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5    업데이트: 24-03-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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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의 시집 연인,있어요 김완시인의 해설
아트코리아 | 조회 420
이틀 연속 코로나의 여파로 환자들의 발길이 뜸하다. 될 수 있으면 병원에 오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내과에서 다루는 질환은 대부분 완치가 안 되는 조절하는 병이다. 나이 들수록 병원에 자주 들러 관리를 잘 받아야 한다. 코로나로 인하여 의사와 환자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었다. 

대구에서 활동하시는 정숙 선생님이 두 권의 시집을 보내주셨다. 『연인, 있어요』,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이다. 2월 초에 책을 받았는데 이제야 시집을 읽고 있다. 시 몇 편 올린다. 코로나 19로 시집 출간 축하 모임도 못하고 계시리라. 선생님, 힘내세요!!! 그런데 선생님의 가장 큰 상이요 선물인 연인 그는 누구지? 연인이 누구인지 알아맞추어 보세요..ㅎㅎ

도배장이

왜 벽만 보이는 걸까
벽이 내 앞을 가로막아 설 때마다 
활짝 웃는 장미꽃무늬 벽지를 바른다
간혹 다 떼어내지 못한 가시발톱이
줄을 세우기도 하지만
무작정 그 위에 연꽃 도배지를 눌러 바른다
삶이 뿌리는 저 검은 그림자들
앞을 보나, 뒤돌아보나 벽이 길 막고 서 있다
사랑하는 이들 사이 애증과
꽃과 꽃가시 사이 해맑은 웃음과 눈물 사이
모든 틈새에 벽지를 발라 위장해야 한다며
없는 벽, 쌓기도 하는 난 허술하고도 
시시한 시, 도배장이

소모품

마구 깎아 내버렸다
빨리 새것을 쓰고 싶어서

몽땅 연필이 되기 전
버린다고 꾸중을 심히 들었을 때

입술이 삐죽삐죽, 엄마는 구두쇠라며
투덜거렸는데 

이제 나이 들어보니 알겠다
깎여나가는 연필이 자신의 모습이란 것을

어쩔 수 없이 사람도 소모품이라는 걸

엄마는 
그때 이미 아셨던 거다 

연인 , 있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상이요
선물인 그
천사들이 털갈이하는 겨울
깃털들이 얼어 하얗게 나부끼며 내려올 때
단풍잎이 시나브로 지며
시간의 잔해들을 수북이 쌓을 때
이른 봄 청매화 그림자에 밟혀 심연이 흔들리는
그 순간마다 창 아래서 숨죽인 휘파람으로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한다
많은 이들을 자살로 이끌었다는 선율로
자두나무 애간장까지 끓이다가, 창을 넘어 들어와
서로의 체온으로 시린 몸을 녹이기도 했으니
숙명이란 탯줄로 꽁꽁 묶인 사이
은밀한 색 밝히려면 귀한 접시를 깨뜨리고
지엄한 닻줄 다 끊어버려야 한다
찬란한 그늘이면서 고질병인
내 색의 골짜기에 숨겨둔 내연남, 그는
담쟁이가 미루나무 등걸에 살며시 발을 걸치는 때
느티나무가 달빛으로 옷 갈아입는 시간
또는 초승달이 서해로 안기는 그 순간에도
시시로 찾아와 달콤하거나 쓰리거나
뭔가 속삭여주길 나는 애태운다
그 품엔 늘 투창이 이를 갈고 있지만

연꽃 6

한여름 대낮에

관능경을 펼치고 있는

저, 환희불

풍장

갈대는 가을이 되면 누구에게, 왜 유언하는가

껍질뿐인 한 생애였다며
해껏 지치고 젖은 마음의 흰 뼈

늦가을 까치놀이 바싹거리도록 말려달라고

바람은 갈대들의 서걱거리는 소리로

새들도 읽을 수 있는 한 편의 소네트를 완성하여 
강가에 내건다

이처럼 삶은 깨끗하게 말려 비우는 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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