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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언론

[인연 .49] 이장우 화가와 서지월 시인 - 영남일보 - 2016-03-22
아트코리아 | 조회 1,442

詩·畵, 30년을 동행하다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한 이장우 화가(왼쪽)와 서지월 시인. 이들이 오랜 시간 좋은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해줬기 때문이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mam.com

이장우 화가의 작품 ‘수태지’
 

89년 시화전이후 친분관계 유지
90년초 영남일보 시·그림 코너에
두사람의 작품을 나란히 싣기도

徐시인, 李화가 개인전때 詩후원
올핸 韓中 시화전에도 함께 참여
장르는 서로 다르지만 교류·소통
예술계도 융합 통해 시너지 효과



꽃잎이여
서지월

한 세상 살아가는 법
그대는 아는가.
물빛, 참회가 이룩한 몇 소절의 바람
옷가지 두고 떠나는 법을 아는가.
눈물도 황혼도
홑이불처럼 걷어내고
갓난 아기의 손톱같은 아침이 오면
우린 또 만나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꽃이 피는 것과 소유하는 일이
서로 반반씩 즐거움으로 비치고 있는
그 뒤의 일을 우린 통 모르고 지내노니
흉장의 일기장 속 꼭꼭
숨은 줄로만 아는 풀빛, 그리울 때
산그림자 슬며시 내려와
깔리는 법을 아는가.
눈썹 위에 눌린 천장을 보며
아들 낳고 딸 낳고
나머지는 옥돌같이 호젓이 앉았다가
눈감는 법을 그대는 아는가.




이장우 화가(61) 하면 많은 사람이 대구미술협회장을 떠올린다. 그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대구미술협회장을 지냈다. 화가라고 하면 작업실을 지키며 묵묵히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작가는 작업하는 데만 머물지 않고 미술과 관련한 다양한 대외활동을 벌여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장르의 예술인, 특히 시인들과 교류하면서 미술 이외의 장르와 교류하는 활동을 펼쳤다. 현재도 한·중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작가회의 공동의장, 아름다운 동행 대표, 대구미술사랑포럼 운영위원장 등을 맡아 대구미술협회장으로 있으면서 보여주었던 그만의 추진력을 다시 한 번 드러내고 있다.

단순한 미술작업을 넘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다보니 이 작가는 다른 장르의 예술인과도 친분이 두터운데 그 가운데서도 서지월 시인(60)과의 관계가 각별하다. 그만큼 미술과 시의 다양한 접목 및 교류를 시도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의 만남은 1989년 동아쇼핑에서 열린 ‘시인과 화가의 만남’이라는 시화전이 계기가 되었다. 이 행사 전부터 언론 등을 통해 서로 이름은 들어왔지만 직접 만나서 일을 해본 경험은 없었다. 이 시화전에는 시인과 화가 각 25명씩 참여해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멋진 전시공간을 만들었다. 이 행사를 주도한 이가 미술 분야에서는 이 작가, 시 분야에서는 서 시인이었던 것이다. 이 행사는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었으며 그 이듬해 앙코르전을 동아백화점에서 열었다. 이 전시는 단순히 두 사람의 친분을 쌓아준 것을 넘어서 대구의 젊은 시인과 화가들의 교류의 장을 만들어주었다는 의미도 있다. 그 이후로 시화전이 많이 활성화된 것이다.

그 시화전을 계기로 이들이 30년 가까이 긴 우정을 나누는데는 두 사람의 작품이 가지는 공통성이 큰 힘이 되었다. 전원적인 자연풍경과 사물의 서정성을 화폭에 주로 담아온 이 작가와 자연 및 인간이 가지는 순수성, 전통적인 숨결을 노래해온 서 시인은 장르는 다르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작업방향이 비슷했던 것이다. 여기에 예술인으로서의 강한 창작열, 예술인의 고달픔 등도 한몫을 했다.

“아마 동병상련의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저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결코 쉽지 않은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서 시인이 왠지 좋고 마음이 갔습니다. 서 시인이 제 화실에 먼저 와서 작품을 보고 간 뒤 제가 가창에 있는 서 시인의 시골집을 찾았지요. 시골집에 다녀온 뒤 서 시인이 사는 방식에 더욱 매료됐습니다.”

