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5    업데이트: 24-03-1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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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을 위한 광시곡 狂詩曲 [이성천 ] 불의 눈빛
정숙 | 조회 641

여성들을 위한 광시곡 狂詩曲


정숙 시집 <불의 눈빛 > 해설/ 문학평론가 이성천


 

1. ‘시인의 여자'들

 

 

정숙의 세 번째 시집 『불의 눈빛』은 그동안 처용의 아내를 자처해 온 시인이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우리 시대 여성들의 고난한 삶을 노래한, 일종의 ‘여성들을 위한 광시곡 狂詩曲'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마치 “물너울이 살 비늘 툭툭 터뜨리며/피아노 건반 몸살 나도록 두드리”(「월광 소나타-달빛 여자 ? 2」)듯이 특유의 도발적이면서도 섬세한 상상력을 분출하여 우리 시대 여성들을 둘러싼 세계의 적막한 형상들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새 시집에는 각각의 소제목이 환기하는 것처럼 무수한 ‘여자'들이 살고 있다. 특히 ‘달빛 여자', ‘불의 여자', ‘늪의 여자', ‘거울 속 여자' 등이 연속적으로 출현하는 시집의 부분들은 가히 이 시대의 여성들에 바쳐진 헌정곡獻呈曲이라 할 만큼, 시인 자신을 포함한 여성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불의 눈빛』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한 생애/제 빛깔, 제 소리 다 지우고/하늘 그늘 뒤 그림자로 숨어서”(「낮달-달빛 여자? 1」) 살아가는 그녀들의 어머니와는 달리, 간혹 현실의 제도적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탈의 상상력을 꿈꾼다는 사실이다. 가렬, 시인의 분신이기도 한 ‘밤도장 찍는 여자'는 “차선 약간씩 넘나들며 사는 것도 참, 맛일 텐데”라고 속삭이며 “가끔 내 인주에 이웃집 연장으로/밤도장 끽”는 마음 속의 “우격다짐”(「어떤 차선위반-밤도장 찍는 여자」)을 몰래한다. 또한 ‘활 쏘는 여자'는 “쌍심지 켠 눈 꼬리로/ 지그시 깨문 입술로/ 가슴 속 끓어오르는 불덩이로” “매 순간 불화살을 쏘”며 “내 핏속에 회오리바람 일으킬/기회, 엿보고 있”(「고녁을 찾아-활 쏘는 여자 」)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시집 속의 누군가는 “오수 네 시경이면 도톰한 분첩 바쁘게 두드리며” “타오르는 몸의 불, 감당하지 못하는/ 여름 나무의 뜨거운 것들 잠시 꺼주는/ 소방수” (「분꽃들-불의 여자 ? 9」)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번에 정숙 시인의 여자들, 혹은 그녀들과 관련된 시적 상관물들은 불륜과 일탈, 탈주와 욕망과 같은 낯선 단어들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로 말미암아 시집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삶은 언제나 금기와 위반의 경계 지점에서 ‘흔들' 린다.

 

 

물너울이 살 비늘 툭툭 터뜨리며/ 피아노 건반 몸살 나도록 두드리는데// 그 여자/흐드러진 제 꽃잎 씻어 내리고 있다//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가는/ 그 고랑 깊은 선율의 되풀이에 휘감기면서// 그 사이/ 까아만 씨앗 하나가 눈을 뜬다// 그 시간, 먼 산 속에서 곰 한 마리/ 달을 덮석 문다/ 끝내는 붑괴어 어쩔 줄 몰라 컹컹 울부짖으며 -「월광 소나타 달빛 여자 ? 2」전문

 

달빛도 잠든 밤/ 외진 산길 나무들의 촉수와 더듬이를 깨우는/ 개구리 울음 그 속엔/ 불그스름하면서 봉긋한 그러면서 솜털 뽀송뽀송한/ 젖가슴, 수밀도가 스며들어 있다/ 저 마돈나의 밀실이 촛불 켜고/ 관능에 불이 붙기를 기다리는지 쓰렁쓰렁/ 꽃뱀의 비늘들이 죽은 제 혓바닥 다시 깨워/ 산의 밑뿌리에서부터 발싸심하기 시작한다

-「한여름밤의 몽상-달빛 여자? 3」부문

 

