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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숙의 시 읽기 [시와 소금 ] 이 계절의 시
관리자 | 조회 1,290
스크랩] 이 계절의 시 [시와소금 12년 가을호] 정 숙| 커피가 있는 자리(자유게시판)
별밥 | 조회 120 |추천 0 | 2012.11.02. 10:31

푸른 연밭의 그늘
 
             서정임


한 겨울 연밭
플라스틱 간이 의자처럼 들어앉아
꽃대를 키우던 푸른 연잎들 흔적이 없다
군데군데 남아 나딩굴고 있는 누런 대궁들
잉크 바닥나 내던진 볼펜자루다

연밭둑을 걷는 내가 무겁다
아직도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진흙덩이들
눈앞에 떠오르는 기억의 잔영이 선명하다
나도 언젠가는 저 연밭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으리라
단계 단계 밟아 올라가리라
노트 위에 쓰고 또 쓰던 다짐과 주의해야할 행동지침들,
하지만 오로지
목적을 위한
목적을 향한 맹신은 덫이었다
쉽사리 헤어나올 수 없는 진흙탕 속으로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드는 것이었다

호주ㅡ머니 속 대출금 상환을 독촉하는 고지서가 만져진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내준 월세보증금과 대학등록금과
친구의 친구까지 불러 모조리 쓸어 넣은 저곳
아, 한동안 내 젊음이 뿌리째 저당잡혀 있던 저 묘지

눈이 내린다
갑자기 들이닥쳤던 그날의 단속처럼 연밭이 온통 하얘진다

[ 시와 소금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인상 깊은 작품을 찾느라 잡지들을 뒤적이다가 만난 서정임 시인은 2006 문학 선으로 등단한 아직 시집 한 권 상재하지 않은 시인이다. 그러나 독자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감동을 주는 시인이라는 점에 놀랍고 반가웠다. 겨울 삭막한 연 밭에서 푸른 연 밭의 추억을 볼 수 있는, 얕은 시안에서 삽질을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파헤치고 들어가 다단계, 그 여름 꿈을 위해 저당 잡힌 삶의 그늘을 찾아낼 수 있는 끈질긴 상상력과 직관력의 연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못에서 거친 숨소리 하나 없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사회 현상으로 슬쩍 옮겨가는 체험과 체험의 변용과 비약, 꼬리를 슬쩍 비틀어 삼천포로 빠질 줄 아는 그 노련한 솜씨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겨울 연 밭을 가 본 적 있는가? 한 여름 연꽃 만발했을 때만 나비인양 떼 지어 찾아가지 않았는가 ? 잠시 시인으로서의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꽃만 보고 감탄사나 내지르는 난 옳은 시인이 아니지. 참시인은 겨울 찬바람에 까맣게 말라가는 대궁에 매달려 고개 꺾여 진 채 흔들리고 있는 연밥에서 과거 어느 때의 자신의 모습 또는 추위에 떨고 있는 누구인가를 연상하느라 가슴 아파하며 깊이 안타까움에 잠기는 사람일 것이다.
 또 달리 바라보면 잘 여문 씨앗들을 가득 품고 있어 한 겨울 연못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재생이든 연상이든 깊은 반성과 자비심, 사랑으로 시인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칠 수 있는 길이 있어, 고단한 삶을 연꽃보다 더 귀한 작품으로 가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밤잠 설치고 있을 것인가. 

 

 

고래사냥

강상기 

 

고래는 키우지 마라

청년이라면
고래를 키우지 말고
때려잡아야 한다

고래는
새우 등쳐먹지 않느냐?


