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8    업데이트: 21-07-26 12:31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강문숙의 ‘소소한 문학산책' 14
강문숙 | 조회 718

-요즘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것이 <학교 폭력>이죠?

예전에 저희가 학교에 다닐 때는 그저 끼리끼리 학창 생활을 활기 있게 보내기 위해 클럽을 결성해놓고, 1학년 들어가면 선배들이 이미 점찍어 놓고 영입을 하곤 했었죠.

그런데 요즘은 범죄그룹이 형성되고 역기능으로 작용하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데요, 엊그제 저녁 뉴스 시간에 보니까, 대구시에서 <학교 폭력 멈춰! 멈춰!> 하면서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더군요.

글쎄요, 그렇게 멈춰! 해서 멈춰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어른들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더라구요.

 

# 학교 선생님들의 고민도 굉장히 크다고 들었습니다.

 

- 자, 오늘은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풋내기 여교사와 초등학교의 어린이들 사이의 소박한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브리엘 루아의 <내 생애의 아이들>인데요, 일종의 성장소설이지요.

가브리엘 루아는 캐나다 작가인데, 실제 위니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8년 동안 교사생활을 한 경험을 토대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하니

더욱 진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우리 현실의 교육관을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도 되고,

어쩌면 인생에 대한 찬미의 대서사시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가브리엘 루아는 1945년에 <싸구려 행복>이라는 작품을 발표해

캐나다 작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의 페미나상을 수상하며 일약 캐나다를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지요.

그 후에도 <데샹보 거리> <내 생애의 아이들>로 캐나다 총독의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합니다.

특히 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특징짓는 환기력과 문체의 질감,

그리고 거기서 솟구쳐오르는 고즈넉한 감동이 독자들로 하여금 책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하지요^^

 

특히 윤아나운서가 읽으면 참 좋아할 거 같아요.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아...나도 선생님이 되고 싶다’ 하실 걸요?^^

 

# 너무 궁금해지는데요...사실 저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요^^

 

- 네, 이 작품은 작가가 젊은 시절 마니토바에서 여교사로 지내던 시절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들을

여섯 편의 중.단편으로 나누어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별개의 이야기들이라기보다는 여선생과 아이들이 함께 겪어나가는 삶의 이야기들이어서

마치 학년이 올라가듯, 반이 갈라지듯 다른 주인공들의 같은 이야깁니다.

그만큼 자연스러우면서도 정교한 구조와 통일성을 갖춘 소설이죠.

 

주인공은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18세의 젊은 여교사가 화자로 등장합니다. (1977년의 캐나다에선 그 나이에 첫 부임을 하는가 봅니다)

 

첫 번째 이야기, 학교를 두려워하는 아이의 낯선 걸음이

적응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빈센토>

 

두 번째는, 총명하고 마음 깊은 '클레르'가 성탄절을 맞이하여 다른 아이들처럼 선생님께 선물하지 못하여 겪는 마음 앓이와

그것을 바라보는 교사의 안타까움에 대한 <성탄절의 아이>

 

세 번째, 성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닐'의 아름다운 소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게 되는 <종달새>

 

네 번째는, 모든 교사들이 꺼려하는 드미트리오프 집안의 한 소년의 특별한 '글씨 쓰는 재능'을 발견하면서 맞게 되는

부자간의 감격스러운 전환점을 내용으로 하는 <드미트리오프>

 

다섯 번째 이야기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많은 형제, 부모를 대신한 노동

등의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앙드레'에 대한

대견하지만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는 <집보는 아이>

 

마지막 여섯 번째 이야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찬물 속의 송어>에서는, 학교 밖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아 다니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다루기 힘든 '메데릭'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공감, 그리고 그의 사춘기를 현명하게

대처하게 하게 하는 지혜를 찾는 교사로서의 번민들이 다루어집니다.

 

# 이 소설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황량하고 광대한 평원의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주 무대인 ‘학교’와 그 무대를 에워싸는 사회 문화적 환경과 자연적 환경입니다.

 

학교는 화자인 여교사와 어린 학생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죠.

여교사는 교실의 자기 자리에 앉아서 아침이면 창문 밖으로 아이들이

‘하늘 저 밑으로 가벼운 꽃장식 띠 같은 모양을 그리며 하나씩 하나씩, 혹은 무리를 지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또 저녁이면 창문 밖으로 ‘굽이돌다가 곧 끝간 데 없는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져버리는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학교는 사랑과 인식의 출발점이죠. 거기서 교사와 아이들은 서로 문자를 배우고 노래를 배우고 타자의 존재를 배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며 사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그때도 이 학교가 자유를 구속하는 ‘감옥’으로 느껴지기도 하지요.

빈센트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특히 방학이 지난 뒤 며칠 동안은 자유의 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받는 구속감이란 우리와 꼭 같습니다.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되죠.

 

그렇지만 이 풋내기 여교사는

‘이른 아침 교실에 서서 내 어린 학생들이 세상의 새벽인양 신선한 들판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학교라는 함정 속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로 달려가서 영원히 그들의 편이 되어야 옳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젖습니다.

 

이 말은 지금 이 지경이 된 우리의 학교의 모습과 비추어 시사하는 바가 크죠.

결국 우리 어른들이 (교사나 학부모)이 만들어놓은 모습들이고, 바로 세워야 할 책임을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 아름다운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가는 소설인 것 같네요. 오늘 읽어주실 대목은요?

 

- 네, 저는 <집 보는 아이>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주목했는데요,

가난한 집 몇 채와 학교, 교회, 따분한 기차역사, 물저장탱크 등 쓸쓸한 마을, 다시 말하면 용기도 믿음도,

내일에 대한 희망도 별로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곳입니다.

그런데, 그 여선생의 ‘그 반대편으로 눈길을 돌리면 모든 것이 딴판이다’라고 하는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학교로 몰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이 넘칠 듯이 흘러드는 것이었다. 나는 미래를 마주보고 있다.

그 미래는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매혹적인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라고 서술합니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개척의 정신, 절망에 맞서는 도전과 성장의 세계관이라고 봐집니다. 그때의 독백을 읽어드릴 텐데, 눈을 감고 들어보시면 그 풍경이 그려질 겁니다.

 

   

<밑줄 그은 문장>

 

나는 책상에 가 앉아서 우리 학생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느라 마음이 급했다.

나는 한 줄기 작은 오르막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기에, 아이들이 하늘 저 밑으로 가벼운 꽃장식 띠 같은 모양을 그리며

하나씩 하나씩, 혹은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매번 나는 그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광대하고 텅 빈 들판에 그 조그만 실루엣들이 점처럼 찍혀지는 것을 볼 때면

이 세상에서 어린 시절이 얼마나 상처받기 쉽고 약한 것인가를,

그러면서도 우리들이 우리의 어긋나버린 희망과 영원한 새 시작의 짐을 지워놓는 곳은, 바로

저 연약한 어깨 위라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절감하는 것이었다.

 

나는 또한 그때 세상 구석구석으로부터 그들이 나를 향하여,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 한낱 이방인에 불과한 나를 향하여,

길을 걸어오고 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알지도 못하는 그 누군가에게,

나의 경우처럼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경험 없는 풋내기 여교사에게,

사람들은 이 지상에서 가장 새롭고 가장 섬세하고 가장 부서지기 쉬운 것을 위탁한다는 것을 느낄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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