시집의 도입부에 위치한 위의 인용시들은 이 같은 여자들의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감각적 이미지의 활용이 돋보이는 이 시들은 ‘달빛 여자'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달'의 상상력이 전적으로 지배하는 가운데 쓰여졌다. 이 시들에서 ‘달빛'의 몽환적 이미지는 ‘곰'의 신화적 성격 혹은 ‘뱀'의 원형 이미지와 중첩되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달과 곰, 그리고 뱀의 본래적 이미지는 그것이 갖는 상상력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연작시 ‘달빛 여자'의 시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여성성과 모성성, 아울러 재생성과 주기적 순환성을 동반한 ‘달빛 여자'의 부드러운 이미지는 시이 후반부에 이르면 일순간, “끝내는 붑괴어어쩔 줄 몰라 컹컹 울부짖”는 ‘곰'과 “죽은 제 혓바닥 다시 깨워/ 신의 밑뿌리에서부터 발싸심”하는 ‘꽃뱀'의 이미지로 전이된다는 점이다. “월광 소나타”의 “깊은 선율의 되풀이에 휘감기면서” “흐드러진 제 꽃잎 씻어 내리고 있”는 ‘그 여자'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관능에 불이 붙기를 기다리는” ‘마돈나'의 형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러한 시적 전개 방식은 금기와 위반, “그 사이”에 놓여 있는 이 시대 여성들의 심리 상태를 밀도 있게 형상화하고자 한 시인의 의도로 파악된다. 따라서 “끝내는 붑괴어 어쩔 줄 몰라 컹컹 울부짖”는 “곰 한 마리”와 “관능에 불이 붙기를 기다리는” ‘마돈나'의 형상은 궁극적으로 오늘날 여성들의 심리적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인용시는 이처럼 ‘달', ‘곰', ‘뱀' 등의 기원적 이미지를 ‘재활용'하여 우리 시대 흔들리는 여성적 삶의 쓸쓸함과 비애 감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옛 어매들은 거의/ 가슴에/ 사리,/ 몇 알 품고 사셨지// 청도 운문사 입구/ 속 다 비우고 비워 맨살로/ 바람을 받아들이고 있는/ 해묵은 나무,/ 바람에 열린 치맛자락 맡기고 서 있는/ 해묵은 나무,/ 바람에 열린 치맛자락 맡기고 서 있는/ 실루엣 뒤로 반짝이는 저/ 보석, 살아 있는/ 사리탑/ 노루꼬리만한 한 뉘, 속 파서 내게 다 먹이느라/ 점점 빈 껍질이 되어 가시던/ 어머니

-「느티나무-늪의 여자? 3」전문

 

넌 밤마다 피 흘리고 있지 바다 밑으로 철길을 놓으려다가 파도에 밀려나고 부딪치면서 온몸 상처투성이로 피 철철 흘리고 있지 그래도 다음 날 밤이면 또 비뉘한 바다 품속으로 잠수하며

-「네 바다를 안 알고 있지-흔들리는 여자」부분

 

 

그렇다면 ‘정숙의 여자'들이 이렇듯 끊임없이 흔들리며 제도적 일탈을 꿈꾸는 근원적 이유는 무엇일까. 위의 인용시들은 우리의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느티나무-늪의 여자 ? 3」은 “옛 어매들”의 보편적 삶의 양태를 차분하게 기록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늪의 여자'로 표상된 “옛 어매들”에게 “가슴(마음)”속의 ‘흔들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해묵은 나무”와 같은 “옛 어매들”의 삶에는 ‘비움'과 ‘껍질'의 의미만 남아 있어 그녀들의 몸은 “사리 익어 가는 냄새”(「사리 익어 가는 냄새-노을꽃 ? 3」)가 날 지경이다. 반면, ‘흔들리는 여자'라는 부제가 환기하듯이「네 바다를 난 안고 있지」에서 등장하는 여자의 삶은 결코 어머니의 경우처럼 ‘보편적'이거나 순조롭지만은 않다. “상처투성이”, “피”와 같은 시어의 빈번한 출현은 이러한 사정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이 시에서 여자의 삶이 흔들리거나 굴곡진 이유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이제까지 발표된 정숙 시 세계의 성격과 새 시집에 기록된 여러 정황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그 원인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남성 중심적 제도의 이기성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구체적 항목은 희생성과 모성성에 대한 맹목적 강요, ‘해묵은' 성적 강제 및 몸의 억압 등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여자가 흔들리는 이유는 다른 누구의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 전부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현대 사회에서 정숙 시 세게의 여자들은 사회의 불합리한 관습과 왜곡된 전통에 의해 상처의 세월을 살아왔거나, 살아가고 있다. 위의 시는 이 같은 여성적 삶의 실재를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우리에게 제시한다. ‘늪의 여자'와 ‘흔들리는 여자' 연작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가치 질서와 오랜 ‘불화' 관계에 있었던 여성들의 삶과 그들의 소외감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리 익어 가는 냄새”가 배어 있는 어머니와 “빗금 마구잡이 긋기를 몰래 꿈꾸”(「시를 위한 광시곡-불의 여자 ? 3」)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삼은 정숙의 시에 안타까움과 애틋함의 정서가 자주 묻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 깊은 상처가 때론 빛을 키운다

