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8    업데이트: 24-01-04 21:17

유배시편

지구의 어깨 [정 숙]
정숙 | 조회 1,156

지구의 어깨

-유배 시편 67

 

저 가녀린 어깨에 얼마나 큰 무게 실려 있었던가

초가을 별빛 줍느라 잠은 밤새 돌아오지 않는다

흰 바람벽에 멱살 잡힌 옷걸이 하나

싸늘하게 눈동자 깜박이는

열아흐레 달빛을 입어 더 핼쓱하다

한 쪽 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지는 지구의 어깨

낮엔 왜 보지 못했던 것일까

너덜너덜 껍질마저 벗겨진 채 깡통으로 찌그러져 있다

 

날마다 허영의 공깃돌 한 주먹씩 쥐었다가 흩어버리는 나의 낚시 바늘들

그 바늘이 물고 있는 그의 시간이, 돈다발이 그 살의 뼈 벗기며 끌고 다녔었지 한 때 내 배꼽열쇠가 그의 비밀금고 빗장을 열고 들어가거나 압력솥의

추 끓어오르다가, 뾰족 손톱이 그의 어깨 피 흐르도록 할퀴어대기도 했었지

 

 

2.

 

그 소리 요란하기 만한 난바다 산 같은 파도 헤치며 몇 사람의 밥통 지키느라 짓눌렸을 저 가장의 무너져 내리는 어깨, 소설 몇 권치 삶을 짊어지고 불면으로 깊어가는 밤을 헤아리며 벽 못에 물려있다

 

뿌리 없는 내 허망의 귀틀집에 감금당한 저, 뼈 속까지 구멍 난 남자 이제 살집 두툼한 내 어깨에 찢어진 그의 날갯죽지 뼈대가 기대어야 할 때인가 저, 열아흐레 달빛 옷걸이는 은근히 그것을 내게 강요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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