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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언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세상 ~ 영남일보 2017-05-12
아트코리아 | 조회 687

[김수영의 그림편지] 이장우 作 ‘장미축제’

’ 장미 형상 속 숨은 본질을 꿰뚫다


나는 주위에서 고리타분하다, 융통성이 없다, 단순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나름대로는 세상 이치에 밝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자부심이 이 같은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사람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지요.

그런데 냉혹한 평가를 내리는 사람의 설명을 들으면 그 말이 영 일리가 없지도 않습니다. 변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늘 만나던 사람을 만나고 음식점, 옷가게도 가던 집에만 갑니다. “오십 줄에 들어서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도 얼마 보지 못하는데 뭐하러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느냐” “이집 저집 가봐도 그 맛이 그 맛이고 그 옷이 그 옷이더라”라며 변명을 하곤 쉽사리 행동을 바꾸지 않습니다.

이런 성격 때문일까요. 꽃을 그리는 이장우 작가의 그림 중에서 꽃 하면 쉽게 떠올리는 장미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것도 노란색, 흰색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빨간 장미를 좋아합니다. 그런 저를 촌스럽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도 좋은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스갯소리로 “라면은 이 라면 저 라면 하다가 결국 신라면으로 가고, 과자는 이 과자 저 과자 하다가 새우깡으로 간다”는 말을 하는데 저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면 일반적인 꽃 그림과는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미를 사실적으로 담아냈으니까요. 하지만 좀 더 자세히 그림을 보면 자연 속 장미와는 무언가 다른 것을 찾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꽃 그림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꽃의 아름다운 형상과 색깔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잘 그린, 때로는 실제 꽃보다 더 싱그럽고 탐스럽게 그린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감탄사를 연발하게 합니다. 가까이 가서 눈으로 자세히 확인하지 않고는 그림인지 사진인지 잘 구분하지 못할 정도니까요. 이런 잘 그린 그림과 이 작가의 그림을 비교하면 그의 그림은 좀 못 그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미의 아름다운 형상이 어설픈 듯한 붓질에 흐트러진 인상도 줍니다. 이런 저의 느낌을 조심스럽게 작가에게 전해봅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장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장미에 대한 탐구와 연구를 꽤나 했습니다. 장미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다 스며있는 꽃인데 저에게는 특히 정열, 역동성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장미의 이런 점에 초점을 두고 그립니다. 아름다움보다는 장미가 가진 본질을 드러내려 애쓰지요.”

그의 고향은 군위입니다. 자신을 ‘군위 촌놈’이라 칭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도 촌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촌놈의 근본이 어디 가겠느냐”는 그의 말에서도 느껴지듯이 그는 도회적이고 세련된 것보다 투박하지만 깊은 맛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의 그림은 물론 말투, 성격에서도 이런 것은 금방 느껴집니다.

이장우 작품의 투박함은 그만의 표현기법에서 나옵니다. 그의 작품을 언뜻 보면 점묘법(붓 등으로 찍은 다양한 색의 작은 점을 이용해 그리는 기법)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엄격히 말하면 점으로 구성된 것이 아닙니다. 크고 작은 붓의 터치가 모아지고 겹쳐지면서 만들어진 형상입니다.

이 작가는 햇빛을 좋아합니다. 햇빛이 생명을 만드는 근원이고 햇빛이 사물에 비칠 때 그 사물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형상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꽃에 내려지는 햇빛의 경우 가만히 있는 꽃이 마치 시시각각 움직이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라 합니다. 햇빛의 강도, 방향에 따라 꽃의 형상이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지요. 이런 꽃의 역동성을 나타내기 위해 그는 붓의 크고 작은 터치로 햇빛의 자연스러움과 꽃의 생명력을 강조합니다.

그의 작품은 투박하지만 섬세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느낌은 그저 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애정을 갖고 바라볼 때 비로소 보입니다. 작가가 작품에 쏟은 열정만큼 감상자도 성의를 보여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의 작품은 꽃의 형상을 쓱 훑어보게 하지 않고 통찰하고 분석하도록 만듭니다. 여기서 이 작가의 작품은 단순한 꽃 그림의 범주를 벗어납니다. 꽃의 형상 속에 숨어든 사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줍니다.

그의 작품은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세상의 진리를 전합니다. 이즈음에서 저의 평가로 이야기를 돌려 봅니다. 저의 모습 또한 밖으로 보여지는 게 전부는 아니란 변명을 해 봅니다. 그 사람의 진실된 모습은 금방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역시 투자한 만큼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을 얼마나 관심 있게 들여다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장미 하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생각납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소혹성에서 장미를 길들이다가 아무렇게나 말하고 요구하는 장미로 인해 속이 상해서 떠나왔는데 결국 후회를 합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다고 자책합니다. 꽃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꽃이 자신에게 향기를 뿜어주고 눈부신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는데 따가운 말 뒤에 숨겨진 따뜻한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음을 후회합니다.

장미가 겉으로 드러낸 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미의 깊은 마음을 봤어야 했다는 반성입니다. 장미의 계절 5월에 어울리는 이 작가의 장미 그림을 보면서 이런 시간을 한번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 

# 이장우 작가는 계명대 회화과와 동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한국예총 문화예술 대상, 대구예술상 등을 받았다. 대구미술협회 회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아름다운동행 대표,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작가회의 공동의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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