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73    업데이트: 24-01-12 12:43

신작소개

18, 13편 시인뉴스 처용 아내 정 숙편
관리자 | 조회 916


웬 생트집?
-처용아내 1 [신처용가]
 
가라히 네히라꼬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 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이 혼차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 든 잠, 찔레꽃 꺾어 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 거 뿌인데예.
웬 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 아래서
밤 깊도록 기집 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사철 봄바람인 싸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움에 속 골빙 든 여편네
꿈 한번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休火山이라예
-처용아내 2 [벼랑 끝의 꽃]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심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이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우포늪에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
퍼뜩 생각났던 것이다
일억 사오천 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
제 속에 썩혀서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던 것이다
조상의, 제 조상의 뿌리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 되고
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 떨어져 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늪은, 말없이
흘러가기를 재촉하는 쌀쌀맞은 세월에
한 번 오지게 맞서 볼 작정을 했던 것이다
때론 갈마바람 따라 훨훨 세상과 어울리고저
깊이 가라앉은 안슬픈 긴긴 밤이었지만
세월을 가두고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모아
끈질긴 가시들을 뿌리치고, 기어이 뚫어
세월들이 오바사바 썩은 진흙 구덩이에서
사랑홉는 가시연꽃 한 송이 피워내고 만 것이다
 
 
 
연서戀書
 
 
 
네가 허기진 먹물이라면
나는 목 타는 한지
 
우리 서로 만나 하나로 어우러져
샘물 솟아내야만
붓꽃 몇 송이 피어나리니
 
하늘 열쇠 간직한
꽃과 열매를 틔우고 맺으리니
 
 
 
 
 
 
 
 
 
 
 
 
 
 
 
 
 
 
 
수묵화 한 점
 
 
 
꾹 꾸욱, 거칠게 누르다가
살 사알, 간질이듯 힘을 뺀다
붓은 한지에 짙게,
때로는 옅게 먹물을 뱉어낸다
 
삶기고 치대어진 닥나무의 한이
벼루에 갈린 먹물의 꿈을
걸신들린 듯이 빨아들인다
한과 꿈이 한 몸으로 어우러진 용트림,
숨결이 뜨겁게 끓어오른다
 
서로의 아픔을 포용하는
붓과 한지의 포옹, 그리고 입맞춤
연기 한 점 없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환해지는 세상,
마침내 햇살 듬뿍 머금고
백련 한 송이 피어오른다
 
간절한 꿈은 아픔을 함께 나눠야만
화엄향기 품은 연꽃으로 거듭난다는 걸
한지와 붓은 묵언으로 보여주는지,
저 담백하고 우아한 수묵화 한 점
 
 

 
풋울음 잡다
 
 
딸아, 아무리 몸부림쳐도 꽃이 피지 않는다
봄날이 오지 않는다 투덜투덜
꽹과리 장구 깨지는 소리 따라다니지 말아라
한 생이 자벌레 키 자가웃도 못되는데
그렇게 헤프게 울거나 웃어 보내면 쓰겠느냐
 
놋쇠는 그런 풋울음 잡기 위해
불 속에서 수없이 담금질 당하고
수 천 번 두드려 맞는단다
주변의 쇠와 가죽 소리를 감싸 끌어안고
재 넘어 홀로 핀 가시연의 그리움 달래주는
징이 되기 위해서
 
그런 재울음은 삶의 고비 몇 고비 넘기면서 한을 삭히고 달래어 흐르는 물살처럼 부드러운 징채로 두드려야, 목으로 내지르는 쇳소리 아닌 이승과 저승의 경계 허무는 울림 징하게 터져 나오느니
 
비로소 햇살이 그 소리 비집고 들어 네 둥근 항아리 속 그늘진 도화 꽃 몽우리를 햇살로 피워 올릴 수 있는, 시의 참다운 징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
 
 
 
 
 
흰 소의 울음징채를 찾아
 
 

딸아, 네 몸도 마음도 다 징이니라
 
한 번 울 때마다 둔탁한 쉰 소리지만 그 날갯죽지엔
잠든 귀신도 깨울 수 있는 울림의 흰 그늘이 서려 있단다
 
 
살다 보면 수많은 징채들이 네 가슴 두드릴 것이니
봄눈 이기려는 매화 매운 향이, 낙엽까지 휩쓸어 가려는
높새바람의 춤이, 한파를 못 견디는 설해목의 목 꺾는
울음소리가
 