[문학청춘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예사롭지 않다. 시의 행간에 많은 수다를 감추는 솜씨, 높은 양반들 은근슬쩍 골탕 먹이는  탈의 표정과 춤사위 아주 능수능란하다. 강상기 시인은 등단 사십년의 시력이 날카로운 통찰력과 풍자 해학의 대선배님이시다. 참여시는 대부분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듯 직정이 난무한다는 무식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이라 눈이 번쩍 뜨여지는 즐거움이 있다.
 다음 시 한편으로 시인의 작품성향과 모습을 미루어 짐작하는 일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똥밭에 사는 나를 구더기라고 비웃지 마라 똥밭으로 알고 사는 것은 구더기가 아니다 똥밭을 황금밭으로 알고 사는 구더기들아" - '구더기' 전문
 고래가 어떤 이들에게는 동경과 꿈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강상기 시인에게는 거대한 기관이나 권력의 독재와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힘없는 국민들 괴롭히는 그들을 짧은 시 한편으로 통쾌하게 웃어줄 수 있으니 시인은 참 위대하지 않은가? 삶과 현실의 단면을 가슴 밑바닥 예리한 촉각으로 도려낸 압축미와 독자들에게 사색과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하는 신선한 소재와 주제의 선명함에 부러움을 보낸다.
 시인은 모든 사물을 시시각각 제 마음대로 정의할 수 있는 위대한 창조주란 말 실감할 수 있는 여러 작품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러니 평소 해학과 풍자를 즐기는 처용아내의 매서운 눈매에 잡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매화무늬 진 필리핀산 수석을 그냥 얻다
이하석

이월 천둥이 흔들어야 속 여는 게 매화라지만,
이건 열대의 끓는 파도가 흔들어 깨운 것
공교롭게도 꽃모양이 거친 제 몸 뚫고 나와
성근 抽象으로,
꼭, 피어있다.

臘梅 아니라도 雪中에 보는 매화는 어둠 머금은,
전망 밝은 향기를 갖는다고,
나는 돌에 물을 주어서 꽃빛을 키운다.

돌이 오래 걸려 제 몸에 지펴놓은 걸 바닷물이 닦아
드러낸 매화는 돌 기르는 이가 자주 물주고 쓰다듬어 키워야
더욱 밝아진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멀리서 온 봄을 제 것으로 기르는
겨울이 있다.


[ 시안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경주 탑곡의 사방불 바위를 본 적 있는가? 남산 한 자락에 세 개의 탑이 있다고 탑곡이란 이름이고 큰 바위 사방에 부처와 무려 43개의 조각이 새겨져 있으니 사방불로 불린다. 별로 가파르지 않은 곳에 거대한 바위가 천년 넘도록 발기한 채 부처와 탑, 승려들을 새겨 온 세상이 불국토 되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딱하기도 하면서 그 고집스런 집념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시력 근 사십년이 넘는 이하석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뭔 뚱딴지같은 소릴하고 있는지 투덜거리며 다시 읽고 또 읽어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무슨 인연인지 이하석 시인은 돌과 사랑에 빠진 시인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뼈만 남은 돌 한 개는 찾고 마는 식성인 그가 그 말없는 돌이 밀어 올린 매화 한 송이에서 향기까지 피워내는 온기를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신문사 현직에서 물러난 그는 매우 춥고 쓸쓸한 자화상을 보며 봄을 기다리느라 공연히 수석에게 주문을 걸고 있는 건가. 아님 느긋한 마음으로 그런 외로움을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매화는 무조건 설중매로 아는 내 무식한 관념에 쇄기를 박는 시이기도 하다. 매화에도 여러 품종이 있어 설중매, 홍매, 수양매, 납매臘梅로 나눈다고 한다. 그 중 납매臘梅는 엄동 섣달에 피어 노랑 빛으로 꽃장을 오므리고 땅을 향해 머리 숙인 고급 매화종류. 그는 이미 많은 꿈을 이룬 시인인지라 말은 설중매라면서도 실은 납매 한 송이 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고결한 아름다움과 사랑에 푸욱 빠지고 싶어 무뚝뚝한 돌 쓰다듬으며 단디 발기한 채.
 그의 많은 초기 시들이 문화적 충돌에 대한 비관적 시였지만 요즘의 시들은 그 아픔들을 품어 안겠다는 듯 참 따스하다. 어쩜 처음부터 그 깊은 속마음은 그 모든 슬픈 현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겨울이라며 그들을 위해 미륵불에 기도하는 자세로 향기로운 봄을 꿈꾸며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묵호등대 
이동순


