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8    업데이트: 24-01-04 21:17

유배시편

돛대[정 숙]
정숙 | 조회 1,211


--유배시편1


살얼음이 칼바람 물고 달려드는 밤
서울역 지하도에 웅크린 사람들
세상사 뭐든지 꿰매고 깁던 버릇 버리지 못해
긴장된 순간들을 모아 시간 조각보 박음질하네
가슴 속 낡은 생의 미싱 바퀴를 돌리고 있네
침침한 바늘귀에 실 꿰어
지친 손가락 마디 호고 감치네
끝내 바늘귀를 찾지 못하고
헛바퀴만 몇 바퀴 드르륵 돌리다가
무연히 드러눕는 사람들
찬 바닥 신문지 몇 장 깔고 누워
허공으로 둥둥 지상의 가족을 내려다보네
미안하다, 사랑한다, 틀 바늘은
간간이 헛소리 하는 제 주인의 꿈 깨우지만
드르렁, 컹, 컹 코고는 소리만
지하도의 밤 울리며 지나가네
속절없이 무너진 가슴 속 세상을 돌리며
길을 묻는 재봉틀 헛바퀴 소리
그 신음 속 밤의 폐부를 가르는 바람소리
부러진 돛대 지키느라 너덜너덜 헤진
저 돛, 누가 촘촘히 박음질해 이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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