 

여성적 삶의 왜곡된 구조와 남성 중심적 가부장체의 모순 상황을 깊이 있게 응시하면서 한편으로 여성의 고유한 정체성과 존재성을 부각하려는 시작 태도는 사실 정숙 시의 오래된 특징이다. 시인은 그동안 이미 두 권의 시집을 통해서 기존의 ‘남성서사'는 물론 여성주의 문학과도 차별화된 독특한 여성시의 한 사례를 우리에게 선보인 바 있다.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를 거침없이 구사한 이 시편들에서 그는 남성 중심의 지배적 문화에 찌들린 여성의 정체성과 그로 인해 억압받는 여성적 삶의 한계성을 투박하지만, 동시에 날 선 언어로 비판적으로 재시하였다. 예를 들어 첫 시집 『신처용가』에서 시인은 ‘처용 아내'를 시적 화자로 내세워 여성성의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구축하고 우리 시대 여성 정체성의 문제를 개성 있는 문체로 환기한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시집 『위기의 꽃』에서는 일상에서 발효된 유연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위기의 여자'들의 삶을 진솔하게 표출한다. 이 시집들은 공히 여성적 삶의 한계성을 드러내고 새로운 질서체계를 확립하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발현하고 있다.

 

서방님, 서방님에/ 외로움이 속 골빙 다 들었어예./ 뼈속 씨리게 샛바람이 다 들었어예./ 여편네들 허전해서예,/ 고 가슴에 날렵하게 한 마리 제비 키워서예,/ 그 제비캉 노닥ㄷ거린다고/ 또 칼을 빼시겠어예? 우짤랍니꺼예?/ 퍼뜩이지만예, 불품없는 우리 여편네들/ 여왕거치 귀케 모시데예./ 고 짜릿한 맛/ 우째 잊을 수 있을까예?/ 화투장 공산 달 밝은 밤 즐기다 보이/ 날 새는 줄 모리겠데예./ 희안한,/ 참 희안한 제비라 카이예.

-「희안한 제비라카이예-처용 아내? 3」전문

 

분명, 첫 시집 (『신처용가』에서부터 스스로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알린 정숙 시인은 여성적 삶의 고난함과 여성의 본능적 욕망을 진솔하게 발설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그야말로 ‘21세기형'의 처용 아내였다. 그 때문인지 시집의 주요 화자로 등장한 처용 아내의 목소리는 다소 도발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 시집들에 실려 있는 모든 시편들이 동일한 시적 주제와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엄정하게 말해서 이전 그의 시는 ‘소박한 순응주의'(김재홍), 또는 남성과 여성을 단순히 대립적 존재로 파악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대어 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성, 더 나아가 페미니즘 담론에 대한 이 같은 편견은 스스로 남성 가부장제도의 질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정숙 시인은 무엇보다도 여성과 남성을 대립 항으로 놓는 기존의 시적 대응 방식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해야 한다. 여성적 삶에 대한 편향성과 사소한 집착은 그 자체로 여성성의 문제를 온전하게 해결할 수 없는 까닭이다.

