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5    업데이트: 24-03-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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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간을 엿보다 / 대구신문 / 2020.05.
아트코리아 | 조회 210
화간을 엿보다



쏭쏭 썬 파를 올리브유에 볶는다
파향 가득한 프라이팬에
옷을 벗기고 적당한 크기로 손질한 싱싱한 오징어를 밀어 넣는다
고추장 고춧가루 깨소금 그리고 오이 당근 양배추 등
여러 채소들이 같이 어울리기 위해 뜨거워진 양념 기꺼이 덮어쓴다
각자 끓어오르면서 야동의 신음 커진다
커질수록 자신의 맛과 향을 더 내어놓는다

가스불은 그들의 절정을 위해 파란 불꽃을 한껏 피워낸다
도저히 마음 모을 수 없는 불과 물, 기름이 서로 사랑하면
모두가 이다지 맛있는, 향기로운 시간이 된다는 걸
칠순이 다 되어 깨닫다니!

하물며 파도 잘게 썰리어 뜨겁게 달구어지면 향을 내뿜는데
불이 아무리 뜨거워도
평생 달구어지지 않는 나를 석녀라, 여걸이라 자랑삼았으니
빈 껍질과 은행 열매 같은 구린내만 남을 수밖에

◇정인숙= 경산 자인 출생. 경북대 문리대 국어 국문학과 졸업. 1993년 계간지<시와시학>으로 신인상 수상. 시와시학시인회 회장역임. 만해 ‘님’ 시인 작품상 수상 시집<바람다비제>(10).대구시인 협회상 수상(15).경맥문학상(20). 시집: 연인, 있어요(20)외 다수

<해설> 누군가 꿈속에서 죽어보니 그곳도 공허하다고 한다.평생 버티면서 싸워도 별일 생길 것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매일매일 열심히 싸워야 오늘도 별일 없이 살 수 있다. 인간은 삶을 살아가는 주체이면서, 그 주체인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존재이다.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원형에 해당하는 자아가 있으며, 이 미성숙한 자아가 성숙한 자아로 나아가는 것이 삶의 여정이다. 진짜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자유란 아는 것을 안다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모르는데 아는 척, 없는데 있는 척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그냥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가득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현재를 기록하는 건 과거를 더욱 빛나게 하고 내일의 나에게 힘을 부여한다. 지금 보는 하늘이 생에 다신 보지 못할 예쁜 하늘일 수도 있다. 아름다움은 지어내지 않아도, 그저 길가의 패랭이꽃처럼 지지 않고 해를 넘기고 달을 거스르며 자리를 지킨다. 시도 단편도 쓸 일이 없었으면 더 좋았을 공허하고 아득한 인생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시간과 방향을 버린 여행자였다. -성군경(시인)-

출처 : 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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