저녁 뱃고동 소리 들려오면
가뜩이나 먹빛 바다 더욱 검어지네

도째비골 아래로 채령이네 집
모퉁이 돌아 논골 쪽으로 내려가면 석구네 집
또 그 옆으로는 자야네 집

어스름 속에서 등대는 슬픈 얼굴을 하고
종일 뱃일하다 돌아온 남편과
종일 오징어 배 따고 돌아온 아내가 싸우는 소리를 듣네

창백한 얼굴로 가슴 앓다
혼자 먼 길 떠나간 지아비 생각하며
이 밤도 등대 앞에 젊은 여인의 한숨 소리를 듣네

오래된 공동묘지 옆에 우뚝 서서
길 잃은 사람들의 앞을 밝혀주던 묵호 등대

[ 시안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이동순 시인은 경상도 토박이면서 왜 묵호인가? 시집 전체가 묵호 이야기로 연작시를 쓴 교수님이면서 백석 시인 연구로 유명한 평론가 시인이다. 거의 사십 여 년 전 대학시절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후 편지 서로 주고받은 첫사랑이 살던 지역이 묵호란다. 물론 이 이야기는 그냥 농담일 수도 있겠지만 묵호를 한국인 모두의 고향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시인의 말과 ‘시로 쓴 풍물화첩(風物畵帖)’ 을 위해 아주 적절한 재생적 상상력으로 표현했다는 점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화려한 묘사를 위해 기교를 부리거나 언어 비틀기를 해서는 마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피난살이 중 태어나 열 달 만에 어머니를 여윈 분이어서 그런지 작고 가냘프고 여리고 보잘 것 없는 것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것이 시인의 할 일이라고 주장하는 시인의 시들 중 특히 이 ‘묵호등대’는 이동순 시인이 등대가 되어 그들의 슬픔을 보듬어주고 싶은 따스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나라 한과 눈물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가요사를 연구하고 노래 부르는 것인가? 
 이 시를 읽으면서 가까이 하기 어려웠던 이동순 시인에 대한 의문점들이 점점 풀리는듯하다. 주위에 친구도 별로 없이 혼자 묵묵히 쓰고 연구하고 색소폰을 연주하는 시인의 모습 떠올리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요즘 너무 휩쓸려 다니느라 며칠 째 시 한편 쓰지 못했으니 이 일을 어이할꼬! 시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시인 자신만의 진정성과 개성을 찾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인 것을. 잘 먹고 잘 살면서 늘 자신의 쓸쓸함만 노래한 나의 시들이 부끄러워진다.

 

시인의 침대
문정희

시인의 침대는 에트나 산에 놓여있다
절벽 끝의 화산!
굳이 고독 끝의 분화구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 산 아래를 본다
오직 앞을 향하여 두 발로만 걷는 사람들이
모두 죽은 사람들로 보인다

왜 뱀처럼 온 몸으로 기어가지 않을까
왜 허공을 걸어온 저녁의 새처럼
두 발을 깃털 속에 넣고
생을 작고 동그란 돌멩이처럼 만들어
쩡쩡 내던지지 않을까

가장 화려하고 뜨거운 안감을 댄 잿빛 수건 같은
심심함*을 선물로 받은
시인의 침대는 에트나 산에 놓여있다
잿빛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 속에 꿈꾼다


 [ 시와시학 2012년 여름호]