 

진주조개는/ 어쩌다 뛰어 들어온 모래알, 뱉어 버릴 수 없는/ 그 상처 가슴에 안고 살아가면서/ 쌓이는 외쪽생각의 시간과 손잡고/ 뱉어 내려고 몸부림치다 치다가/ 그냥 끌어안고 같이 되새김질하며 뒹굴며// 미운 정 고운 정 서로 자리다툼하다가/ 사랑이라는 얄궃은 운명 속으로 갇히면서/ 자신도 모르게 빛을 발한다// 흙에 묻힌 항아리가 김치를 익히듯이/ 캄캄한 지하 창고가 포도주를 익히듯/ 어둠 속에 자신을 가두고/ 늪이 되어 제 다솜을 고이 키운다

-「깊은 상처가 때론 빛을 키우는가-늪의 여자? 1」전문

 

그러나 “깊은 상처가 때론 빛을 키우는” 법인가 보다. 그만큼 이번 정숙의 시집은 여성 문제의 질곡을 끊임없이 제기하면서도 이를 다양한 표현기법과 양식으로 폭넓게 변주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시인은 꽃을 비롯한 식물 이미지의 은유를 통해 자신의 시 세계를 견고하게 구축한다. 이런 측면에서 “진주조개” 생애를 형상화한 인용시를 시인의 본래 의도와는 무고나하게, 그의 시 쓰기 차원과 결부시켜, 이 지점에서 ‘확대', ‘변용'해서 사용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다소 투박하고 평이했던 처용 아내의 노래가 진정한 우리 시대의 ‘향가'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이 시를 통해서 유추하고 싶은 것이다.

 

 

3. 꽃의 은유를 찾아서

 

정숙의 『불의 눈빛』에는 여자들이 기거하는 두 개의 ‘상징'적인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굳이 밝히자면 ‘벽'과 ‘거울'의 공간이 그것이다. 시인의 내면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이 공간은 주로 여성적 삶의 체험을 식물 이미지를 매개하여 순도 높은 상상력으로 꾸미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닌다. 정숙 시집의 한복판을 차지하는 이 공간들은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치장된 언어의 공간이자 신선한 상상력이 동원된 시적 공간이다.

 

장미가시 그녀에게 물었다/ 푸른 잎으로 숨길 수 있는/ 작고 날카로운 가시를 어떻게 만드느냐고/ 그러나 장미꽃은 생글생글 웃으며/ 하늘만 가리키고 있었다/ 나도 같이 한 참 바라보고 있으니/ 절로 웃음눈물 범벅이 되었다// 비바람에 한 생애 시달리다 보면/ 아무도 몰래 몸까시 돋아나는 것을/ 거친 손길에 꽃가지 자주 꺽이다 보면/ 어느새 뾰죽뾰죽 돋아나는 것을/ 그래도 웃음 머금고 하늘 바라봐야만 하는 것을

-「날마다 하늘을 바라보는 이유-거울 속 여자? 9」전문

 

먼저 ‘벽'과 ‘거울'의 내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벽'과 ‘거울'의 공간에는 수많은 꽃들이 존재한다. 그 꽃들은 지금 “거친 손길에 꽃가시 자주 꺽이”며 ‘산다는 건 가시에 수없이 찔리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주목할 것은 이 공간에 존재하는 꽃의 모습은 현재 시인의 내면을 무척 닮아 있다는 것이다. 가령, 그곳의 꽃들은 “주책없이/ 때늦은 내 가슴 설레며/ 남몰래 꽃 등불 밝혀”(「상사화 피는 사연-거울 속 여자? 7」) 든다. 또 어떤 꽃은 “늦었어, 너무 뒤늦게 눈을 뜬 거야”(「시월복숭아-거울 속 여자? 5」) 라며 ‘애왇븐' 시인의 ‘한 생'을 반영한다. 이처럼 이 공간에 존재하는 꽃은 대체로 시인과 밀착되어, 정서적으로 교감한다. 이로 인해 시인이 이곳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순간, 그의 행동과 사유는 매번 이 꽃들과 겹쳐지거나 동일시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인용시에서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위의 시에서 꽃은 단순한 식물체가 아니다. 그것은 시인의 의식이 투영된 각별한 존재, 즉 객관적 상관물로 거듭나고 있다. 이 시에서 꽃은 철저하게 의인화되어 있다. 또한 꽃의 가시 돋음은 “비다람에 한 생애 시달리는” 것으로 표현되어 여자의 일생을 간접적으로 지시한다. 이처럼 꽃의 존재는 시집 전체에서 의인화되거나 여성성의 이미지를 수용하고 있는데, 이는 이번 정숙 시의 중요한 특징으로 간주된다. 그의 시에서 꽃(식물)은 시인의 내면성 혹은 정체성을 간직한, 곧 시인 자신에 다름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인용한 시에서 삶이란 ‘가시에 수없이 찔리는 일'이라는 화자의 목소리와 “시린 가을 여편네 하나// 근육질의 남정네 허리 꽉 끌어안고 있”(「절정-거울 속 여자? 8」)는 형상은 궁극적으로 현재 시인의 삶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같은 시적 사유는 현대 사회의 여성들이 공유하는 비극적 삶의 양식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봄날 헝겊지겁 피어나 설레게 하는/ 저 불륜의 꽃들은/ 과연 어떤 의미의 시어이며/ 그 누가 잉태한 씨앗인가// 겨우내 눈 덮힌 하늘 아래서 바람이 나무의 살몸 오래끌어안고 뺨 비비며/ 중중모리에서/ 휘모리장단 그리 신음소리 풀무질하더니/ 기어코 불이 붙어 버렸나/ 불이 붙어 가지마다 환심장할 듯 수많은/ 들불 켜들고/ 산에 들에 저렇게 환히 어러이 달려오는가

