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    업데이트: 21-12-30 13:37

자유게시판

淸奇하고 高雅한 品格이 發現된 文人畵 - 정태수
아트코리아 | 조회 868

淸奇하고 高雅한 品格이 發現된 文人畵


-문인화가 강희춘의 작품세계-


정태수(한국서예사연구소장)


규정 강희춘 작가는 경북의 대표적인 여성 중견문인화가로 각종 공모전과 개인전 을 통해 필명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작가는 지난 사반세기 세월 동안 필묵으로 작가의 내면세계를 가꾸는 예술행로에서 쉼 없이 정진하고 있기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1998년 진영서예학원을 개원한 이후 오늘까지 후학들에게 한글서예를 전문적으로 지도하면서 서예가로서 인정받고 있고, 최근에는 문인화가로서도 화단에 잘 알려져 있다.


2000년부터 석경 이원동 선생에게서 문인화를 공부하면서 3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이번 4회 개인전에서는 대형작품으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이른 봄날, 전시장을 찾으면 매화와 석류작품 외에도 작가의 혼이 담긴 40여 점의 다양한 화목들을 만나게 된다.


이번 출품작을 둘러보면서 한 마디로 결론부터 말하면 작품전반에 ‘청기(淸奇)한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작품을 살펴보면, 맑으면서도 타자와 구별되는 기이한 느낌이 풍기고 있어 감상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원래 청기(淸奇)라는 품평어는 당나라 사공도(司空圖)가 시의 의경(意境)을 24품(品)으로 나눈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에 나오는 미학용어이다. 사공도는 각 의경(意境)의 품격을 상징적인 해설을 곁들인 시로 표현하였는데 청기(淸奇)에 대해 말하길 작품의 소재가 남다르고 기이한 품격을 지닌다고 논평하였다. 그러면서 “옛적의 기이함이 묘하게 나오니, 담담함을 담을 수가 없다 / 달이 밝아지는 듯하고, 공기가 마치 가을이 된 것 같다”는 해설시를 남겼다. 그의 시는 당나라 말기에 으뜸으로 꼽혔으며, 특히 고결한 기품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의 출품작을 보면, 소재와 화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위에서 말한 청기(淸奇)의 맛이 잘 드러난다.

 


매화도를 통해 발현된 신선한 조형미감


이번 출품작 가운데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매화그림이다. 우리는 10여 점의 크고 작은 매화그림을 통해 작가의 조형능력을 선명하게 엿보게 된다. 먼저 4미터가 넘는 대형 매화도에서 작가의 조형시각을 가늠할 수 있다. 매화는 추위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이른 봄 개화하여 맑은 향기를 은은하게 풍긴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문인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굵은 등걸과 선명한 꽃, 그리고 잔가지의 힘찬 필세가 매화그림의 관건이다. 깔깔한 선의 묘사와 습윤한 먹의 번짐 정도를 적절히 묘사하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다. 작가는 오랜 습작을 통해 이런 요구사항에 맞게 붓맛과 먹맛을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있다. 예컨대 <청매도>를 보면, 두 줄기 굵은 등걸이 교차하는데 왼쪽 등걸은 위로 자라고 오른쪽 등걸은 오른쪽에서 왼쪽 아래로 뻗어 내렸다. 화면에서는 먹색의 농담과 운필의 강약조절이 잘 되어 기운생동미가 돋보이고 꽃의 처리를 소소밀밀(簫簫密密)하게 자연스럽게 하여 운치가 있다. “청매는 아니 늙고 외롭지도 아니하다”란 화제에도 부합되는 그림이다.


게다가 여백의 경영능력은 문인화가의 조형능력과 직결된다. 작가의 매화도를 눈여겨보면 허실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엿볼 수 있다. 예컨대 <홍매도>를 보면 왼쪽에 두 줄기 굵은 가지가 위로 솟구쳐서 오른쪽 상단에 걸쳐 있지만 화면에서 오른쪽 절반 정도는 비워놓고 있다. ‘봄이 되면 꽃이 핀다’는 유인만 눌러 둠으로써 여백의 미를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 세로로 긴 <녹매도> 역시 화면의 하부 절반 정도를 비워두었고 하단부 오른쪽에 작은 가지에 몇 송이 꽃을 그려 넣고 왼쪽에 유인 하나를 찍어 공간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렇게 넓은 공간을 통해 의경을 확장함으로써 긴 여운을 오랫동안 남긴다. 이러한 그림에서 매화가 지닌 맑은 아취를 드러낸 것으로 살펴진다.