시 읽기

 시는 몸이며, 몸의 길이며, 생명이라는 문정희 시인, 시인은 늘 자신을 반성하면서 자술서를 쓰다 쓰러지는 죄수라며 자신을 닦달하더니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라고 주장하는 한병철의 저서 ‘피로사회’에 흠뻑 젖어 있는듯하다.
 시인은 에트나 화산 위 침대에 누워 자신이 달달 볶아지는 느낌에도 어쩔 방도가 없어 우울하고 고독한 그러면서 이랴! 이랴! 성과급 채찍질에 엉덩짝 두드려 맞는 모습을 신선한 비유로 절실하게 잘 그려주고 있다. 좋은 시를 쓰지 못하면 금세 낙오자가 되어 버릴까봐 두려운 시인의 사회, 그러면서도 여전히 꿈꾸고 있는 화려하면서도 잿빛 수건 같은 심심함에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인가? 진작 시작詩作에 나른함을 느끼면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무능을 깨우쳐 주는 작품인 것 같다. 시가 밥도 되지 못하지만 만약 시가 없다면 세상이 삭막해서 어쩌나? 쓸모없는 것의 쓸모, 아무 쓸모없는 것이 시라는 걸 알면서도 그것이 가슴 아픈 사람들을 살아 춤추게 하는 힘인 것을.
 한창 시 공부하던 시절 문정희 시인의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를 읽으며 기둥 세우려는 남성들을 참 통쾌하게 웃었다. 이제 가정을 지켜야 하니 ‘기둥을 자르다니요?’ 하며 버릇없이 반박하듯 들이대기도 하지만 남자들 보다 더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 다하는 시인이 같은 여성으로서 참 든든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시상식에서 김종길 대시인이 우리나라 여성 시인들 가운데 지금 처용아내와 문정희 시인 입담이 제일 거세다고 하셔서 와르르 웃었는데 어쨌거나 존경하는 시인 중 한 분의 작품 속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행운 아니겠는가? 
 

 

 

 

 

감은사지感恩寺址에서
송수권


쌍탑이 노을에 잠긴다
감실 속 할매부처 수그린 이마에
살짝 저녁노을이 앉는다
자애로운 미소가 바닥에 깔린다
천년 대종이 운다
마음으로 듣는
그렁그렁, 이 맥놀림의 소릿결은
어디까지 가려는가
달빛이 오면 저 감포 바닷가
대왕암
저승 속까지 스미겠다
 [ 2012년 시선 여름호]

시 읽기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와 시로 독자들을 울린 바 있는 송수권 시인, 토속적인 전라도 사투리가 자신의 표준말이라더니 요즘 곤쟁이 젓갈 맛이 약간 서구화된 느낌을 주는 시 한편 읽는다.
 소리의 세기가 주기적으로 변하게 되는 현상을 맥놀이라 한다. 노을 지는 감은사지에서 그리움이란 말 한 마디 없이 파장이 크게 여리게 물결치면서 한참 잊어버렸던 그리움의 정서를 환기 시키는 서정시, 역시 노련한 선배님의 묘사력에 감탄하는 마음으로 젖어든다. 마치 서동이 선화공주를, 또는 백제의 한 역신이 처용아내의 달빛미소를 찾아 감포 바닷가를 헤매는 듯 아련한 형상이 그려지는 것은 감은사지 산자락에 내 아버지와 첫 시집 ‘신처용가’ 속 처용의 모델이 된 고모부 두 분이 잠들어 있기 때문인가?
 어느 시인이 아름다운 경치는 시가 될 수 없다고 했지만 노을 진 저 쌍탑 속에서 송수권 시인은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천년대종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그 그리움이 독자들에게 은은히 멀리 전달되는 것이리라. 약한 감성을 지닌 시인의 눈물 맺힌 눈망울이 오버랩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다.
 요즘 대부분의 젊은 작품들이 초현실적인 상상력이나 지나친 묘사 때문에 주제를 찾을 수 없거나 너무 건조하다며 쯧쯧 혀를 차는 것은 단순히 나이 탓인가? 그리움이란 징채에 몸 내어 맡기면서 마음의 징 소리 한 번 징, 하게 울릴 그 날이 오려면 아득한 저 시하늘의 게슴츠레한 눈빛을 얼마나 더 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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