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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살아 시퍼런 소리를 듣는 것 / 2018-05-21
아트코리아 | 조회 294
오월의 담장을 줄지어 달리는 장미를 보면 문득 발걸음을 멈추면서 구구한 장문의 글보다 오히려 아름다운 한편의 시가 생각나고, 나아가서 나도 무언가 쓰고 싶어지지요? 우리 가슴 속에는 누구나 정서적인 감성이 일고, 그것을 노래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이럴 때, 시는 이렇게 써야 하는 거야…의미심장한 말로 길을 열어주는 글이 있습니다.

‘내 소리도 가끔은 쓸 만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피는 꽃이든 죽는 사람이든/ 살아 시퍼런 소리를 듣는 거야/ 무슨 길들은 소리 듣는 거보다는/ 냅다 한번 뛰어보는 게 나을 걸/ 뛰다가 넘어져 보고/ 넘어져서 피가 나 보는 게 훨씬 낫지/ 가령 ‘전망’이라는 말, 언뜻/ 앞이 탁 트이는 거 같지만 그보다는/ 나무 위엘 올라가 보란 말야, 올라가서/ 세상을 바라보란 말이지/ 내 머뭇거리는 소리보다는/ 어디 냇물에 가서 산 고기 한 마리를/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걸/ 확실히 손에 쥐어 보란 말야/ 그나마 싱싱한 혼란이 나으니/ 야음을 틈타 참외서리를 하든지/ 자는 새를 잡아서 손에 쥐어/ 팔딱이는 심장 따듯한 체온/ 손바닥에 느껴 보란 말이지/ 그게 세계의 깊이이니/ 선생 얼굴보다는/ 애인과 입을 맞추며/ 푸른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행동 속에 녹아 버리든지/ (중략) / 그리하여 네가 만져본/ 꽃과 피와 나무와 물고기와 참외와 애인과 푸른 하늘이/ 네 살에서 피어나고 피에서 헤엄치며/ 몸은 멍들고 숨결은 날아올라/ 사랑하는 거와 한몸으로 낳은 푸른 하늘로/ 세상 위에 밤낮 퍼져 있거라’. (정현종의 시 ‘시창작 교실’)

시인은 말합니다. 시를 쓰려거든, 글을 잘 쓰려거든 ‘살아 시퍼런 소리’를 듣는 것,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걸 확실히 손에 쥐어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시인은 그것이 바로 ‘세계의 깊이’라고 말합니다. ‘싱싱한 혼란’만이 우리의 영혼을 부추겨 시의 광휘 속으로 걸어가게 합니다.

시는 어디에 있을까요?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시적인 요소는 어디에나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담겨 있을 때는 그저 어떤 특징이나 감정에 불과하죠. 시인은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시인이 그것을 발견해서 거기에 일정
한 구성 형식과 언어를 가지고 의미나 가치를 부여했을 때 비로소 한편의 시가 태어납니다. 

김춘수 시인은 그 시적인 상태를 ‘들림’이라고 표현했는데, 무엇엔가 홀리거나 들려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신을 영접하는 것처럼 시의 ‘들림’이 씌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이 오는 것도 모르고 언어의 신비한 세계를 구현하며 기꺼이 온몸을 던지는 것이지요. 

시적인 것이 찾아오는 순간이란 처음에는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상태이자 영혼에서 시작된 일종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또한 그리 길지 않습니다. 섬광처럼 지나가버리지요. 사물과 제대로 눈 맞아 스파크를 일으키지 않고서는 그 사물이 들려주는 말을 제대로 받아 적을 수가 없다는 게 아쉽지요. 그래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시적인 순간이나 대상을 향해 자신을 열고 집중하는 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정진이 요구됩니다. 

<시인·전 대구시영재교육원 문학예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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