이 작가는 서 시인의 사는 방식이 그의 시와 너무나 일치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다고 밝혔다. 서 시인의 시가 자연을 소재로 하고 인간적인 감성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데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사는 서 시인의 삶이 그의 시와 흡사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 작가의 말에 서 시인은 자연을 소재로 삼아 작업하는 이 작가의 삶도 그림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이 시화전 이후 이들은 여러가지 일을 통해 또다른 호흡을 맞췄다. 1990년대 초반 영남일보에서 시와 그림을 함께 보여주는 코너를 신문에 마련했는데, 이 코너에 이들이 나란히 그림과 시를 게재하게 된 것이다. 1992년 이 작가의 두번째 개인전부터는 이 작가가 개인전을 열 때마다 서 시인이 직접 시를 적어주어서 전시 팸플릿에 실은 것은 물론 전시장에 시와 그림을 함께 전시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지금까지 총 12회의 개인전을 열었는데 두번째 전시부터 단 한번도 서 시인은 자작시 후원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 작가는 서 시인에게 “따뜻한 후원이 너무 감사하고 전시를 하는데 큰 힘이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서 시인은 “이 작가의 그림을 보면 저절로 시가 쓰고 싶어진다”고 했다.

“이 작가의 그림을 보면 마치 제가 이 작가의 캔버스 속 자연풍경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으니 시가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별것 아닌 제 시를 고맙게 받아주고 전시장에 그의 그림과 나란히 걸어주는 것이 오히려 고맙지요.”

이뿐만이 아니다. 서 시인은 그의 제자를 불러 이 작가의 오프닝에서 그의 시를 직접 낭송하게 하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배려가 한두번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이 작가는 때때로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지난해에 열린 제 개인전에서는 서 시인이 축시도 적어주었습니다. 제 전시 타이틀이 ‘꽃들의 향연’인데 같은 제목의 축시를 적어준 것은 물론 전시작들을 보면서 받은 느낌을 담은 시를 여러 편 적어주어서 그림과 같이 전시했지요.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상당수가 일반 전시와는 다른 느낌이 난다며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시를 적어 전시장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서 시인의 마음씀씀이를 보면서 우리 두사람의 우정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지난해에는 이 작가가 지역의 젊은 작가들을 도와주기 위한 예술인 모임인 ‘아름다운 동행’을 결성하고 이를 기념한 전시도 펼쳤는데, 서 시인이 큰 도움을 주었다.

“친구가 좋은 일을 하니 당연히 거들어야지요. 저만이 아니라 제가 알고 있는 예술인들도 여러 명 동참시켰습니다. 특히 전시 오픈식 때는 제가 그 전시를 위해 쓴 시에 계명대 음악대 권은실 교수가 곡을 붙여 소개하는 음악공연도 펼쳤습니다.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예술행위전으로 행사를 확장했는데 관람객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이 작가가 하는 일에 서 시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주는 만큼 이 작가도 서 시인의 활동에 도움을 주려 노력하고 있다. 서 시인은 중국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대구의 시인을 비롯해 예술인들을 중국에 소개하고, 중국의 예술인들을 대구지역에 알리는 역할도 해왔다. 현재 만주땅 전역에 있는 중국 조선족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하는 한·중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작가회의를 이끌고 있는데 이 작가와 서 서인이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서 시인은 중국 조선족이 만드는 문예잡지인 ‘장백산’의 편집에 관여하고 있는데, 조선족 시작품과 그림을 나란히 게재하는 ‘시와 그림 지상전’이란 코너에 이 작가의 작품이 매월 실리고 있다. 이 작가가 적극적으로 그의 작품 이미지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다 보니 서 시인은 이 작가가 중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움도 주려 한다.

“오는 9월 지린성 지린시조선족문화예술회관 주관으로 열리는 한·중 미술작품전 및 시화전, 12월 하얼빈조선족문화예술회관과 송화강잡지사 주관으로 마련된 한·중 미술작품전 및 시화전에 저와 이 작가가 함께 참여합니다. 중국 조선족은 물론 중국의 다른 민족에도 이 작가의 아름다운 작품을 널리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됩니다.”

이들이 서로의 작품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는 것은 작가로서 일반인의 사랑을 받고 싶은 자연스러운 감정도 있겠지만 점점 각박해져가는 세상에 예술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고 있는 상대에 대해 서로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장르를 인정하고 그 장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예술인으로서의 포용력과 모든 예술은 하나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도 이들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이 작가는 서 시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드러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상당수 예술가들이 자신의 장르를 최고로 생각하고 다른 장르를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서 시인은 이런 경계심이나 선입견이 없습니다. 작품이 좋다면, 그리고 자신의 예술정신과 잘 맞다면 어느 장르와 상관없이 교류하고 소통함으로써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지요. 저도 예술인이지만 이런 생각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이 작가의 말에 서 시인은 오히려 “이 작가가 이런 것에 더 적극적”이라며 “그에게서 배우는 게 많다”는 말을 한다.

최근 예술계의 화두는 융합이다. 다른 장르끼리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데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이런 다른 장르 간의 융합을 이끌어온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 개척자 정신은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들의 만남이 잘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의 우정과 작품이 더욱 아름답고 가치가 있는 듯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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