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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 시인 30주년 '시가 예술을 품다' 콘서트 열다 / 국민뉴스 / 2021/12/09
아트코리아 | 조회 282


[국민뉴스=문해청 기자] 대구시낭송협회(회장 이유선)는 4일 달서구 수밭길 43(도원동) 월광수변공원 내 예술 공간 라포엠에서 정숙 시인 시(詩) 30주년 ‘시가 예술을 품다’콘서트를 개최했다.

 여는 시(詩) 「도배장이」를 낭송한 문기명 사회로 축사는 이하석 시인(대구문학관장), 윤일현 시인(대구시인협회장), 이구락 시인(전 대구시인협회장), 김용락 시인(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이 했다. 이진숙 시인 「흰 소의 울음 징채를 찾아」, 박선미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김홍규 「돛대」, 김연미 「수성못 속엔 탑이 있다」 시낭송가(詩朗誦家)는 정숙 시(詩)를 낭송했다



무용가 장요한(장엔터테이먼트 대표, 제주오름무용 예술감독) 시무용 연출, 시(詩)행위예술가(行爲藝術家) 이유선 시인(대구시낭송협회 회장)이 퍼포먼스, 전미정(칼로스 단원) 플루트 시연주, 정숙 시(詩)를 권효정 작곡가 가곡(봄밤, 설익다 / 안개꽃, 흰 그늘)을 지어 시가곡(詩歌曲)으로 바리톤 김응화(봄밤, 설익다), 소프라노 김경진(안개꽃, 흰 그늘)이 불렀다. 닫는시로 우정진 「우포늪에서」를 낭송했다.



이날 용학도서관 시창작반(이형국, 권영숙, 이은희, 고경하, 문해청)회원, 본리도서관 회원, 대구문학아카데미 현대시 창작반 회원, 삼국유사 회원, 불교문인협회 회원, 시와시학 회원, 시와반시 회원, 대구시인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 대경지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대구지부 회원, 대구시낭송협회 회원 등이 참석했다. 

정숙 시인(본명 정인숙)은 1948년 경북 경산 자인 출생으로 경북대학교 문리대 국문학과 졸업하고 경주 월성중학교 국어 교사(전), 1991년 계간지 '우리문학'으로 등단, 1993년 계간 시전문지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재등단했다.



경산 자인에서 큰 과수원을 운영하는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셋째딸로 나고 자랐다. 지금은 대구에 살고 있지만, 고향인 경산을 떠올릴 때면 들장미가 가득 피어나던 과수원의 들과 개울, 계정숲과 제석사에서 놀던 어린 시절의 향수가 고스란히 떠오른다고 한다.
 
어린시절에는 워낙 읽을거리가 없었던 때라, 아버지와 오빠를 따라 월간잡지 ‘사상계’ 잡지를 탐독하기도 하였는데, 평소 독서량이 많았던 정숙시인에게 예술적인 성향이 짙었던 아버지는 “뭘해도 크게 해낼 것”이라며 셋째 딸에 거는 유독 기대감이 크셨다고 한다.



소녀시절에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해 감명을 받아, 문학작품 쓰겠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던 문학 소녀였으나,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시를 쓰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한다. 정 시인은 자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건너가 중, 고교시절을 보냈고, 경북대학교 문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당시 국문과 교수였던 서원석, 김춘수 지도하에 수학하였다.

졸업후 1970년에는 약 4년간 경주 월성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결혼을 위해 교직을 그만두고, 한 가정의 맏며느리이자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다. 세상 물정을 모르던 신출내기 교사였던 그는 결혼 이후 30년간 가부장적이고 보수성 짙은 집안분위기에서 시할머니, 시부모님을 모시는 시집살이를 하며 오로지 희생으로 인내해오면서 자신이라는 존재를 억누르고 보수적인 집안 가치관에 묵묵히 따라왔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정숙 시인은 그렇게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30년간의 시집살이 이야기가 무색할만큼 얼굴에서 그늘을 찾아보기 힘든 밝은 얼굴이었다. 얽매인 시집살이를 병행하면서 애써 밝은 모습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내면이 지쳐있었던 정숙 시인은, 소설을 공부하고자 들어간 대구 문학 아카데미에서 박주일 시인으로부터 지도를 받게 되었다.

‘내가 쓰고자하는 소설이 시 한편에 담길 수도 있다’는 깨우침을 계기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1991년에는 [분재] 외 4편으로 91년 ‘우리문학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나, 문단에서 몇몇 특정 잡지의 등단 이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완고한 현실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발간해낸 정숙 시인의 첫 시집이 바로 1991년의 연작시집 ‘신 처용가’이다.

 발간 당시 첫 시집 신처용가의 반응은 같은 처지에 처한 여성들로부터 열렬한 반응을 일으켰고, 향가인 처용가를 패러디한 ‘웬 생트집?’ 의 개성적이면서도 문제제기적인 화법은 ‘술 한잔 먹고 아내에게 주정을 하고 생트집 잡는 경상도 남자들’에 대한 일갈이기도 했다.