이 모든 바람의 징채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렇다고 자주 울어서는 안 되느니라
참고 웃다가 정말로 가슴이 미어터질 때
그럴 때만 울어라
울고 울어 네 흐느낌 슬픔의 밑뿌리까지
적시도록, 징채의
무게 탓하지 말고 네 떨림의 소리그늘이
은은히 퍼져 나가도록
 
눈 내리는 이 밤, 아버지
그 말씀의 거북징채가 새삼 저를 울리고 있습니다
 
 
 
 
 
 
 
화간을 꿈꾸다
 
길다
길어도 너무 길다
혀끝을 깊숙이 밀어 넣어 꿀을 빨아먹기 위해서 인가
꽃 대궁이 속 타액은 원래 나비의 것인데
달은
꽃을 탐하여
그렇게 혀를 길게 내밀고 있는 것이다
그 달콤한 순간을 기다리는 달맞이는
밤마다 제 몸을 열어 서로 연민의 깊이를 잰다
이제껏 보름달과 꽃의 표정이 좀 수상하다 했더니
그런 부적절한 관계였나
그 까닭으로 달뜨는 밤이면 많은 이들이 가슴 설레고
늑대울음을 우는 것이었구나!
내 시의 혓바닥은
여직 생각이 무디고 짧아서 맛을 음미할 줄 모른다
상처만 주지 내통이 잘되지 않는다
이 외사랑, 아득하여라
 
 
 
 
 
 
 
 
 
인생 1
 
 
 
의자 하나 끌고 가려다
의자에 끌려 다닌다
 
엉덩이 하나 제대로 걸칠 수 없는
작은 의자
 
평생 마음 편히 앉아보지 못한 채
내가 끌려가는
 
이 의자
 
 
 
 
 
 
 
 
 
 
 
 
 
 
 
 
 
인생 2
 
밥을 먹는다
밥이 나를 먹는다
 
밥은 내 아버지를 먹고
또 그를 먹는다
먹히다, 먹히다 지쳐 뼈만 앙상한
그를 밀치고
이제 내 아들이 먹힌다
 
밥술을 놓아야만 비로소
한 마리 나비되어 날아오를 수 있는
밥은
피눈물을 부른다
죽음과 삶을 가르는 길목의
갑질을 위해
 
 
 
 
 
 
 
 
 
 
 
 
 
 
숟가락 섬
 


사람의
섬과 섬 사이
숟가락엔 어느 노가다의 탄식이 남아있는가
 
메마른 영혼의 물기 마르지 않게
기꺼이 메아리가 되어주는
범종의 파문처럼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 들으면
삶과 죽음
몸과 몸 사이의 생존을 위해
 
평생 밥을 실어 나르는
하늘님의 고단한 노동이 보인다
 
새삼 밥 한 알의 무게 달아본다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청매화 다투어 피는 달밤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 비비꼬다가
젊은 날 그렸던 그림을
다시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고작 A4 용지 두 장 크기 한지에
이리도 많은 꿈을 그려 넣었었구나
 
흰 물감으로 연꽃과 연밥들을 지우다 보면
그때 그 욕심들이 양심에 걸린다
새와 나비들도 먹물로 지워버린다
 
흉한 상처의 얼룩들만 남는 세월,
그 무게에 짓눌린 나의 한지는
달빛도 스러진 봄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그래도 다 못 지워 슬픈 눈빛으로
입술 달싹거리는 나부상,
노랑나비와 청승맞은 달빛을
바라봐야만 하는 봄밤
 
 
 
 
 
 
 
 
안동 간고등어
 
맛이 있다는 것은
간이 잘 들었다는 말인가
 
간이 잘 절여졌다는 것은
간잽이가 소금을 맞갖게 잘 뿌렸다는 말이겠지만
제 고향바다를 떠나 그 골짜기까지 험하고도 먼 길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그 성깔, 생 속 다 죽이고
저절로 푸욱 절여져서
나긋나긋 짭짤한 그 맛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무심히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과
터진 생채기에
덧씌워 뿌리는 사람 사이의 소금 말고는
매정스런 칼바람에다 살과 살 부딪히는 비린내와
뒷골목 썩은 냄새나는
 
삶의 현장만한
간잽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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