매화도 소품 가운데 사방에 담묵으로 사각형을 그리고 그 안에 가지와 꽃을 다시 그려 넣어 비워둔 가운데를 에워싼 뒤 여백으로 남겨 놓은 중앙에 매화 한 송이 담긴 찻잔 하나를 그려 놓았다. 이런 구도가 청기의 맛 가운데 기(奇)의 운치를 자아내는 것으로 살펴진다. 상단과 우측은 담묵의 줄기를, 좌측과 하단은 농묵의 줄기를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가운데에 시선이 집중되게 배치하였다. 기존의 전통적인 구도와 다른 기이한 작가의 빼어난 구도능력을 엿보게 되는 작품이다.

 

석류도에 담긴 상징과 담채의 맛


옛부터 석류는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열매 속에 가득 들어찬 많은 알갱이 때문에 풍요의 상징으로 사대부들의 정원에 심어졌고 부인들은 안방에 석류도를 걸어놓았다. 매화 다음으로 많은 석류그림에는 폭넓은 독서를 통해 쌓아온 작가의 정신세계가 녹아있다. 그것은 숫자를 통해 발현되어 있다.


대작 석류도를 보면, 왼쪽위에 8개의 열매가 달렸고, 왼쪽아래에 화제를 적어 넣었다. 오른쪽에는 두 가지를 교차시켜 좌우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줄기와 가지, 잎의 색상에 농담을 가하여 변화를 주고 있고 열매의 방향과 크기도 조금씩 달리하고 있다. 작가는 이 그림에서 이전보다 능숙해진 색감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 이 그림에서 숫자 8이 주는 상징성에 주목해야 한다. 주역에서는 팔괘를 이용하여 세계를 표시한다. 때문에 8은 곧 세계를 상징하는 숫자이다. 8은 옆으로 누이면 무한을 상징하는 기호가 된다. 그러므로 무한대의 풍요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서양에서 8은 7일 동안의 금식을 끝낸 첫 숫자이므로 부활의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888은 예수의 숫자로 쓰이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상서로운 표상이 8가지가 있는데 법륜도 8각형이다. 아울러 연꽃의 잎은 8개이기 때문에 득도를 뜻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다의적인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는 8개의 열매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소품 석류도를 보면, 석류열매가 모든 그림에서 두 개씩 그려져 있다. 여기에도 작가의 깊은 의도가 숨어 있다. 서양에서 숫자 2는 협력과 균형을 의미하기도 하고 긴장과 대립을 의미하기도 하며 선과 악을 아우르는 숫자이다. 동양에서 숫자 2는 서로 상반되는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태극의 숫자이기에 조화의 숫자로 알려져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듯이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그런 조화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사의성을 살린 대나무와 연꽃그림


일찍이 묵죽의 대가 정판교는 “열 가지 배울 것이 있다면 일곱은 배우고 셋은 버려야 각각 신령한 영감이 담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하였다. 문인화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적절히 취사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사의(寫意)라고도 한다. 사의성을 살리는 것은 숙련된 작가의 조형미감과도 직결된다.


우리는 작가의 작품에서 이런 농익은 사의성을 발견할 수 있다. 대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연꽃그림에서 특히 생락하거나 함축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대그림을 보면, 댓잎은 바람에 날리면서도 자연스럽고 강직스러우며 풍만하다. 가지는 곧고 힘이 있으면서 절제된 느낌이 살아있다. 소나무 그림의 큰 줄기에서 구륵의 선묘에 강한 필세로 거침없이 농담을 살린 운필은 오랜 서력에서 기인된 것으로 필력이 엿보인다.


연꽃과 모란그림에서는 꽃부분을 붉은 색으로 그려서 상징성이 강하게 살아난다. 모란은 예로부터 부귀의 상징으로 모든 꽃의 왕으로 불렸다. 모란도를 집안에 걸어두면 부귀해진다고 믿었다. 또한 연꽃은 불가에서 꽃이 필 때 연밥도 함께 자라기에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시작되는 ‘인과동시’의 꽃으로도 불리고, 유가에서는 군자의 꽃으로도 불린다. 이런 연꽃과 모란의 초점은 꽃에 달려있다. 그 꽃의 처리에 있어 작가의 담채를 다루는 솜씨가 농익어 보인다.


每事盡善의 정신으로 노력하는 작가


작가의 좌우명은 매사진선(每事盡善)이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누구보다 땀과 노력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무한불성(無汗不成)을 잘 알고 있고, 이를 실천하는 작가이다. 그렇기에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이번 전시를 마치면 바로 다음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일 대나무그림을 위한 공부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렇게 노력하는 강희춘 작가. 그의 이름에 있는 따뜻한 봄날[春]처럼 전시를 관람하는 많은 사람들의 포근한 호응이 있길 기원한다.


병신년 설날에 觀梅樓에서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