 이 시집에서는 전반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사고관에 사로잡혀 며느리의 역할, 아내로서의 역할, 어머니로의 역할로 사이에서 자아를 상실해버린 여성의 희생에 대한 한탄과 남녀의 진정한 평등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정숙 시인의 말에 따르면 “주변에서는 처용의 모델이 남편이 아니냐고 놀리지만,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경상도의 보편적인 남성상을 담았고, 여성인 자신이 시적화자인 처용 아내의 심정에 절실히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쓸 수 있었다” 고 한다.

가족이라는 굴레를 위해 헌신했지만 남겨진 것 없이 애달프고 공허한 여성 심리를 다루면서, 남성적 권위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극단적인 대립이나 비판으로만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사랑과 믿음, 상호존중을 통한 인간회복을 관계 회복의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있는 작품집이다.

자신의 시집 연작시에는 주부의 입장에서 본 여성들의 춤바람에 대한 풍자와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휴거 등 1990년대 사회상이 소재가 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정숙 시인은 다시 3년 동안 새롭게 공부하며 시의 기본과 현대시의 모습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1993년도에 ‘시와 시학’을 통해 재등단하여, 작품활동은 물론 ‘포엠토피아’와 ‘용학도서관’ ‘본리도서관’ ‘대구문학 아카데미’을 통한 후배 시인 양성을 지금까지 겸해오고 있다.

40대의 비교적 늦은 나이의 등단하기는 했지만, 나이 지긋한 중진 시인에 비해서는 시가 젊고, 그 중심에 자신만의 개성과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으며, 젊은 시인들보다는 깊이를 겸비하고 있다는 점이 고루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일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정숙 시인은 자신의 시를 “어렵지 않고 소설처럼 내용이 있고 재미가 가미된 시”라는 정의를 내린다. 대부분의 시작품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가부장제에서 겪는 아픔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여성의 일상생활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내용이 어렵지 않고, 시를 모르는 분들도 아마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시 ‘휴화산이라예’도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사화산(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로 시작되는 감칠맛나는 여성톤의 경상도 사투리에 낭독의 묘미가 있어 독자들로부터 애송되는 시다.

“흰 소의 울음을 찾아” 에서는 울음을 속으로 삼키면서 함부로 울어서는 안된다는 철학적 인생관이 드러나있다. 참고 견디고 삭혀 시로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시인 본연의 자세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때로는 일생에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던 당사자인 시어머니께서 꼭 30년만에 돌아가셨을 때는, 고부간에 부대끼며 한편으로 의지하기도 했던 기억에, 한동안 당황과 적막 속에서 보내야 했던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항상 엄격하게 대하였고, 그 와중에 시댁 식구들의 수발까지 도맡아 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하기도 했다.“시가 진실이고 나의 삶이 시 속에 다 녹아있다”는 말 그대로 지금은 회한의 세월들이 내면에 쌓여서 삭혀져 시인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고 한다.

시에서처럼 모든 사람이 주는 상처를 ‘징채’로 생각하고 받아들일 때야 ‘징’소리가 더 깊은 울림을 내게 된다는 깨달음을 직접 실감한 것은 그녀가 시를 쓰는데 있어서 귀한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시집으로 『신처용가』『위기의 꽃』 『불의 눈빛』『영상시집』『바람다비제』 『유배시편』 시선집 『돛대도 아니 달고』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전자 시집 『그가 날 흐느끼게 한다』, 한국대표 서정시 100인선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등이 있다.

한편 정숙 시인은 2010년 1월 만해 ‘님’ 시인 작품상 수상 시집 <바람다비제>, 2015년 12월 23일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2019년 대구칼라풀축제에서 대구문인협회 주최로 정숙 극본 ‘봄날은 간다1’ 시극공연, 2020년 2월 경맥문학상시와시학시인회 회장역임,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지회 회장 역임, 현재 본리도서관, 용학도서관, 대구문학아카데미 현대시 창작반에서 강의하고 있다.
 

흰 소의 울음 징채를 찾아

- 정숙 -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 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낙엽까지 휩쓸어 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은은히 퍼져 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 정숙 - 

청매화 다투어 피는 달밤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 비비 꼬다가
젊은 날 그렸던 그림을
다시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고작 A4 용지 두 장 크기 한지에
이리도 많은 꿈을 그려 넣었었구나
흰 물감으로 연꽃과 연밥들을 지우다 보면
그때 그 욕심들이 양심에 걸린다
새와 나비들도 먹물로 지워 버린다
흉한 상처의 얼룩들만 남는 세월,
그 무게에 짓눌린 나의 한지는
달빛도 스러진 봄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그래도 다 못 지워 슬픈 눈빛으로
입술 달싹거리는 나부상,
노랑나비와 청승맞은 달빛을
바라봐야만 하는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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