-「꽃의 은유를 찾아」전문

 

이렇게 보면, 「꽃의 은유를 찾아」나서는 시인의 모습을 담은 위의 인용시는 이번 시집의 전체적 성격과 관련하여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시집의 전반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음성이 간혹 자연 대상물의 언어 혹은 복수의 목소리로 혼재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4.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실 이 질문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시(문학)에는 더 이상 소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성 존재성 및 여성적 삶의 왜곡된 구조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미 한바탕 우리 문단을 휩쓸고 간 마당에, 이 같은 물음은 자칫 게으른 시인의 우둔한 행동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자기 정체성 회복에 대한 문학의 적극적 ‘옹호'는 분명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급진적, 자유주의적, 맑스적, 기호학적 페미니즘 등, 그 간에 각각의 수사를 동반하고 다양한 입지점을 마련하며 활동영역을 넓혀온 일련의 페미니즘 문학 이론은 이를 명백하게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여성들의 삶은 구체적 일상의 영역에서 여전히 많은 한계점을 안고 있는 듯하다. 여성의 고유성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어 가는 현실임에도, 여성적 삶의 궁극적 회복이 아직 요원해 보이는 것은 결코 우리의 둔한 감각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여성성과 모성성의 주체를 일관되게 환기하는 정숙 시인의 시편들은 우리 시대에 변함없이 유의미하다. 특히 시인 자신이 경험한 여성적 삶을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 시대 여성들의 각박한 삶의 풍경을 다채롭게 형상화한 이번 세 번째 시집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다만 아쉽게도 이번 시집에 실려 있는 몇몇 시편들은 ‘여전히' 우리 시대 여성적 삶에 내재한 복합적 모순까지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하는 듯하다. 체험의 깊이와 진솔한 삶의 흔적이 배어나는 작품들 사이에 간혹, 정제되지 않은 음성과 푸념적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듯한 인상을 받은 이유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가령 시집의 후반부에 실려 있는

「수련」,「밤벌레」,「직선과 곡선」 등의 시들은 우리시대 여성적 삶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긴장력의 이완이 감지된다. 특히 이 시들은 가각의 사실적 체험을 바탕으로 여성적 삶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형상화하고 있음에도 동시대 여성적 삶의 구조적 모순과 본질적 한계를 시적 언어로 길항하는 데 다소 실패하고 있다. 이런의미에서 “여성 주체로서 능동적인 현실 타개 의지의 실천력이 부족한 것이 보다 큰 결함”이라고 지적한 김재홍의 해설

(『신처용가』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정숙 시인은 시작詩作 지점에서 ‘획득한' 이 따뜻한 충고를 오래토록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현재 시인 자신도 이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시 쓰기에 대한 고민과 여성적 삶에 대한 시인의 진지한 성찰이 지적 주제의 무게감으로 전해지는 시를 이번 시집에서 우리는 자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집 말미에 덧붙여진 ‘시인의 산문'의 말대로, 정숙 시인이 삶의 “잃어버린 금싸라기들을” “불의 눈빛”으로 찾아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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