

오늘은 열 두 살 소년이 내전을 겪으면서 5년간이나 소년병이 되어 참혹한 전쟁터를 떠돌며 고향집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한 전쟁회고록이자 에세이,<집으로 가는 길>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책이 출간되면서, 에세이냐, 전쟁 회고록이냐, 또는 전쟁문학이냐 라는 말을 떠나서 그 어떤 소설보다 더욱 리얼하고, 감동적이며, 전 세계를 전쟁의 참상에서 아무런 보호막도 없는 어린 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한목소리를 내게 한 작품이 되었지요. 뉴욕타임스에 논픽션 베스트셀러 1위의 작품임

아직도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우리도 그러한 내전의 역사를 아프게 겪어왔기에 저는 어른으로서 가슴 한 구석에 죄책감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이스마엘 베아는 이 책을 쓸 당시에 26살의 청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국제기구인 유니세프에서 ‘유니세프 소년병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안성기씨를 비롯한 유명 연예인들이 봉사활동을 하며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유니세프란 말이 별로 낮선 이름이 아닐 겁니다.

#

집...집으로 가는 길...이 집이라는 말 속에는 정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육체를 성장하게 했던 물리적인 사물도 집이려니와, 정처없는 삶의 마지막 귀착점이 또한 그 집이기도 합니다.
전쟁터에서는 평화로웠던 시절이 집일 수도 있고, 어른이 되어 사회 속에 살면서 피폐된 정신을 치유하기 위한 유년의 시절이 또 집이 될 수도 있겠죠.

이 이야기는 , 열 두 살의 장난스럽고 천진난만한 한 소년이, 그것도 미국의 힙합그룹 <슈가힐 갱>을 좋아해서 녹음 테이프를 늘 주머니에 꽂고 다니면서 운동장에서나 동네 마당에서 연습을 하며 래퍼를 꿈꾸던 이스마엘 베아의 이야깁니다.

이스마엘 베아는 <시에라리온>이라는 우리에겐 꽤 생소하거나 어쩌면 뉴스에서 이름 정도나 들어보았을 법한 낮설고도 먼 나라에 사는 열두살 소년입니다.
어느날 랩을 좋아하던 소년들 몇이서 이웃마을 마트루종에서 열리는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려고 합니다.
연습중인 노래가사가 적힌 공책과 랩 테이프, 그리고 춤을 출 때 입으려고 준비한 헐렁한 청바지 한 벌과 반바지, 그리고 스니커즈를 부풀어보이게 하려고 세 켤레나 끼워 신은 양말, 축구용 셔츠를 입은 채 마트루종까지 걸어가려고 길을 가던 중, 내전에 휩쓸리게 됩니다.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서로를 위로하며 밤낮을 걸어가던 소년들은 크고 작은 마을들을 지나면서 반군과 정부군의 총격을 피해서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 틈에 섞여서 가족들과는 만날 수도 없게 됩니다.

전쟁은 무엇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모를 어린 소년들에게 마치 나무에 못을 박듯이 막무가내로 총을 들게 하고 칼로 상대의 목을 자르게 하는 소위 말해서 잔악한 소년병이 되게 했습니다.

더욱 경악할 일은 아직 겁이 많고, 약한 소년들에게 흰 알약, 즉 마약과 담배로 중독시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죽일 수 있는 총은 광기에 젖어, 이성을 마비시켜서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소년병으로 만들어가는 것이죠, 어른들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상하는 반군들의 잔혹함을 목격하고, 몇 달을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헤멘 끝에 간신히 가족과의 상봉을 눈앞에 둔 순간, 간발의 차로 반군들에게 가족들이 몰살당한 현장을 확인하는 대목은 픽션보다 더 극적이어서, 숨을 멈추게 합니다.

아마도 허구가 아니기에 더욱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소년병이 된 후 그 자신이 공포심도 동정심도 없는 악마로 변하여 전쟁의 한가운데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경험담은 충격적이지만,
그 무엇보다 마약까지 먹여하면서 어린 아이들을 전쟁에 이용하는 어른들의 잔인함이란 몸서리가 쳐집니다.

결국은 그 모든 것을 잃고 인간의 모습마저 극한의 절망으로 치닫을 무렵, 미국의 유니세프로부터 소년병을 구하려는 손길이 닿았고, 소년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과정 또한 전쟁 중에 잃어왔던 그 시간보다 몇 배나 더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겪어야 하는 것이었지요.

그런 중에도 래퍼가 꿈이었던 소년의 가슴 저 밑바닥에는 예술이 그의 인간성을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희망이 흐르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늘 손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 있는 한, 더 나은 날이 오고 좋은 일이 생길거라는 희망이 있단다.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을 잃게 되면 , 그때 죽는 거야“
그 참혹한 전쟁 중에도 별을 헤게 하고, 랩이 담긴 테이프대문에 목숨을 건지기도 하고, 이 길을 가는 소년들에게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챙겨주는 시에라리온의 촌부들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 희망을 잃지 않게 했던 것이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에 맴돌고 가슴을 치게 했던 것은 ‘이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였습니다.
회복과정에서도 봉사대원들은 아이들의 온갖 파괴적인 행동과 울분을 보고 “이건 너희들 탓이 아니야. 괜찮아” 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세계 어느 구석구석에선가 전쟁 중이고, 또 그 전쟁 가운데는 이렇게 잔인하게 길들여진 어린 소년병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오늘 밑줄 그은 문장은-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될 수 없어 밤이 되면 반군들을 피해 집으로 향해 길을 걷는 소년들...생각지도 못했던 전쟁은 어린 소년들의 마음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얼마나 막막했을지 가슴 적시는 대목입니다.

잔인한 소년군이 되기 전인데 그래도 부모형제를 만나러 집으로 가야한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때의 한 대목입니다. 순수한 소년들의 두려움과 공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낭독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칠흑 같은 어둠을 투명하게 꿰뚫어 볼 수 있을 때까지 어둠 속을 응시했다. 우리 가족은 어디 있을까. 아직 살아 있기나 한 걸까하는 생각이 한시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밤에는 마을 광장에 앉아 그동안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달을 가리려 해도 달은 자꾸만 다시 구름 밖으로 나와 밤새도록 빛을 뿌렸다.

어찌보면 내 여행도 달의 움직임을 닮아 있었다. 비록 훨씬 더 짙은 먹구름이 내 앞길을 가리고 정신을 흐려놓고 있었지만 ...

어느날 저녁엔가 또 한번 창과 도끼를 든 남자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뒤, 사이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올 때마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죽음을 기다려.
아직 살아 있다 해도 체념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때면
내 일부가 조금씩 죽어가는 것을 느껴.
머잖아 난 완전히 죽고 너희들과 함께 걸어가는 나는
텅 빈 껍데기만 남게 될 거야.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말이 없겠지“

사이두는 입김을 후후 불어 손바닥을 덥히고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의 무거우 숨소리가 더 커진 것으로 보아 잠이 든 모양이었다.

나는 우리가 이 긴 여행 중에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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