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8    업데이트: 21-07-26 12:31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강문숙의 ‘소소한 문학산책' 15
강문숙 | 조회 828

<강문숙의 소소한 문학산책>

이 홍 섭의 < 귀 조경>

 

# 안녕하세요

 

-아침 저녁과 한낮의 기온차가 무척 심하죠?

주변에 감기 환자가 특히 많던데, 건강에 더욱 신경써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얼마전 신문에 고향 특집 시리즈가 있어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영주 풍기엘 다녀왔는데요.

초등학교 시절 면사무소 앞에 있던 은행나무가 수령 700여년을 자랑하며 아직도 건재하고 있더군요.

사십년의 시간이 지난 그날, 그 나무 앞에 서보니, 반갑다기 보다 마음이 숙연해지더군요.

오래된 스승? 아니 어떤 역사의 유물을 보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는 <대구 수목원>에 자주 가는 편인데, 그때마다 다른 얼굴로 맞아주는 나무들을 보며 참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걸 느꼈었는데요.

그 드넓은 쓰레기 매립지가 생명을 뿜어내는 장소로 변했다는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시간을 내서 한번 가보세요^^

 

# 이 홍섭이라는 시인이 얼마전에 출간한 시집 <터미널>이 있습니다.

그 중에 <귀 조경>이라는 시가 있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강릉에서 태어난 시인은 워낙 사물을 통해서 삶의 성찰을 이끌어내는데 아주 탁월한 시인이기도 하지요.

시는 언어의 유희를 통해서 전달되는 예술이기 때문에

얼마간 모호성을 가지고 있으며, 시인의 뜻을 개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대지, 현실과 관념의 긴장 위에 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그 의미를 이끌어내게 하고, 이 세계로부터 스스로의 존재를 규정짓게 하지요.

 

또 뭉쳐서 단단해지는 눈덩이처럼 말의 함의성을 깊이 숨겨두고 있을 때 보다 그 말이 눈처럼 흩날릴 때의 그 자유로움을 따라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것...등이 시의 본질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런데, 이 홍섭시인의 시처럼 삶의 성찰을 보여주는 시들은 한편의 시를 음미하면서 동시에 시의 진의를 누리게 합니다.

눈에 귀에 익숙한 풍경, 또는 사물을 관찰하고, 그래서 함께 공감하면서 그 울림 속으로 머리와 가슴을 들이밀게 하지요.

시는 온몸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독자 역시 마찬가지로 온몸으로 시를 향유할 수가 있는 것이죠.

 

오늘 소개해드릴 시가 그렇습니다.

이홍섭 시인의 목소리(시의 어조)는 그리 높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저음을 지니고 있지만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고나 할까...그런데 묘한 것은 그 여운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메아리처럼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죠.

자신의 삶 전체를 시에 걸었으나 결코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어느 순간 시가 그 자신의 삶의 흔적이 되어버린 것처럼 이 시인의 시는 주장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려서 전해주거나, 또는 그가 바라본 풍경을 담담히 그려나감으로 그것이 얼마나 슬픈 감정을 자아내는가를 독자 스스로 느끼게 하지요.

그러나 나름대로의 원칙성을 갖고 있는데, 세상과 관련되어 있는 것, 삶 속에서 나를 건드려 일어나게 하는 감정, 다시 말해서 시인의 삶의 진정성을 시에 숨겨놓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표제시 <터미널>에서 보면 젊은 여자가 갓난아기를 안고 소리 없이 울고 있는데 누가 볼새라 고속터미널 모퉁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남몰래 울고 있는 모습을 포착합니다.

시인은 그녀의 울음이 하도 간절하여 그 모퉁이가 다 닳을 때까지 그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 울음은 넘쳐나도 모퉁이가 다 받아줄 수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터미널은 고향으로 가는 길이고, 실제 시인은 고향으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늘 그리던 고향을 버린다고, 비움을 노래합니다.

 

#오늘 읽어줄 시는요~~

 

요즘 같은 봄날, 나무들을 보면서...또는 적어도 한번쯤은 가볼만한 수목원에서도 기억나게 할 그런 시입니다. 나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생의 진리를 생각하게 할 것 같아요

한권의 경전 못지않은 아름답고도 쉽게, 그러나 깊은 울림을 주는 시

<귀 조경>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귀 조경>

- 이 홍섭

 

 

일평생 나무만 길러온 노인이 말씀하시길, 조경 중에 제일은 귀 조경이라 하신다.

키 큰 나무, 키 작은 나무, 잘 생긴 나무, 못생긴 나무를 두루 심어놓고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이따금 이파리와 꽃잎의 맛을 보는 조경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 제일의 조경은 이 나무들이 철따라 새들을 불러 모으고, 새들은 제각기 좋아하는 나무를 찾아들어 저마다의 소리로 목청 높게 노래 부르는 것을 듣는 일이라.

키 큰 나무만 심어 놓으면 키 큰 나무에만 둥지를 트는 새의 노래를 들을 것이요,

키 작은 나무만 심어 놓으면 키 작은 나무에만 날아오는 새의 노래를 들을 것이니

그것은 참된 귀 조경이 아니라 하신다.

 

오랜만에 봄 창을 열고 목노인처럼 생각하거니, 나는 이 세상에 나서 어떤 나무를 심어 왔고, 내 정원에는 어떤 목소리의 새가 날아왔던가.

나는 또 누구에게 날아가 키 큰 나무, 키 작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오늘처럼 봄날의 노래를 들려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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